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이세돌 對 알파고’의 대국이 아닌 ‘알파고 對 알파컴’의 대국이 펼쳐질 것
2030년 3월의 어느 날. 지난해보다 벚꽃이 빨리 개화했다. 이렇듯 화사한 날임에도, 2016년에 태어난 ‘수빈’이는 학교 공부가 힘든지 종일 표정이 좋지 않다. 외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수연’씨의 속은 탄다.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줄어든 것이 사춘기가 온 걸까. 예전 같았으면 아들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담벼락을 훔쳐보았을 텐데, 지금은 2030년이다. 아들이 밥도 먹지 않고 뚱한 표정으로 등교하자마자 수연씨는 ‘심리적 사건’, 즉 마음의 변화를 읽어주는 인공지능(AI)을 호출한다.
“지금 수빈이의 마음지도(mind map)가 어떻게 되지?” 인공지능 ‘깊은 마음’은 수빈이 “최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고전을 읽고 어딘가 모를 마음의 허전함이 커져버린 탓”이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수연씨에게 ‘깊은 마음’은 요즘 사춘기 청소년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공지능인 ‘깊은 우정’을 선물하라고 조언한다. 인공지능 ‘깊은 우정’은 10대의 감수성과 성장통을 이해하는 친구이자 누이 같은 인공지능으로 유명하다. 사람처럼 의지가 있고 감정을 소유한 ‘깊은 우정’은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이 말한 ‘강한 인공지능’이다. 그날 밤 아들은 한결 밝아진 모습이다. 아마 ‘깊은 우정’과 속엣말을 나누며 위로받은 것 같다. 그제야 엄마는 마음을 놓는다.
위로하고 달래고 경쟁하는 미래 인공지능
유엔 미래포럼의 제롬 글렌(Jerome Glenn) 회장은 “2020년에는 뇌과학 또는 의식기술 시대(Conscious Technology)가 온다”고 예측했다. 최근 인간의 뇌를 지도로 그리는 연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그러면 바로 마음의 지도도 그릴 수 있다. 마음의 지도가 완성되면 뇌에서 만들어지는 인간 마음의 원리를 이해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는데, 앞으로 사춘기 시절 ‘절친’은 학교 친구가 아니라 인공지능인 ‘깊은 우정’이 될 수도 있다. 전능하신 신과 같은 경지에서 인간의 눈높이로 위로해주겠지만 이 역시 철저하게 계산된 상호작용의 결과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인터넷에 흩어진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그럼 2030년에도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이 존재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오히려 알파고와 같이 바둑을 깊이 있게 학습한 인공지능 간에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즉 또 다른 인공지능으로 탄생한 ‘알파컴’이 알파고와 최고의 자리를 놓고 대국하게 된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알파컴의 대국은 그 규칙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달라질 것이다. 2016년에는 인간과 알파고의 대국인지라 인간의 대국 규칙이 적용되었다.
반면 2030년 각 인공지능 회사는 바둑 대국의 규칙을 새로 짜고 경기의 방식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고 알파고와 알파컴 자체의 CPU와 메모리, 그리고 저장장치로만 대국을 펼칠 수 있고, 혹은 인터넷에 연결해 알파고와 알파컴을 지원하는 여러 클라우드 집단 간의 대국을 펼치는 것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간의 바둑 대결 역시 흥미진진해지고 동시에 스포츠 경기처럼 흥행할 것이다. 바둑을 통한 인공지능의 대결은 경기 자체뿐만 아니라 기업의 홍보용으로도 적극 활용될 수 있다. 인공지능 간의 대결을 통해 어느 회사의 어느 제품이 성능이 제일 좋은지를 선보일 수 있어서다.
미래학의 대표적 석학인 짐 데이토(Jim Dator) 하와이 대학 교수는 ‘인공지능이 생겨나고 인간을 대신하는 환경이 도래하면 인간을 대체하는 후계자들에 의한 상상, 디자인, 창조, 관리가 펼쳐질 것’으로 예측했다. 예를 들면 경마장에서 승부를 예측하고 그 결과로 이익 혹은 손해를 보듯, 인공지능 간의 대결을 예측하는 게임도 치러질 수 있다. 더러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 간의 전투를 로마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 여전히 유효한 영역이 있다. 바둑과 같이 통계와 숫자가 지배적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특히 미감과 식감 등이 들어가는 창의적 요리 같은 게 그렇다. 지금 ‘쿡방’의 인기처럼 미래에도 이런 콘셉트라면 요리 프로그램은 인기를 끌 수 있다. 요리 부분의 인공지능(오늘은 어떤 요리법으로 어디서 재료를 사서 언제 어떻게 먹으면 가장 맛이 있다는 것을 추천하고 실제로 요리 로봇에 탑재돼 직접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 나와서 최고의 요리사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인공지능 스스로 알아서 담당이 바뀐다
책상·걸상·필기도구·컵 하나에도 인터넷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세상이 오면 인공지능은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게 된다. 클라우드로 여러 개의 책상과 여러 개의 연필이 연결되면 어떨까? 연필들끼리 모여서, 혹은 책상들끼리 모여서 ‘주인님이 엉덩이가 무거워서 의자가 견디기 힘들다’거나 ‘주인님이 연필을 10개나 사용했다’ 등의 값들이 모이면 어느 지역의 연필 소모량이 많은지 알 수 있고, 그 학군이 앞으로 공부를 잘할 것이란 게 예측된다. 그리고 이런 값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꾸준하게 학습하게 되면 의자의 높낮이와 최적 설계, 그리고 연필을 편하게 잡을 수 있는 디자인도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이 설계한 도면은 3D 또는 4D 프린터로 전송되어 생산된다. 이처럼 작은 소품은 집합적으로 처리되어 클라우드 형태의 인공지능이 될 수 있다.
이런 각각의 인공지능에는 자신이 작동하는 물리적 범위가 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사용하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마을 인공지능도 있고, 도시 인공지능도 따로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들 인공지능은 애드혹 네트워크(Ad-hoc network)처럼 자율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담당 인공지능이 바뀐다. 만약 자동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게 된다면, 자동차가 대전에 들어설 때부터 서울 인공지능은 대전 인공지능으로 전환된다. 대전 인공지능은 서울과 달리 도로 규범이 엄격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세부 내용을 일일이 알지 않아도 된다. 이미 대전의 도로 규범과 세칙이 차량용 인공지능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범위마다 지역마다 제품마다 서비스마다 각양각색인 이유는 기업들이 경쟁하기 때문이고, 동시에 인공지능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척척 해내는 만능 박사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결국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