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같은 목소리에 "평화무드 무르익어" 긍정 평가…방위비·자동차 관세 언급 無엔 아쉬운 목소리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30일(현지시각) 6번째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은 가운데,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에 대한 정계와 재계의 평가는 엇갈렸다. 여권에서는 일각에서 우려하던 한·미 관계의 '단단한 밀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찬사를 전한 반면, 야권과 재계에서는 한·미 방위비 분담 및 자동차 관세 문제가 빠진 ‘반쪽자리 회담’에 그쳤다는 박한 평가가 나왔다.
대북 정책 '한 목소리'…"30분 회담, 최선의 결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 양자회담장에서 30여분간 배석자 없이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행상황을 평가하고 한·미간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양 정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추가적인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한·미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을 통해 "양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프로세스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공동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굳건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차기 회담이 한반도의 비핵화 과정을 위한 또 다른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한·미가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실도 이날 회담의 성과로 ‘비핵화 이전까지의 제재 유지’를 짚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양자 '풀 어사이드' 회담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문재인 대통령과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나 북한과 관련한 최근의 진행 상황들을 논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책무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또 "두 정상은 비핵화가 경제적 번영과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북한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존 제재들의 강력한 이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일각에서 우려했던 ‘한·미 대북제재 엇박자론’을 불식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1월20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2인용 자전거처럼 그것들(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비핵화)이 함께 평행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거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번 회담을 통해 한·미가 단단한 공조를 다시금 확인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비핵화 방법론에 있어 한·미의 기조가 같다는 간결하고도 확실한 메시지를 전했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고려하면 최상의 결과”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비롯해 남북한 평화 무드가 무르익는데 충분한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방위금 분담·자동차 관세 문제는 '실종'
다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미관계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방위비 분담 문제 및 자동차 관세 문제가 언급되지 않아서다. 야권과 재계에서는 비핵화 방법론에 있어서 기존 입장만 재확인하는데 그쳤을 뿐, 가장 민감했던 ‘돈 문제’에서는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 청와대는 이날 회담이 끝나고 열린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요구한 게 있나’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짧게 한 마디씩 언급하며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당초 한국과 미국 정상이 북핵 문제와 함께 자동차 관세 등 통상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을 주요 의제로 제기할 것이란 일각의 전망이 어긋난 셈이다.
현재 관련 문제에 있어 애가 타는 쪽은 한국일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가운데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한·미는 올해 9차례에 걸친 협상에서 내년 이후 적용되는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협의해왔으나 아직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분담할 것 등을 비롯해 한국이 부담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탓에 현재 9600억원 수준인 방위비 분담금이 내년에 1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향후 한·미 간의 대북 공조에도 금이 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자동차 관세 문제는 한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 뇌관으로 꼽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28일(현지시각) 제너럴모터스(GM)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대응으로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가 그것(치킨세·chicken tax)을 수입차에 부과하게 된다면 더 많은 차가 이곳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며 “우리에게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들은 수십년 동안 미국을 이용해왔다”고 말했다. 치킨세는 프랑스와 서독이 미국산 닭에 관세를 부과한 데 대응해 미국이 수입 소형트럭에 부과한 25%의 관세를 말한다.
자동차 업계는 수입차에 대한 미국의 고율관세가 확정되면 현대·기아차 뿐 아니라 전체 완성차 업계와 부품업계, 나아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각각 앨라배마공장과 조지아공장을 운영하며 현지 수요에 대처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차량도 양사 도합 연간 60만대에 육박한다. 한국지엠 역시 스파크와 트랙스 등 미국 GM에 공급하는 물량이 연간 13만대에 달하며 르노삼성자동차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물량 배정에 따라 닛산 로그 미국 수출물량 12만대를 생산하고 있어 총 85만대에 달하는 자동차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국내 완성차사 한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지 생산 자동차보다 25%나 가격이 비싸다면, 사실상 현지 판매망을 포기하란 소리”라며 “공장 폐쇄 등이 현실화한다면 인력 구조조정이나 설비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련 문제를 좀 강하게 말해주길 바랐는데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