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세계선수권대회서 대역전극 펼친 ‘사격의 神’ 진종오…“총을 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격의 신’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감정이 북받친 듯 펑펑 울었다. 지난 9월6일 창원 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에 출전했던 진종오(39·kt)는 8명의 출전 선수들 중 초반 6위를 기록하며 조기 탈락 위기에 처했다. 1위 러시아의 체르누소프와는 무려 6.2점 차. 총 24발 중 15번째까지의 점수라 뒤집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 19번째 총알부터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진종오가 마지막 6발을 모두 10점대에 명중시켰던 것이다. 반면에 1위 체르누소프는 마지막 6발 중 5발을 8~9점대에 쐈다. 진종오는 기어이 241.5점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에서 10.3점을 쏴 9.5점에 그친 체르누소프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적의 역전승을 이루며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진종오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가 쏟아낸 눈물에는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짧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진종오를 만나 그 얘기부터 들어봤다.
방송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어요.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은 거예요.
“대회 결선에 진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한때 22위까지 처지면서 8명이 오르는 결선행 실패 위기도 겪었고요. 간신히 결선에 진출한 다음에는 초반부터 흔들리면서 10발 합산 점수가 8명 중 6위였습니다. 11번째 총알부터는 2발마다 최저점 점수 한 명씩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거든요. 자칫 잘못했다간 조기 탈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데 자꾸 무너지는 상황이 정말 힘들었어요. 열심히 준비했는데,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나 싶었던 거죠. 그런데 후반부터 총이 제대로 맞기 시작하더라고요. 24발로 끝나야 하는데 연장으로 갈 때는 진이 다 빠졌습니다. 그렇게 역전승을 거두고 나니 눈물이 났어요. 모든 경기가 끝났다는 실감도 났고요.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1위를 내달렸던 러시아의 체르누소프 선수가 막판에는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그랬을 거예요. 계속 1위를 이어가다 제가 끝까지 살아남은 걸 의식했을 겁니다. 부담스러웠을 것이고요. 전 당연히 그 선수가 금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총을 쏜 건데 마지막에 그런 반전이 펼쳐진 것이죠.”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보면서 2년 전 리우올림픽 50m 공기권총 결선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때도 6.6점을 쏘고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잖아요. 리우올림픽 금메달과 이번 금메달의 온도차가 있을까요.
“이번 금메달이 더 큰 의미가 있어요. 경기 마치면 동영상을 한 번씩은 보는데 이번 대회의 경기 영상은 서너 차례 돌려봤어요. 혼자 좋아하면서요. 그만큼 강렬했어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살인적인 일정이었어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바로 귀국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스케줄이었으니까요.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동안 장염에 걸려 고생 많이 했거든요. 제대로 회복도 못 하고 귀국해선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했어요. 아시안게임에서 부진한 성적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그 금메달로 모든 걸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4년마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일정이 붙어 있어요.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스페인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르고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했었어요. 시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했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었고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경기 중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사격은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심리 상태가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종목인데,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었죠.
(아시안게임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에 오른 진종오는 경기 시작 전 시험사격에서 마지막 발 결과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두 손으로 X자를 그렸다. 보통 이런 경우엔 선수가 이의제기를 하면 조직위는 경기 진행을 중단하고 장비를 확인 후 선수에게 무제한 시험사격을 허용하지만 조직위는 시험사격을 단 한 발만 허용했고 진종오는 5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국제대회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심판에게 마지막 발이 모니터에 나오지 않는다고 영어로 말했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듣더라고요. 나중에야 기계를 담당하는 직원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다시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제야 이해를 하더라고요. 그럴 때는 모든 선수들을 스톱시킨 후 자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심판은 단 한 발만 시험사격을 허용한 후 경기를 진행시켰어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서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하고 말았죠. 정말 속상했어요. 수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했었지만 그런 일은 처음 겪었거든요. ‘어휴, 열 받아’ 하는 입모양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더라고요. 당시엔 심장이 벌렁벌렁할 정도로 흥분했었어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메달을 수집할 정도인데 이상하게 아시안게임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어요. 단체전에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있지만 개인전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부터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 금메달이 없었습니다.
“제가 큰 대회에 강해서라고 생각할까요(웃음)? 전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인데 미디어에서는 의미를 부여하시더라고요. 아시안게임보다 더 어려운 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이 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개인전 성적에 대해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는 건 다음 아시안게임에 다시 도전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더라고요. 그렇다면 다음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할 의향이 있는 건가요.
“다음 아시안게임이 어디서 열리죠?”
중국 항저우요.
“하하, 제가 중국 성씨라서 기를 받으려면 계속 선수생활을 이어가야겠네요.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안타깝게도 진종오 선수의 주종목이었던 50m 남자권총이 지난해 폐지됐습니다. 대신 혼성 경기가 신설 종목으로 채워졌어요. 50m 남자권총에서 올림픽 3연패를 차지한 터라 종목 폐지가 큰 타격을 줬다고 생각하는데요.
(50m 권총 종목 역사상 3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건 진종오가 유일하다.)
“제가 국제사격연맹(ISSF) 선수위원으로 활동 중이거든요. 지난해 그 종목이 폐지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반대의 뜻을 담아 월드컵대회에서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는데 오히려 더 빨리 종목을 없애더라고요. ISSF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50m 권총이 저를 비롯해 아시아권 선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진 편이었는데 그래서 폐지시킨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제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래도 10m 공기권총과 혼성 경기가 있으니 잘 극복해 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덕분에 신설된 혼성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공기권총 10m 혼성에서는 결선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낯설어요. 선수 두 명이 모두 컨디션이 좋아야 하고 둘 다 잘해야 하거든요. 이제 시작이라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대표팀 선발전을 통해 파트너가 정해지는데 선발전을 빨리 치르면 연습할 시간이 더 많아질 겁니다. 혼성 종목에 나서면서 경기 전 파트너에게 꼭 하는 얘기가 있어요. 경기에서 누가 잘 쏘든 못 쏘든 서로를 절대 원망하지 말자고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필요한 종목이라고 생각해요.”
진종오는 지난 9월2일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10m 공기권총 혼성 본선 경기에서 9위로 경기를 마감해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진종오는 124명의 남녀 선수 가운데 393점을 얻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획득했지만 파트너인 곽정혜가 376점을 쏘는 바람에 5위까지 주는 결선 티켓을 얻지 못했다.
원래 성격이 예민한 편인가요. 사격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예민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시합 때는 좀 까칠한 편이에요. 시합 이후에는 모든 걸 내려놓는 성격이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수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려워요. 시합이 없을 때는 낚시나 사진 촬영 등 취미생활을 즐기며 사격을 잊으려 노력합니다.”
진종오 선수보다 더 나이 많은 외국 선수가 있나요. 국제대회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선수가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1964년생의 포르투갈 선수와 1973년생의 터키 선수 다음이 저예요. 나름 ‘넘버 3’입니다(웃음). 포르투갈과 터키는 대표팀 선발전이 없어요.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대표팀 선발전은 굉장히 치열한 편이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보다 더 어려운 대회가 선발전입니다. 국제대회는 한 차례의 경기로 승부를 결정짓지만 선발전은 대여섯 차례의 선발전 결과를 평균으로 계산해 1, 2등을 정하거든요. 시간과 체력 싸움이라 선발전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저도 유럽처럼 선발전 없이 선수생활을 유지한다면 나이 고려하지 않고 계속 총을 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린 터라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익숙한 선수들과 자주 만날 것 같은데요.
“그렇죠. 상위 랭커들은 거의 비슷하게 올라오니까요. 결선 대기실에 모이면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데 거기서부터 신경전이 치열해요. 경기에 몰입하려는 순간 말을 걸어오거나 제가 말을 걸 때도 있거든요. 겉으로는 미소를 띠면서도 속으로는 경기 준비를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거죠. 제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선수들의 신경전에 휘말리지 않고 상대해 줘야 하니까요.”
진종오는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을 마치고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까지 약 두 달간의 시간을 가장 재미있게 보낸다고 말한다. 자신이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지 상상하면서 연습하는 과정이 사격의 흥미를 더하게 만든다고. 대회를 앞두고 가장 몰입해 훈련하는 시간들인 데다 ‘고시 패스’보다 더 어렵다는 선발전을 통과했다는 후련함이 총 쏘는 데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사격의 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국민타자’ ‘농구 대통령’ ‘국보급 투수’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신’이라고 불리는 선수는 흔치 않아요.
“그래서 ‘사격의 신’이란 수식어를 사랑합니다.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되고요.”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는 선수한테는 시기와 질투가 뒤따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실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올해 진천선수촌에 있다가 장염으로 새벽에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선수들 사이에서 제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소문이 나돈 거예요. 전 코치님과 함께 응급실에 있었는데요. 어떤 사람이 그런 소문을 퍼트렸는지 다 알고 있었지만 꾹 참고 대회에 집중했습니다. 오히려 자극받아서 더 열심히 총을 쐈죠. 그 대회에서 1등 했어요.”
지금까지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월드컵 파이널 대회에서 거둔 메달이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어요.”
금메달이 총 18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8개로 메달만 37개를 획득했습니다.
“금메달이 몇 개 더 되지 않나? 많이 딴 것 같지만 올림픽 동메달이 아직 없어요.”
그렇다고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두고 동메달을 목표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동메달에 도전하진 않겠지만 올림픽 동메달만 없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뷰 때마다 은퇴 시기 관련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제가 언제 그만둘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선수생활을 지속하려면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고민이 되긴 합니다. 그래도 전 총을 쏠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진종오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도 총 때문이잖아요. 은퇴 시기는 당분간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오는 10월 전국체전 마칠 때까지 사격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진종오가 놀이공원에서 총으로 인형 맞히기를 한다면 몇 개의 인형을 가져올 수 있을까. 진종오는 실제로 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인형을 맞히는 바람에 가게 사장이 인형을 안겨주면서 제발 끝내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다고.
진종오는 공기권총 외에 계주 대회에서 출발 신호를 알리는 딱총을 든 적이 있었다. 친분이 있는 이봉주의 권유로 한 고등학교 체육대회를 찾았다가 이봉주의 강권에 못 이겨 계주 출발선에서 딱총을 쏘며 대회를 진행시켰다는 것이다. 명사수의 시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진종오는 ‘0.6, 0.9’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경기 중에는 안경을 착용한다고. 노안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건넸더니 그럴지도 모른다며 쿨하게 웃어넘긴다. 세계에서 가장 총을 잘 쏘는 진종오도 흐르는 세월은 인정했다. 세월을 뛰어넘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