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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쓰나미’ 토목공사 늪에 빠지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다. 자유의 상징이 돼 버린 이 도시에 어떠한 규제나 제약도 없을 것 같지만 흥미롭게도 건물들과 도시 조경만큼은 철저하게 국가 주도로 조성돼 왔다. 파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건 19세기, 나폴레옹 3세 때다. 당시 파리 지사였던 오스만 남작에 의해 파리는 석회암 건물이 주를 이루고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정돈된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50여 개의 대로가 놓이고 녹지도 조성됐다. 이렇게 근대 도시의 새 장을 열었던 파리가 다시 대규모 공사의 한복판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에 의해 제창된 ‘그랑 파리’ 프로젝트 때문이다. 

 

10월3일 센강 강변에 보행자용 도로를 건설하는 현장을 방문한 안 이달고 파리 시장(가운데) ⓒ EPA 연합


이명박 ‘4대강’ 그리고 사르코지 ‘그랑 파리’

‘불도저’라는 똑같은 별명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비슷한 시기 똑같이 거대한 토목공사를 추진했다. ‘4대강’이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다면, 사르코지 대통령이 제창한 ‘그랑 파리’ 역시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사였다. 2010년부터 2030년까지 200km 길이의 철도와 68개 기차역을 건설해 파리와 근교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계획이 발표되던 당시 해당 사업에 추정된 예산만 220억 유로(28조원)에 달했다.

그랑 파리는 ‘일드 프랑스(파리 수도권)’를 하나의 문화생활권으로 묶는다는 야심 찬 청사진과 함께 출발했다. 먼저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라고 이름 지은 교통망 확충 프로젝트는 기존 교외선 철도의 보완책으로, 인근 도시들을 원형으로 연결하는 교외 순환선을 만든다는 기획이었다. 기존 교통망은 교외선 철도가 동서남북으로 파리를 관통하며 지역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렇게 확충된 신규 노선의 역사 주변으로 새로운 상권과 주거지역을 형성해 파리와 근교 도시가 똑같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내포하고 있었다. 지난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설업체인 ‘빈치(Vinci)’의 주주총회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15년 치 발주 물량이 다 채워진 셈”이라며 흡족해했다. 사르코지의 그랑 파리 프로젝트와 관련된 공사를 두고 한 말이다. 빈치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주요 건설 관련 업체들은 그랑 파리 덕분에 돈방석에 앉았다.

‘콘크리트 업자들의 보물창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 언론은 그랑 파리를 이같이 비유하며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엥에 따르면, 공사를 시공한 건설업체 빈치와 부이그(Bouygues)의 경우 최종 예상 수익은 각각 13억8000만 유로(1조7000억원)와 10억8000만 유로(1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목공사에 빠질 수 없는 콘크리트 공급업체인 라파즈는 물론, 무인 지하철 제조사인 프랑스의 알스톰과 독일의 지멘스 역시 희망에 부풀어 연신 수익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최근 역사 주변의 새로운 상권과 주거지 조성 계획이 추가 발표된 후 파리와 일드 프랑스 지역의 민간 공급업체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고 부동산 시장까지 들썩이고 있다.

11년이 지난 현재, 공사의 진척상황은 어떨까. 총 공사비용은 당초 예상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2010년 발표 당시 약 220억 유로(28조원)에서 2017년 270억 유로(34조원)로 늘어나더니 2018년 여름 350억 유로(45조원)라고 다시 수정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건설업체들의 요구사항이 향후 추가될 경우 최대 385억 유로(49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보고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공사 규모도 만만치 않다. 지하철 공사구간만 200km에 이르는데 90%가 지하를 관통하며 모두 자동화된 무인 지하철이다. 새로 들어설 역사만 72개다. 역사 주변에 형성되는 상권과 주거지의 총 면적만 90만㎡에 이른다. 도시 전체가 콘크리트로 뒤덮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2016년 이 거대한 공사를 위한 ‘메트로폴 그랑파리 협회’가 발족했다. 파리시를 비롯해 공사에 관련된 130개 코뮌(시·읍·면)의 협의체다. 참여하는 자치구 숫자나 규모만 봐도 행정적 절차가 얼마나 복잡할지,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했다. 완공시점도 당초 2024년에서 2030년으로 늦춰졌다. 해당 사업에 시 전체가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시는 최근 무리하게 또 하나의 사업을 추가했다. 2024년 올림픽 유치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로 인해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곳곳이 공사현장이 돼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 유치는 공사의 과잉이자 과도한 욕심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림픽을 유치한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지구 온난화 협약 이후 대기 오염을 해결한다는 목표 아래, “차량이 점거하고 있는 도로를 절반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공언하며 파리시 주요 도로까지 공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후 교통 관련 정책에 이견을 보인 부시장은 사퇴했으며 파리 경시청장이 교통체증 심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요지부동이다. 역설적인 건 대기 오염을 줄이고 환경을 위한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도시 전체가 지금 콘크리트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사장 인근의 상점들은 공사 현장에 가려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까 너도나도 ‘영업 중’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기에 바쁘다.


망치질 소리 끊이지 않는 프랑스

더욱 심각한 것은 비단 파리만이 토목공사의 늪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개선을 명목으로 한 트램(도로 위에 깔린 레인 위로 주행하는 노면전차) 공사를 필두로 각종 토목공사가 프랑스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인 니스의 경우, 왕복 2차로 도로에까지 트램 공사가 활발해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9년 11월 완공을 앞두고 있지만 그 이전에 니스는 니스공항 확장을 위한 주변 공사를 새롭게 발주할 예정이다. 곳곳에서 망치질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프랑스 남부의 인기 도시인 툴루즈도 마찬가지다. 이미 2개의 노선을 가진 무인 지하철에 새로운 노선을 추가하기 위해 사업자를 물색 중이다. 툴루즈 중앙역인 마타비오역 주변 현대화 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파리에 버금가는 교통지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거대한 건물로 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대중교통을 확충해 환경생태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프랑스의 이러한 공사 바람이 오히려 나라 전체를 콘크리트 먼지에 뒤덮이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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