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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즐기지만 정작 필요할 땐 입 닫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 간단하다. 그가 너무 젊다는 것.” 프랑스 시사평론가 얀 무아의 지적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싱거운 이 분석을 두고 그는 더 식상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명석하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하다. 명석함만으로 나라를 이끌 순 없다.” 놀랍게도 이 단순한 분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크롱과 그 행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현재 30% 선이다. 당선 시 67%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걸 감안한다면 반 토막 이상 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개혁 로드맵에 대해 과반의 프랑스 국민들이 여전히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국영철도의 장기 파업 당시에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0%를 상회했다. 즉, 프랑스 국민은 정부의 개혁 방안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식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만 추락한 것이 아니다. 올해는 프랑스 제5공화국이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런데 마크롱 정부 들어 프랑스에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는 ‘스캔들 공화국’과 ‘아마추어 정부’였다.

 

9월15일 마크롱 대통령이 엘리제궁 행사에 초대받은 청년과 악수하고 있다. 이날 마크롱은 “취업이 어렵다”는 청년에게 “주변에 일자리가 널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 REUTERS


스캔들은 집권 초반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개각과 함께 밝혀진 인사들의 비리 혐의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미투 운동 관련 사안들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지난 15개월 동안 자리에서 물러난 장관만 7명이다. 최근에는 대(對)테러를 담당하는 검사의 후임 임명에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인 엘리제궁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군 ‘베날라 스캔들’이다. 대통령의 치안과 경호를 담당하는 수행비서 베날라가 민간인을 폭행한 사건은 프랑스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인 미숙한 대응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렸다. 베날라 스캔들이 터진 후 한참 동안 엘리제궁과 경찰의 수장인 내무부 간 입장 조율이 전혀 없었고 모두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네 탓 공방’만 이어갔다.


“스캔들 공화국에 아마추어 정부”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행태는 설상가상이다. 마크롱 정부는 소득세를 매달 월급에서 원천 징수하는 방식의 개편안을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재정부의 수장인 제랄드 다르마냉 장관은 전산 시스템의 버그 발생으로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계획이 늦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당시 헬싱키를 방문 중이었던 마크롱 대통령은 이러한 사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각과 대통령의 발언이 엇박자였던 셈이다. 총리까지 나서 진화에 나섰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땅에 떨어진 후였다.

사실 마크롱 정부가 겪고 있는 일련의 스캔들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나 어느 정도 있어왔다. 그러나 스캔들은 그 심각성도 중요하지만, 발생 후 탁월한 대처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마크롱 정부는 일련의 사태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들의 스캔들 대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모든 것을 말하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방식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방식이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데스탱의 경우 그가 끝까지 침묵했던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불법 수수 의혹’이 지금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걸로 봐선 무조건 침묵이 능사는 아닌 듯 보인다. 반면 미테랑은 “정치인이라면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미테랑 시절에도 지금 못지않은 각종 스캔들이 터져왔지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이 가진 미테랑에 대한 기억은 문화사업을 부흥시키고 10대 건축물을 세운 박식한 대통령 이미지가 더욱 크다.

 

지금 마크롱이 취하는 방식은 데스탱과 같은 침묵에 가깝다. 베날라 스캔들이 알려진 후 대통령이 직접 이 사건을 언급한 것은 사흘이나 지나서였다. 그사이 여론은 완전히 돌아섰고 대통령의 침묵은 분명한 사안에 대한 의도적 회피로 비쳐졌다. 엘리제궁과 내무부의 변명이 하나씩 뒤집히는 증거들이 나올 때마다 지지율은 고스란히 추락세를 탔다.


트럼프 못지않은 ‘언론에 대한 불만’

현재 마크롱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은 트럼프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트위터로 정책 사안을 알리지 않는다는 점만 다를 뿐,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 제기가 노골적이다. 이번 베날라 스캔들에서도 마크롱은 언론이 사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비판한 언론이 한 일이라고는 무고한 시민을 폭행한 것이 엘리제궁의 경호원이었으며 어떤 지휘라인도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뿐이었다.

마크롱과 언론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건 임기 초부터 감지돼 온 사실이다. 집권 초부터 대통령은 기존 언론보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SNS)를 더 선호했으며, 언론의 보도에 앞서 대통령의 동선을 페이스북으로 독점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엘리제궁 본관에 있던 기자실을 외부로 이전했으며, 연례행사였던 혁명기념일 당시 내외신 기자회견 순서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마크롱은 언론과 각을 세우고 SNS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모습을 취하지만, 실언을 자주 하고 중요한 사안엔 되레 침묵하면서 불통의 이미지만 쌓아가고 있다. 대통령의 언사(言辭)와 주변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철저히 관리했던 전통적인 정치권을 ‘올드하다’고 평했던 마크롱과 그의 젊은 참모들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웃 나라 스위스의 일간지 ‘르탕’의 분석은 신랄하다. “한 줌의 엘리트 집단이 나라를 개혁하겠다고 통째로 집어삼킨 꼴”이라고 마크롱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한 줌의 엘리트는 마크롱의 최측근 전위부대를 말한다. 그들은 평균 연령 40대 초반의 소위 엘리트 집단이다. 젊고 신선한 이들에게 걸었던 다수 국민들의 기대는 이제 ‘이들이 정말 나라를 잘 이끌 수나 있을까’하는 불안과 의심으로 바뀌어버렸다.

10월4일 프랑스 제5공화국의 문을 연 샤를 드골 장군의 묘지를 방문한 마크롱은 또 하나의 구설을 추가했다. 드골 장군의 손자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언급하며 “프랑스인들은 너무 불평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마크롱이 찾은 드골 장군은 생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치즈를 300가지 먹는 국민을 다스리기가 어디 쉬운 줄 아는가.” 패기만 넘쳤던 젊은 마크롱은 국민과 나라를 이끄는 일을 여전히 쉽고 우습게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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