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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 외주화가 원인…구의역 사고 후 낮잠 잔 국회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는 태안화력발전소가 있다. 주로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등을 태운 화력을 이용해 전류를 일으켜 배전하는 발전소다. 지난 2001년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분사한 한국서부발전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운전·정비 부문은 하청업체에 맡겨 관리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김용균씨(24)는 한국전력공사 입사를 준비했다. 그는 발전소 경험을 쌓기 위해 지난 9월17일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김씨는 태안화력발전소 연료운영팀에 배치돼 석탄설비 운전 업무를 맡았다.

김씨는 혼자 4곳의 석탄운송설비를 담당했다. 시설 간 거리는 40~100m였고 지상 70m 높이를 좁은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다. 야간근무 때는 12시간 동안 3차례씩 자신이 맡은 구간을 오가며 설비 이상 유무를 점검했다. 순찰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다음 근무시간까지 대기하다 이상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

작업장은 위험천만하다. 컨베이어와 아이들러(컨베이어 부품으로 롤러의 일종)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시커먼 석탄가루가 눈발 날리듯 날아든다. 이로 인해 작업장은 코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언제든 아이들러 사이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김씨는 이런 곳을 손전등 하나 없이 휴대전화 불빛을 이용해 점검했다. 작업 보고를 위해 설비 가까이 손을 내밀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다. 숙련자도 하기 힘든 위험한 작업을 입사 3개월밖에 안 된 김씨 혼자서 감당했다.

 
12월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예고된 죽음, 대책은 없었다

지난 12월10일 오후 8시40분쯤 김씨는 홀로 밤샘 근무에 들어갔다. 김씨는 이날도 컨베이어 벨트 안으로 들어가 점검을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떨어진 석탄을 치우고 탄가루를 씻어 내린 물을 빼는 배수관도 확인했다.

오후 10시35분쯤 김씨는 환승타워로 진입했다. 6분 후에는 회사 관계자와 잠시 통화했다. 하지만 이후 김씨는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았다. 김씨의 휴대전화는 신호는 갔지만 연결이 안 됐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한국서부발전 측은 다음 날 새벽 1시가 넘어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지점의 구조가 복잡해 김씨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3시24분쯤 김씨는 컨베이어 벨트 밑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전화 통화가 되지 않은 10일 밤 11시 이전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꿈 많던 청년 김용균씨는 이렇게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죽어갔던 것이다.

공개된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고된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업 보고를 위해 점검한 설비들을 일일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해 기록해 둔 것이다. 사고 당일 근무하면서 촬영했던 12장의 사진도 들어 있었다. 사진이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간은 10일 밤 9시36분이다.

김씨의 유품은 고장 난 손전등, 검은색 탄가루에 얼룩덜룩해진 수첩, 김씨의 이름표가 붙은 작업복, 그리고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가 전부였다. 유품 중 하나인 손전등은 회사에서 지급한 것과는 다른 것으로, 김씨가 사비를 들여 산 것이다.

동료들에 따르면, 김씨는 주간근무 때는 점심을 식당에서 배달시켜 대기실에서 먹었지만, 야간근무 때는 식당에서 배달조차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야식비나 야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씨와 동료들은 주로 컵라면이나 빵으로 저녁을 때우는 일이 많았다.

김씨는 사고 당일에는 컵라면조차 먹지 못한 채 일하다 숨을 거뒀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은 “이동 동선과 시간대를 따져보면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누가 김씨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내몰았던 것일까. 이에 노동계에서는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외주화’에 원인이 있다고 성토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생긴 발전소 안전사고 346건 중 337건(97%)에서 하청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망자 40명 중 37명(92%)이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원래 발전소의 경우 정규직은 2인1조로 일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외주화되면서 비용절감을 이유로 안전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2인1조 근무만 지켜졌어도 김용균씨의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발전소의 부실한 안전검사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씨가 숨진 석탄 컨베이어 벨트는, 불과 두 달 전 안전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안전검사 항목은 컨베이어 벨트 안전장치 정상 작동 여부, 노동자에게 위험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의 덮개 등 안전장치 유무, 통로의 안전성, 비상정지장치의 적절한 배치와 정상 작동 여부 등이었다. 이 항목들은 전부 합격 판정을 받았다. 안전하다는 컨베이어 벨트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갔던 것이다.

불법 파견 정황도 드러났다. 현행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릴 경우 ‘불법 파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카톡을 보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관리자가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대책위는 “동료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이런 대화 내용으로 볼 때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지휘 감독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하청 노동자들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한국서부발전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특별감독에 나섰다.

 
12월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 공공운수노조 제공
     

발전 노동자 정규직 전환 추진

이번 김용균씨 사고와 비슷한 인명 사고가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있었다. 당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하청업체 소속 김아무개군(19)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김군의 가방에서도 컵라면이 나왔다. 당시 우리 사회는 김군의 영전에 고개를 숙이며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넘기는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겠다며 각종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사이 비슷한 사고로 한 청년이 또 목숨을 잃었을 뿐이다. 국회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등 여러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거나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김용균씨 사망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정치권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정치적 공세만 이어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국회는 또다시 ‘대책’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해 달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2월19일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정부가 지난 11월 제출한 산안법 전면 개정안을 심사키로 했다. 여기에는 유해성과 위험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만약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할 경우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할 수 있다. 노동부 장관에게는 산업재해 재발 우려가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발전소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전환이 불가피하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12월 임시국회 내에 산안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위해 관련법인 산업안전보건법 심사에 들어갔고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공청회도 열기로 했다.

하지만 원안대로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재계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계는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산안법 개정에 대해 ‘사내 도급 원칙적 금지’ 등이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재계와 노동계가 쟁점마다 부딪칠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양쪽의 입장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영자총협회는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안들이 기업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종합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산재 사망의 공통된 특징이 주로 하청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며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관련 부처에 대책을 주문했다.

또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언급했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발전 5사(중부·서부·남동·남부·동서발전)에서 일하는 77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지 주목된다. 하청업체에 맡겨졌던 운전·정비 업무를 발전소가 직접 고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용균씨도 생전에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고 쓴 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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