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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任실장 호소에 꿈쩍 않는 정치권…“서둘러선 안 돼” 지적 나와
文대통령·任실장, 정치권에 방북 요청…'설득'보다 사실상 '성토'에 가까워
청와대의 '투톱'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9월11일 잇달아 정치권 설득에 나섰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동행을 대승적으로 수용해주기를 호소했다. 전날 임 실장은 직접 언론 앞에 서서 국회의장단 및 여야 5당 대표 등 9명의 정치권 인사에 대한 평양행을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이른바 '범(汎)보수' 야권에서는 곧바로 이에 반발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남한 정치인들이 딱히 방북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당 대표들이 지금 나서봤자 들러리밖에 안 된다"며 "조급해서는 안 되고 천천히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 만에 다시 정치권을 향한 청와대의 태도는 '설득'이라기보다 사실상 '성토'에 가까웠다. 이렇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정을 대관절 왜 거부하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우리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다시 한번 큰 걸음을 내딛는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고, 북·미 대화의 교착도 풀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제적인 지지와 함께 국내에서도 초당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처럼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정당의 이익과 그 이익을 위한 정치적 계략)을 거두어주기 바란다"며 "국회 차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 국회 회담의 단초를 여는 좋은 기회로 삼아 달라"고 했다.
같은 날 임종석 실장도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회에서 놀란 사실 중 하나는 중진들의 힘이었다. 조정·타협을 통해 나눌 건 나누고 합할 건 합해내는 능력인데,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에서 그런 중진 정치가 사라지고 이젠 좀처럼 힘을 합하는 장면을 보기가 어렵다"고 말문을 열었다. 임 실장은 "정치인들이 그저 효과적으로 싸울 궁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주요 정당 대표들은 우리 정치 원로급 중진들"이라며 "이들의 복귀 목표가 권토중래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미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노인들의 배낭여행'을 콘셉트로 한 tvN 예능 프로그램)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왔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당리당략' '정쟁' 등 표현을 써가며 압박해오는 청와대에 범보수 야권이 호응해 나올 여지는 작다. 이날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를 찾았음에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손학규 대표는 특히 전날 임종석 실장이 초청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데 대해서도 "문희상 국회의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안가겠다고 해서 끝났다고 알고 있었는데 임 실장이 나와서 발표한 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며 "'야당에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거부했다'는 말만 나는 효과를 바란 게 아니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밖에 문희상 의장 등 국회의장단도 갑작스런 방북 제안을 거절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갈 사람들은 가고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더 설득을 해보지만, 억지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청와대 제안이 명분과 실리 모두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청와대 너무 조급해, 천천히 원하는 목표에 집중해야"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이렇게 조급하게 정치권 방북을 추진한 것일까. 임종석 실장은 "그간 남북 교류협력이 정부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국회가 함께해야 제대로 남북 간에 교류협력이 안정적으로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부정적인 범보수 야권 대표들과 방북하는 모습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 드라이브에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제·민생 문제 악화로 떨어진 국정 지지도가 반등할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청와대의 기대는 당장, 더구나 지금 같은 방법으론 실현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최근 들어 너무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한 호흡 쉬어갈 때라고 지적한다. 벌써 문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나 '통일경제특구' 등 남북교류의 청사진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비핵화가 확실히 진전되고 지금의 대북 제재가 대폭적으로 완화되어야만 현실화할 수 있는 그림들"이라며 "구상 자체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만, 너무 거시적이고 현 정부 내에서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손 전 원장은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사업을 대북 제재에 조응하며 제시하는 것이 우리로부터는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장기적 비전에 입각하되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현실정책(Realpolitik)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원장은 또 "판은 우리가 만들어줬는데 북·미가 우리에게 '이제 쇼의 중심에서 좀 빠지라'는 형국일지라도, 그렇게 해서 우리가 원하는 북·미 관계 개선, 비핵화 진전, 남북 관계 개선이 진척된다면 모든 공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차지해도 좋다"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돌렸듯, 다시 한 번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집중하고 한·미 및 남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볼 국민과 국제사회가 문 대통령과 정부의 공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임종석 실장은 지난 9월3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등을 확정하기 위해 평양에 가는 특사단의 방북을 앞두고 "(특사단이) 우리 스스로 새로운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함을 안고 간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냉엄한 외교 현실의 세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동의 없이 시대사적 전환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면서도 우리 스스로 뭔가 변화를 이뤄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지난 1년여, 결국 내일을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간절한 목표와 준비된 능력임을 새삼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했다"며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내일은 다르게 시작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