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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 끝에 2000년 대구 동구에서 당선
1996년 15대 총선엔 신한국당 소속으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으나 때마침 TK(대구·경북)에 자민련 바람이 불면서 김복동 전 의원에게 패배했다. 삼수 끝에 고인은 2000년 16대 총선(대구 동구)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 지역은 고인의 고향이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16대 국회에서 고인은 문광위에서 활동했다. 당시 정계에선 고인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으로 분류했다.
16대에서 195건 입법 참여, 2건 대표발의
고인의 의정활동은 어땠을까.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고인이 16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은 195건이다. 이중 2000년 ‘제22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안’과 2003년 ‘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중 개정법률안’은 대표발의를 했다. 고인이 대표발의 한 이 법은 2003년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주관할 대회조직위 설립과 관련 사업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하지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고인의 발목을 잡았다.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선정 비리 혐의로 2005년 징역 5년 추징금 1억8700만원을 선고받아 2년 간 복역하다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 사면 조치로 석방됐다. 당시 재판에서 고인은 돈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의정활동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2006년 12월 정진석 당시 국민중심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소속)을 비롯해 여야 의원 187명이 가석방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