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기침체 시그널이었던 장·단기 금리…美 연준 “지금은 아니다”
지난 60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경기 침체는 총 아홉 번 있었다. 가장 가까이는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시킨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고, 가장 멀리는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의 1957년 침체가 있다. 시계(視界)를 넓히면 1929년 경제 대공황까지 언급할 수 있겠으나 기준은 미국 국채금리가 유의미한 값을 갖기 시작한 1955년부터로 산정했다. 지난 아홉 번의 침체 직전 미국 장·단기 금리 격차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경기 부진의 신호를 알렸기 때문이다.
장기물 채권의 금리는 단기물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가로축을 만기로, 세로축을 금리로 표현했을 때 차트 위에서 금리 곡선은 우상향하는 흐름을 나타낸다. 이는 투자자들의 합리적 기대 때문인데, 가령 지금으로부터 1년 만기의 채권 금리가 2%, 이후 시점부터 발행되는 1년 만기채의 금리가 4%라고 가정할 때, 투자자들은 2년간 연율 3%의 수익을 취한다. 이는 곧 현 시점의 2년물 채권 금리 수준이 3% 이상에서 형성돼야 투자유인이 생긴다는 뜻이다. 단기채에 투자한 후 미래 단기채에 재투자했을 때의 기대수익률과 장기채 수익률은 적어도 같아야 한다. 간략하게 장기채 금리는 미래 기댓값의 평균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 경기에 대한 기대, 장기물 금리에 반영
여러 변수가 영향을 주지만 대표적으로 경제성장과 물가 상승 압력이 미래의 기대수익률을 결정한다. 직관적으로 경제에 대한 기대 변화가 미래 단기 금리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미래 시점에 경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투자 단위당 수익금 증가를 기대하며 합리적 투자자는 자금 차입 수요를 늘린다. 이 시점에 자금 거래 당사자 간 거래 비용, 즉 금리도 함께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향후 경기 부진을 전망할 시 미래 시점의 단기 금리는 하락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장기물 금리가 등락한다. 장기물 금리 속에 미래 경기에 대한 투자자들의 전망이 녹아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2%대까지 하락해 10년물과 2년물의 금리 차이가 0.28%포인트로 축소됐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직후인 2009년 말 2.82%포인트를 기록하던 것이 꾸준히 하락하기 시작해 침체 직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과거 금리 차 축소 현상이 6개월에서 1년6개월가량 지속된 후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고, 이후 평균 1년의 시차를 두고 침체가 발생했던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일부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때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트럼프 정부의 확대 재정정책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모토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안과 인프라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국채 발행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즉 세수 감소로 정부가 벌어들이는 돈은 줄어드는 반면 투자자들에게 빌려서(국채 발행) 나라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론 중국과 교역 갈등까지 겪고 있어 성장률 저하로 인한 세수수입 감소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침체를 우려하는 쪽은 부채상환 부담으로 미국이 침체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 통화 당국은 단호한 입장을 내비친다. 미국의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제롬 파월은 수익률 곡선 평탄화가 경기 침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내년에도 이 같은 기조를 바탕으로 안정적 연착륙을 예상한다”며 “수익률 곡선 역전 자체를 우려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과거 60년의 데이터를 부정하는 발언의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는 장기물 채권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속성인 ‘기간 프리미엄’에 기인한다. 앞서 장기물 금리는 경기와 물가 기대를 반영한다고 정리했다. 다만 두 변수는 예측이 쉽지 않다. 특히 만기가 길수록 예상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현 시점에 진행 중인 미·중 간 교역 갈등이 향후 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고,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급등(물가 상승)할 위험도 있다. 펀더멘털 요건의 불확실성도 있지만 혁신적인 금융상품이 나와 미 국채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 만에 하나 미국이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 예상 외로 브렉시트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 등 다양한 구조적 요인이 오차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따라서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대한 보상 개념으로 기간 프리미엄이 장기물 채권에 반영된다.
뉴욕 연방은행이 제공하는 기간 프리미엄 데이터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 금리의 하락은 대부분 단기 기대수익률보다 기간 프리미엄 하락에서 발생했다. 이는 경기 외적인 요인이 금리 하락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달러 자산 비축을 위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미 국채 매입에 썼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보험사나 연기금 등 각국 장기 투자기관들은 금리도 높고 신용도도 높은 미국 장기물 투자에 집중했다. 이러한 수급적 여건이 기간 프리미엄을 끌어내렸고, 종국에는 장·단기 수익률 격차를 축소시켰다.
시그널 오해가 경기 침체를 부른다
지금도 시장의 의견은 반반으로 나뉜다. 앞서 언급한 경기 침체론자들과 달리 경기 호조를 전망하는 쪽은 미국이 3년 이하의 단기물 위주로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재정 여건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충분히 갚을 수 있고, 인프라 투자로 고용창출이 꾸준히 증가할 시 민간소비 증가에 기반해 현 수준의 성장세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장·단기 수익률 곡선을 과거와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당사는 후자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경기 여건이 아닌 구조적 요인에 의해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됐고, 내년 미국 경제는 소비와 투자를 기반으로 지속적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긴장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 금리 차 축소의 사후적 결과로 금융시장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 금리를 기준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장기채로 이익을 내는 은행의 수익성이 감소해 신용시장이 경직될 수 있고, 또 장기 국채 선호도가 낮아진 투자기관들의 위험 추구 성향이 강해지면서 시스템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플래트닝(장·단기 금리 차 축소)을 곡해할 경우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