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의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중략)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공동번역)
#2: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B 예이츠는 깊은 철학과 역사관이 담긴 시들을 남겼다. 그가 인생의 굴곡기를 지나 그의 나이 60세경에 관조의 눈길로 쓴 《학동들 사이에서(Among School Children)》의 마지막 부분이다. “깊게 뿌리내리고 꽃피우는 밤나무여, 너는 잎인가 꽃인가 줄기인가?(O chestnut tree, great rooted blossomer, Are you the leaf, the blossom or the bole?) (중략) 우리가 어떻게 춤과 춤추는 이를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How can we know the dancer from the dance?)”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춤(행위)과 춤꾼(행위자)이 ‘합일의 경지’에 이른 것을 묘사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3: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라는 일본인은 1990년대 말부터 인간의 말이나 글이 물에 전달되면 그 결정의 모양이 아름다워지거나 추해진다는 주장을 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물에 기도를 하거나 종이에 글자를 적어서 물을 담고 있는 용기에 두르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몇 년 전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그의 주장을 직접 실험해 방영한 적이 있었다. PD가 직접 밥을 세 용기에 나누어 한 용기에는 좋은 말만, 다른 한 용기에는 나쁜 말만, 나머지 한 용기에는 아무 말로 하지 않았다. 2주가 지난 후 보니 나쁜 말을 한 용기는 부패가 심해 악취가 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용기는 조금 부패가, 그리고 좋은 말만 한 용기는 발효가 되어 오히려 좋은 냄새가 났다고 한다. 포도주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양파 같은 식물이 좋은 말을 들으면 크게 빨리 자라고 나쁜 말을 들으면 시들시들하며 잘 자라지 못하는 예도 여럿 올라와 있다.
이처럼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의 힘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억누를 정도로 강력하다. 인도의 마하티마 간디는 “당신의 믿음은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은 말이 되며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습관은 가치가, 그리고 그 가치는 당신의 운명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말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다. 또 춤과 춤꾼의 관계처럼 말은 그것을 말한 사람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사람의 본질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관심사는 그의 말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또 말의 힘을 인정한다면 그 관심사는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할 어반이 쓴 《긍정적인 말의 힘》이란 책에 나오는 “인간은 말을 만들고, 말은 인간을 만든다”라는 구절도 이런 뜻일 것이다.
한 야당의 산하 연구소에서 11월 초 이번 정부 출범 이후 18개월간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 및 청와대 브리핑을 전수조사한 결과, 평화·북한이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대통령이 우리·국민 등 관용어를 빼고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평화(1580건)였으며 2위는 북한(1453건)이었다. 경제(1290건)는 3위였다. 게다가 경제도 대부분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언급했고, 일자리·자영업자 등 경제 관련 주제에 대한 빈도는 매우 낮았다고 했다. ‘말의 힘’에 따라 대통령의 언급대로 남북 문제는 정말 잘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IMF가 내년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2% 초반으로 예측하는 등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관심은 물론 언급도 훨씬 많아져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추가적인 경제상황 악화는 혹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말의 힘을 믿기 때문에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