[인터뷰] ‘국민소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제시하는 2019 대한민국의 길(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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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은 ‘2019 혼돈의 대한민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란 특별기획을 연재합니다. 그 첫 회로 조정래 작가를 만났습니다. 조정래 작가와의 특별 대담을 통해 원로 작가가 제시한 우리 사회의 진단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上·中·下 3편에 걸쳐 나눠 소개합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는 전남 여수, 순천, 보성(벌교), 지리산이다. 작가는 한국전쟁의 원인을 주변 강대국의 대립이나 남북 사이의 대결 속에서 찾지 않는다. 그보다는 땅을 둘러싼 우리 민족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더 우선시 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리산은 좌익 계열의 인물들에게는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마지막 보루다. 또 부당한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짓눌려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민중들에게는 삶의 도피처다. 죽음의 공간인 지리산은 그렇게 역사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정작 조 작가는 이 작품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 《태백산맥》과 작가
군사정권 체제에서 《태백산맥》을 집필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위해(危害)가 올 거라고는 각오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도 ‘내가 감옥 가도 견딜 수 있겠냐’고 말해야 할 정도로 결심해야 했지요. 솔직히 그런 각오가 없었다면 상황을 견뎌낼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끝난 다음에는 고소, 고발을 당해 만 11년 동안 수사 받았거든요.”
어떤 소명의식이었나요.
“작가로서 이건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내가 안 쓰면 안 되겠다는 실존적 의식이었지요.”
《태백산맥》이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로 남길 바라십니까.
“모름지기 작가라면 자기 작품이 성경이나 불경처럼 영원히 남길 바라지 않겠습니까. 30년 동안 아버지 세대를 거쳐 아들, 딸 세대까지 이 작품이 읽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될 때까지 이 작품이 살아남길 바랄 뿐입니다.”
전남 보성에 들어선 이곳 태백산맥문학관은 현재 흑자 기조가 유지된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작품을 잘 썼으니 그런 게 아닐까요(웃음).”
왜 세대를 넘어 우리 국민들이 《태백산맥》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지 않나요. 문학은 인간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발명품입니다. 종교, 정치 등이 모두 발명품이죠. 발명품은 삶에 긴요하게 쓰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어요. 문학의 작품성 역시 현실의 재구성이고 반영입니다. 시대가 지났어도 현실에 필요한 현실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걸 진리 또는 영원불변성, 가치항구성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오늘의 현실성은 뭘까요. 소설에 나오는 소작의 말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나라가 구색만 만들고, 지주가 빨갱이를 만든다.’ 오늘날 그것은 변형돼 있을 뿐입니다. 당시 지주가 오늘날 자본가, 재벌로 바뀌었고 소작인들이 노동자로 바뀐 것뿐이지요. 우리 민족의 비극은 분단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사회적 명제가 있었어요. 지금은 분단돼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 민족적, 사회적 명제예요. 이 두 가지가 합쳐져 《태백산맥》의 생명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하소설이 부재인 시대인데.
“작가로서의 치열함 부족 때문 아닐까요. 한마디로 노력 부족이지요.”
돈이 권력이 되는 세상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문학 같은 데서 그걸 극복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합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되, 돈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인문학적 교육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극복하는 길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문단에서 주목하는 후배 작가는 있으신가요.
“등단 후 10년이 지날 때까지 제가 스승이라고 불렀던 분들 중에 ‘조정래가 30년 후 이렇게 될 거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눈에 안 보여야 정상이에요. 그렇지만 누군가 분명 있을 겁니다. 문학이 존재하는 한,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작가가 나타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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