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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기다림은 반비례(反比例) 관계에 있다. 권력이 많을수록 기다림에서 자유롭고 권력이 적을수록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권력과 기다림의 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해 낸 이 주장을 사회심리학의 고전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일상에도 권력과 기다림의 관계를 헤아려볼 수 있는 상황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병원에서 VIP 환자들은 의사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MRI나 CT 촬영실 앞에서도 기다릴 필요가 없지만, 일반 환자들은 무작정 기다려야 할 때가 빈번하다. 공항에서도 이코노미석(席) 승객은 길게 줄 서서 기다린 후 차례로 탑승하지만, 프레스티지석(席) 고객은 먼저 탑승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린다. 주차장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주차 공간을 찾아 헤맬 때가 많지만, 기사의 서비스를 받거나 지정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외국 국빈이 방문하거나 대통령이 행차할 때는 거리의 신호 체계를 조정해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 기다려야 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도 한다.

 
ⓒ 시사저널 박은숙


강의실에서도 권력과 기다림의 반비례 관계는 여지없이 확인된다.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늦으면 지각 처리되지만, 교수가 혹여 늦게 되면 학생들은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연애 시절엔 주로 남자가 여자를 기다리지만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게 되는 건 결혼을 전후해서 남녀 간 파워가 역전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이든 취업 면접을 준비하는 취준생이든 자신의 차례를 애타게 기다리고 결과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정부 부처 및 공기업을 위시해서 국감 대상이 되는 기관들은 상시 대기 상태에서 자신들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청문회에 불려 나온 증인들 또한 호명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무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회를 배경으로 동일한 광경이 매해 반복되는 것을 보면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돌아보니 올 한 해도 서민들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기다려야 했다. 최저임금 올리면 청년·알바생·비정규직들 주머니가 예전보다 두툼해질 것이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되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짐은 물론 고용 창출 효과도 함께 나타날 것이니,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는 연말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정부의 호소를 꽤나 빈번하게 들었다.

2022년 수능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비중을 놓고 전(前) 교육부총리가 결정을 유보한 채 국가교육회의 및 공론화위원회에 의견을 묻는 바람에, 전국의 수험생과 예비 수험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야 했고,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가 허망하여 더욱 절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치원 감사 결과 발표 이후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이 여전히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동안, 유치원 대란(大亂) 또한 코앞으로 다가왔건만 정부는 학부형들을 향해 참고 기다려 달라 한다. 기다릴 수 있다면야 기다리겠지만, 당장 워킹맘들은 경력 단절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니 워킹맘의 좌절이 깊어갈밖에.

국민의 생계와 직결된 법안, 국가의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 법안 중 다수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하니 이 또한 국민의 무력감을 부채질할 것이요, 벅찬 감동으로 시작한 남북관계도 기대와 희망이 높아질수록 기다림으로 인한 고통과 분노가 절박해질 것이다.

새해엔 부디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것, 아기 울음소리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꽃 피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엔 기약 없는 기다림, 무의미한 기다림, 그리고 불필요한 기다림에선 훌훌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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