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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불평등·고용 없는 성장’ 고착화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8년 9월15일. 160년 전통의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세계경제 심장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경제 대지진’은 전 세계를 집어삼킨 금융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이전에 4~5%씩 성장하던 세계경제는 2009년 마이너스(-) 0.2% 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뒷걸음질 쳤다. 세계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1961년 세계은행이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다.  위기의 불씨는 실물 부문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몰락했고, 유럽은 재정위기에 빠졌다. 세계경제를 견인하던 두 축이 흔들리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은 물론 전 세계가 신음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서둘러 내놓은 구제금융 규모는 800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1200조원)에 달했다.  많은 것이 바뀐 시간이었다. 세계경제는 해답 없는 장기 침체와 저성장이 ‘뉴 노멀(new normal)’인 시대로 진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돼 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흔들렸고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전대미문의 ‘양적 완화’ 조치 등을 통해 세계경제는 조금씩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의 정치적 포퓰리즘 부상, 경제적 불평등 심화 등 2008년 위기는 2018년에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10년, 한국 사회는 어떤 난관에 봉착했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찾아낸 해법보다 못 푼 질문들이 더 많다. 저성장·저금리·저물가, 저소득과 고실업, 고용 없는 성장 등이 새로운 표준으로 도래했다. 그간 발표된 정부의 통계와 학계 등의 분석을 종합하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사회에 1997년 외환위기 질서의 고착화를 가져왔다. 2018년 한국에서 더 이상 ‘비정규직’ ‘양극화’ ‘불평등’과 같은 말은 낯설지 않다. 대신 ‘평생 직장’ ‘세대 간 부양’과 같은 개념은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데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뾰족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시위대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 연합

부모보다 못살 최초의 세대 등장 

 “여러분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지지 못한 최초의 세대입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는 2015년 12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의 말은 울림이 컸다. 강연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온라인에서 크게 회자됐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지옥’에 빗대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신문 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6년 만에 청년들에게 조국은 ‘헬조선’으로 변한 셈이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쩌다 ‘단군 이래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지금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라 생각되는 걸까.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출간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급격하게 진행된 청년들의 취업난과 비정규직의 공포를 생생히 담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책은 “취직에 성공한 20대도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라며 우리나라 비정규직 20대의 월평균 급여가 ‘88만원’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20대의 상위 5%만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과 같은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고 나머지 95%는 비정규직이며, 이들의 평균 임금은 88만원에 불과하다는 무시무시한 분석이었다.  이런 현실은 10년간 얼마나 개선됐을까.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보면, 2016년 가구주 중 30세 미만이고 소득 1분위(하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8만1000원이었다.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의 월 소득은 2013년 이후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13년 90만8000원에서 2014년 81만원, 2015년 80만6000원으로 떨어지더니 2016년엔 사상 처음 80만원에 못 미쳤다.  30세 미만 가구 중 연소득 1000만원 미만 비중은 2013년 4.4%에서 2016년 8.1%로 커졌다. 이쯤 되면 88만원 세대란 표현은 77만원 세대로 바꿔야 한다. 최근 통계는 더 무시무시하다. 올해 들어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는 중이다. 체감 실업률은 23%에 달한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 이어 N포세대라는 씁쓸한 신조어가 만들어진 한 이유다.  
2018년 기준 국내 자영업자 수는 약 570만 명에 달한다. ⓒ 시사저널 고성준

세습자본주의 고착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더 불평등해졌다. 통계청이 8월23일 발표한 ‘2018년도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양극화 격차는 5.23배로 벌어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24배) 이후 2분기 기준으로 10년 만에 가장 커졌다. 5분위 배율은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1분위(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132만49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 감소했다. 지난 1분기(-8.0%)에 이어 큰 폭으로 떨어졌으며 2분기로만 따지면 2003년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차상위계층인 2분위 가구의 소득은 지난해보다 2.1% 줄어든 280만200원이었다. 1분기(-4.0%)보다 폭이 줄었지만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상위계층인 4분위(544만4200원)와 5분위(913만4900원)의 소득은 각각 4.9%, 10.3% 늘었다. 특히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10.3%)은 2003년 통계집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소득 양극화만 문제일까.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소득분배 측정 지수로 전체 부(자산)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베타(β)값’을 제시한다. β값이 클수록 부가 소수에게 쏠려 있다는 뜻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β값은 2000년 5.8에서 2016년 8.28로 뛰어올랐다. 미국(4.10)이나 영국(5.22), 일본(6.01) 등보다 크게 높다. 한국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부의 대물림’이 주범으로 지목된다. 국세통계자료를 보면 상속재산과 추정상속재산, 그리고 증여재산을 포함한 총상속증여재산가액은 2012년 약 21조원에서 2016년 약 32조원으로 늘었다.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전체 민간자본에서 상속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자수성가한 부자보다 상속부자가 더 많은 부와 특권을 누리는 사회라고 묘사한 ‘세습자본주의’의 모습이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지난해 우리나라 주식부자 중 상속형은 약 65%로, 일본(30%)이나 미국(25%)의 두 배를 넘었다고 분석했다. ‘금수저·흙수저’ 논란이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자조는 이런 배경 속에 터져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중은 점차 늘어나 작년에는 무려 83.4%에 이르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하위 10% 가구에 속한 자녀가 중산층에 도달하기까지 5세대가 걸린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무려 150년이 걸리는 셈이다. 

※계속해서 ☞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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