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신임 인권위원장이 풀어야 할 과제 산적
지난 10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쏟아진 비난은 뼈아팠다. 인권위는 인권 대신 정권을 보호하고, 인권을 외치는 시민단체들과 번번이 대립했다. 그 기간 위원장 자리는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한 인물이 차지해 조직을 이끌었다. 당시 인권위원장은 용산 참사 안건을 다루는 회의를 강제 폐회하고(2009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견 표명을 거부하면서(2014년) 심각한 내분을 일으켰다. 인권위라 쓰고 ‘친(親)정권, 반(反)인권 조직’이라 읽히던 시절이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보름 만에 인권위의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정부가 강조한 적폐청산 작업의 일환이었다. 변화의 조짐이 일자 인권위로 접수되는 진정·상담·민원의 수가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달라진 인권위에 대한 기대치였다. 이후 주요한 현안들에 밀려 관심에서 멀어진 동안에도 인권위는 자체 혁신위원회를 꾸리는 등 내부적으로 꾸준히 변화를 꾀했다. 무엇보다 밀실 임명 관행을 탈피하고자 최초로 신임 위원장 후보에 대한 공개모집을 시도했다.
그렇게 9월4일 임명장을 받은 최영애 신임 인권위원장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예고하며 거꾸로 가던 인권위의 시계를 고쳐놓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10월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단순히 조직의 껍데기만 바꾸는 것이 아닌, 인권위가 주요하게 다룰 어젠다에 대한 변화와 확장을 강조했다. 인권위가 멈춰 있던 지난 몇 년 새, 인권위가 응답해야 할 인권 이슈들은 한층 다양해졌고 더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미투로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남의 일처럼 여겼던 난민 인권 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 최 위원장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혐오’였다. 그는 사회에 만연해진 혐오·차별에 대한 대응을 향후 인권위의 제1과제로 꼽고, 이를 위한 특별전담팀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수 기독교계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차별금지법을 3년 내 제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전 10년간 인권위가 고민하지 않아 바깥의 인권단체들과 극심한 온도차를 보여온 논의들이 다시 인권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현병철 인권위원장 체제에서 상임위원을 맡았던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아직 인권기본법·차별금지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건 국제적으로 굉장히 뒤처져 있는 것”이라며 “지난 9년여 정부와 인권위가 인권에 소홀했던 동안 차별과 혐오가 더욱 만연하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를 지금이라도 위원회가 바로잡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어두운 그림자가 하루아침에 거둬지긴 힘들 거란 우려도 있다. 위원장 한 명이 타성에 젖은 조직 전체를 바꾸는 데도 분명 한계가 있을 거란 지적이다. 명숙 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인권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분이 위원장으로 임명된 건 환영”이라면서도 “인권위 안에 여전히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인사들이 많고, 11명의 인권위원 인선도 남아 있기 때문에 인권위가 쉽게 탈바꿈할 거라고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7월 뉴라이트 단체에서 활동한 김민호 인권위원이 새로 임명돼 인권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명숙 위원은 “위원들이 같이 사안을 결정하는 위원회 구조상, 한두 사람이 전체 논의를 발목 잡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할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현병철 위원장 당시 인권위 상임위원을 지낸 유남영 변호사 역시 인권위원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권위가 이전처럼 책상에만 있던 법률가들로 대부분 채우지 말고, 페미니스트·성소수자·장애인·난민인정자 등 자신의 진짜 삶을 공유할 수 있는 현장 사람들로 다양하게 채워져야 인권에 대한 살아 있는 얘기를 정부에 던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위원장 한 명으로 인권위를 변화시키는 데 굉장히 힘에 부칠 것”이라고 전했다.
※연관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