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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 취약한 건축물 밀집…수도권 강진 발생 시 ‘아비규환’

 11월15일 지진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진원은 경상북도 포항, 규모 5.4의 강진이었다. 국내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래 지난해 9월12일 경북 경주 지진(진도 5.8)에 이어 두 번째로 강한 규모였다. 포항 인접 지역은 물론 수도권까지 진동이 전해졌고, 이날에만 진도 2.0 이상 여진이 33회나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향후 수개월 동안 여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규모는 경주보다 약했지만, 시민들의 위기감은 더 커졌다. 지진의 체감 위력은 물론, 피해도 더 컸기 때문이다. 도로는 갈라지고, 산은 무너져 내렸다. 건물은 뒤틀리고, 외벽에 금이 갔다. 확인된 시설 피해 건수가 1000건을 넘겼다. 인명피해도 상당했다. 60명이 넘는 시민들이 중경상을 입었고, 1700여 명이 대피소로 몸을 피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진원이 경주 지진보다 지면에서 가까워 피해가 더 커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이은 강진으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공식은 이미 옛말이 됐다. 사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지진이 꾸준히 발생해 왔다. 디지털 지진관측을 시작한 1999년부터 2014년까지 규모 2.0 이상 지진 발생횟수는 연평균 47.8회다. 2010년대 들어 보고 건수가 2010년 42건, 2011년 52건, 2012년 56건 등으로 계속 늘다 2013년 93건으로 크게 상승했다. 이후 2014년 49회, 2015년 44회로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경주 지진과 함께 모두 254회 지진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지진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었던 이유는 최근 경주·포항 지진 등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규모 2.0 전후의 약진(弱震)이었기 때문이다. 지진을 체감하지 못하니 위기감이 싹틀 새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대지진’으로 분류되는 규모 7.0 이상 지진은 계측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삼국사기》 등 역사기록물을 살펴보면, 7.0 규모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의 한 다세대주택 인근에 주차된 지진 피해 차량의 앞유리를 통해 규모 5.4의 강진이 휩쓸고 간 현장의 모습이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관통하는 ‘활성단층’

 이번 포항 지진 이후 국내에선 지진에 대한 우려와 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가 높다. 최근 강진이 경주·포항에서 벌어진 탓도 있겠지만, 영남 지역의 양산·울산·부산·경주 등이 그동안 지진 가능 지역으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이 지역 아래로는 양산단층·밀양단층·울산단층·동래단층 등 대표적인 ‘활성단층’이 지나고 있다. 활성단층은 말 그대로 단층이 움직이면서 지진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세계 지진의 90%가 이런 지역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에서는 위기감이 덜하다. 직접적인 피해가 전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수도권 지역은 과연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2012년 완성한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 지도 제작’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도 지진 가능 지역으로 조사됐다. 서울을 관통하는 추가령단층대(345km)가 활성단층이며, 단층대 가운데 규모가 크고 폭도 넓어서 지진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큰 ‘1등급’으로 분류됐다. 특히 추가령단층대에 속하는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역 지점과 대광리 지점의 단층은 운동이 가장 활발한 ‘확실도 1단계’로 조사됐다. 역사기록에도 서울의 지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1437년·1456년·1466년·1518년 서울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수차례 발생했다. 추가령단층 활동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최근 200년 동안은 지진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지진정지기(seismic gap)에 해당된다. 이는 그만큼 응력(應力)이 대량으로 누적돼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응력은 물체에 압축·굽힘·비틀림 등의 외력이 가해졌을 때 그 크기에 대응해 물체 내에 생기는 저항력을 말한다. 언젠가는 이 에너지가 단층의 약한 부분으로 방출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수도권을 강진 위험 지역으로 지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도권 강진 발생하면 ‘아비규환’

 만일 수도권 한복판에서 강진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국민안전처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남서쪽 10㎞ 남한산성 인근(경기 광주 초월읍)에서 경주 지진과 비슷한 규모 6.0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 영향권에 놓인 서울에서 79명이 사망한다. 부상자와 이재민도 각각 2179명과 3100명 발생한다. 건축물 역시 30동이 붕괴 전파하고, 108동이 비붕괴 전파한다. 광주가 속한 경기도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지진에 노출된 경기도민 가운데 79명이 사망한다. 부상자·이재민 수도 1938명과 2541명 발생한다. 여기서 규모가 0.5만 올라가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참담해진다. 서울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하면 1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중구(북위 37.6도, 동경 127도)를 진앙으로 한 6.5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수도권에서 사망 7726명(서울 7394명, 경기·인천 332명), 부상 10만7524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건물 파괴 등에 따른 이재민도 서울 9만2782명 등 수도권에서 10만4011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물은 수도권에서 2만7582동이 완전히 파괴되고, 4만여 동이 반파(半破), 51만7200여 동이 부분 손상을 입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지역에서 규모 7.0의 대지진이 발생하면 서울은 ‘아비규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서울·경기·인천을 비롯해 전국에서 67만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측정된다. 서울에서만 42만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경기 20만여 명, 인천 4만5000여 명 등 진앙지 인접 지역에 인명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예측됐다. 나머지 지역은 239명으로 나타났다. 이재민은 서울 29만 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47만여 명, 재산피해는 전국 664만여 동의 건물 중 93만 채가 파손된다. 서울시에선 총 67만여 동 중 76%인 51만1000여 채의 건물이 붕괴 및 부분 손실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는 서울 내에서도 특히 강남과 송파 지역의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진단한다. 서울의 대지 대부분이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강남과 송파는 한강에서 오랜 기간 퇴적된 자갈·모래·진흙 등 물기를 머금은 ‘충적층’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대지가 수평으로 흔들리게 될 경우 대지가 죽처럼 액상화할 수 있다. 이 경우 건물들이 그대로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강남과 송파 일대에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진으로 기울어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 시사저널 박정훈

 

내진성능 확보한 건축물 6.9% 그쳐

 이처럼 한국은 규모 6.5의 지진만으로도 국가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반면 일본의 경우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도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대표적인 이유가 건축물의 내진설계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내진설계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건축물 붕괴가 인명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5년 일본 고베(神戶) 일대에서 발생한 한신(阪神)대지진(규모 7.3) 당시 사망자 6400여 명 가운데 80% 정도가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지진의 아픔을 겪은 일본은 내진설계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2011년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에서 건물 붕괴 등으로 인한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현재 85%가량의 건물에 내진설계가 채택돼 있으며,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그 비율을 90%까지 올린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그간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 속에 내진설계가 강제되지 않았다. 1988년 내진설계 의무규정은 도입됐지만, 적용 대상이 ‘6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이상의 건축물’로 제한됐다. 이후 내진설계 기준은 점차 확대됐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기준을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까지 강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진성능이 확보된 건물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국내 내진설계 현황 조사’ 자료에 따르면, 준공된 국내 전체 주택(456만8851동) 중 내진성능이 확보된 주택은 6.9%(31만4376동)에 불과했다. 전체 주택 중 내진설계 의무대상 주택은 17.6%(80만6225동)다. 이를 기준으로 해도 내진율은 38.9%(31만4376동)에 그쳤다. 문제는 1988년 이전에 준공된 건축물이다. 내진설계가 도입되기 이전에 지어진 30년 이상 된 건물의 경우 내진보강이 필요하다. 1988년부터 2005년 사이에 건설된 5층 이하 건축물도 내진설계 의무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크게 파손된 포항 흥해읍의 대성아파트가 이런 경우였다. 1987년 완공된 이 아파트는 여섯 동 가운데 하나가 북쪽으로 15cm가량 기울면서 국내판 피사의 사탑이라는 오명을 썼다. 1층 베란다 하단부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30cm가 넘는 균열이 생겼다. 적용되는 내진설계의 등급 기준도 문제다. 현재 최고 내진설계 등급이 적용되는 건물은 종합병원·공항·교량·터널·댐이다.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 아래 아파트와 다중이용시설 등은 6.0이고, 이외의 건물과 주택은 5.5다. 이런 기준마저도 실제 건축 과정에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경주나 포항보다 강도가 높은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처럼 국내에 내진설계 건축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 건축물은 늘고 있다. 필로티 구조는 1층에 벽 없이 기둥만 두고 개방한 건축 형식이다. 2002년 주택의 주차 기준이 강화되면서 필로티 구조를 활용해 주차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건설업계에 유행처럼 번졌다. 지하주차장을 만드는 데 비해 비용이 크게 절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로티는 기둥으로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 특성상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 역시 ‘건축물 내진 기능 자가점검’ 홈페이지를 통해 필로티 구조를 지진에 취약한 건축물로 꼽고 있다. 1층이 연약층이 돼 변형이 크게 발생하고 붕괴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연약층은 여러 층으로 구성된 건축물에서 인접한 층에 비해 유연하거나 약한 부재로 구성된 층을 말한다. 이 연약층에 손상이 집중될 경우 붕괴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포항에서도 필로티 구조로 설계된 건물의 파손 피해가 속출했다. 
지진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필로티 구조 건축물 기둥이 붕괴된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지진 취약한 필로티 건축물 증가세

 문제는 필로티 구조가 서울을 비롯한 도시지역에서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정부가 2009년 ‘도시형 생활주택’이라는 주택 유형을 새로 도입하면서부터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용면적 85㎡ 이하, 300가구 미만 규모로 도시지역에만 지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 ‘도시형 생활주택 안전실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도시형 생활주택 1만3933단지 중 88.4%에 해당하는 1만2321단지가 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 시설 내진 강화와 더불어 지진 대응 매뉴얼과 국민들에 대한 대처 교육·훈련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지진에 대처하는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경주 지진 때 벌어졌다. 시민들이 지진 대응을 숙지하지 못해 혼란에 빠지자, 일부 시민들이 일본 정부의 재해대책 매뉴얼을 직접 번역해 배포한 것이다. 지진 이후 국회에서는 지진 대피교육 의무화 법안 등이 발의됐지만, 수개월째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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