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前 경찰청장 관련 뇌물수수·알선수재 모두 ‘무죄’…기획·표적 수사 주장 제기돼 ‘검찰 대망신’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지난 2월17일 현금 5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의 유죄를 자신하며 징역 5년, 벌금 1억원, 추징금 5000만원의 중형을 구형했지만 결국 헛발질에 그쳤다. 또한 이 건과 별도로 조 전 청장에게 인사 청탁을 알선해주겠다며 1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조전 청장의 지인들 역시 같은 날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5월부터 조 전 청장의 인사 청탁, 뇌물 수수를 입증하기 위해 조 전 청장은 물론 주변인에 대해 전 방위적인 수사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알선수재 혐의를 받은 송 아무개씨의 경우 120여 일간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송씨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무죄였다. 검찰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일부 진술에만 의존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애초부터 조 전 청장을 노리고 ‘짜맞추기식 기획·표적 수사’를 벌여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 전 청장은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그동안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로 피해를 본 주변인들에게 송구할 따름이다”면서 “(전직) 경찰청장인 나도 당하는데 일반 국민들은 어떻겠느냐. 이 모든 것이 한 국가기관(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같이 갖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저널은 수개월 간에 걸친 재판 과정을 취재하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했다.
5만원권 발행 전에 5만원권 돈다발 줬다?
변호인 : 증인(정 아무개씨)은 (조 전 청장이) 부산청장에 계실 때 첫 번째 준 200만원과 두 번째 준 200만원을 현금으로 줬습니까, 수표로 줬습니까.
정씨 : 5만원권 현금으로 줬습니다.
변호인 : (조 전 청장의) 부산청장 시절에 5만원권으로 200만원을 만들려면, 그때 5만원권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2009년도 1월달에 피고인(조 전 청장)은 경기지방경찰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5만원권은 2009년 6월달에 이 세상에 처음 나왔어요. 증인이 200만원을 5만원권으로 준비해서 줬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과 맞지 않아요.
코미디에서나 봄 직한 일이 실제 법정에서 일어났다. 조 전 청장에게 5000여 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정씨는 5만원권이 세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5만원권 돈다발을 조 전 청장에게 줬다고 주장했다. 당시 법정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진술에 참관인석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고, 재판장이 직접 나서 증인에게 사실관계를 두 번 세 번 되묻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씨의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증언은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부산지법 형사합의5부, 권영문 부장판사)는 “검찰 역시 이에(5만원권 400만원 뇌물 수수) 대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이는 검찰 역시 정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상당한 금원 제공 진술 부분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객관적인 사정이 밝혀짐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금원을 제공하였다는 진술의 신빙성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허물어졌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즉, 뇌물 공여자인 정씨의 진술이 5만원권 전달 시기 등에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나머지 진술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정씨의 진술 외에는 명확한 물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이 물증이라고 내세운 것은 2010년 8월19일 정씨가 조 전 청장에게 건넸다고 주장하는 3000만원의 금융 기록이 유일하다. 정씨는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조 전 청장을 서울지방경찰청 청장 사무실에서 만나 현금 다발을 줬다고 주장했는데, 이때 지인의 차명계좌에 3000만원을 송금한 계좌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조 전 청장에게 제공했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이 금융 기록을 명확한 물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씨가 돈을 건넸다는 8월19일은 물론 같은 달 말까지 이 계좌에서 3000만원은 전혀 출금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정씨)은 ‘2010년 무렵 이○○와 함께 서울에 가면 약 10명 정도 모이는데 그 술값이 2000만~3000만원 정도 나오기도 한다’, ‘내기 골프를 쳐서 신○○로부터 2000만원을 빌린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면서 “은행계좌로 송금한 3000만원이 술값이나 내기 골프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조현오에게 뇌물로 공여하기 위한 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檢, 약점 잡고 허위 진술 강요”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조 전 청장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씨를 회유하거나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뇌물죄에서 물증이 없는 경우, 증뢰자(贈賂者)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진술 내용의 합리성·일관성이 요구된다. 특히 증뢰자에게 범죄의 혐의가 있고 그 혐의에 대해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진술의 신빙성을 다시 한 번 의심해봐야 한다. 정씨의 경우 조 전 청장에 대한 뇌물 공여와 함께 약 40억원의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더구나 정씨는 2012년 6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40억원의 횡령 혐의가 인정될 경우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수형 생활이 예상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긴박한 정씨의 처지는 수사과정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정씨는 수사 초기만 해도 조 전 청장에 대한 금품 공여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던 중 2015년 4월11일 진술을 번복하며 금품 공여를 인정했다. 검찰이 정씨의 사무실과 집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론 배우자와 내연녀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착수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조 전 청장 변호인 측은 최후 변론에서 “검찰의 열람등사 거부로 정씨의 횡령이나 조세포탈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그동안 검찰에서 정씨를 조사한 내용에 비춰보면 정씨는 (횡령과 조세포탈로) 중형을 선고받을 것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을 것이다”면서 “검찰은 정씨의 범죄보다 전직 경찰 총수인 조현오의 뇌물수수에 더 관심을 갖고 정씨의 횡령 상당액과 조세포탈을 눈감아주는 대신 정씨의 진술에 터 잡아 조현오의 뇌물 수수를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 역시 “정○○(정씨)이 이 부분 공소 사실(조 전 청장에 대한 금품 공여)에 부합하는 진술을 할 무렵 정○○의 주거지, 서○○(배우자)의 주거지, 주식회사 ○○건설 사무실 등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함께 서○○, 김○○(내연녀) 등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 정○○이 자신 및 가족들의 위와 같은 횡령 혐의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조 전 청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독박 쓰면 당신은 매장된다”
검찰의 짜맞추기식 기획수사 의혹을 받는 것은 단지 정씨 사건뿐만이 아니다. 정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직후인 지난해 6월말, 조 전 청장에게 인사 청탁을 알선해주겠다며 1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송 아무개씨와 박 아무개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송씨와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조 전 청장을 노리고 진술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피고는 송씨와 박씨였지만 “전체 검찰 수사의 7할 이상이 조 전 청장의 비리를 밝히는 데 집중됐으며, 피고들의 약점을 이용해 사실무근인 일들을 범죄행위로 엮었다”는 것이다. 송씨와 박씨는 조 전 청장의 무죄 판결이 있기 1시간 전 똑같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 역시 정씨 사건과 판박이다. 조 전 청장에게 인사 청탁을 하기 위해 송씨와 박씨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인물은 곽 아무개 경감으로, 당시 곽 경감은 롯데몰 동부산점의 조성 과정에서 행정 절차상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식품 상가를 부인 명의로 임차한 혐의(뇌물 수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정씨와 마찬가지로 궁박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또한 곽 경감은 정씨와 마찬가지로 금품 공여 사실을 부인하다가 갑자기 진술을 뒤집었다. 이후 곽씨는 롯데몰 뇌물 수수와 관련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데 그쳤다.
이렇게 시작된 수사는 송씨와 박씨에 대한 ‘강압 수사’로 이어졌다고 한다. 박씨의 경우 수사 초기 인사 청탁을 위해 돈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가 이를 번복했는데, 처음에 알선수재를 인정한 이유가 검찰의 강압 수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박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직접 쓴 취조일기의 일부분이다.
(알선수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검사와 수사관이 대학교(박씨의 직장)에 징계 통보를 하여 파면을 시키고 연금도 못 받게 하고 대학교의 다른 교수들의 비위에 대하여도 전부 까발려 수사를 하여 완전히 대학을 망하도록 하겠단다…. (조사하면) 뭐든지 나온단다. 협박이다. 독박 쓰면 당신은 이제 매장된단다….
강압 후에는 본격적으로 짜맞추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공안이 없는 것도 만든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그저 (검찰이) 시키고 불러주는 그대로 따랐다…. 결국 장○○이가 1000만원을 가져와서 나한테 전달했고, 내가 그 돈을 그대로 조합장 사무실에 가져가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다가 옆 의자에 놓고 나온 걸로 맞추었다. 처음에 내가 의자 옆에 놓고 나온 것으로 하자 했더니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래보다는 의자 위가 더 나을 것 같다며 그렇게 하자고 한다. 수사관님 편하신 대로 하라고 했다. (돈을 담은) 쇼핑백 색깔이 뭔지 기억해보란다. 수사관 뒤쪽 사물함이 갈색 비슷해서 갈색이라 했다. 참 재밌다…. 검찰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을 세상에 누가 알겠나. 기가 찬다….
강압 수사의 목적은 조 전 청장이었다고 한다. 송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 중 일부다.
(검찰이) 2개, 3개, 4개, 5개 중 어느 것인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조현오 전경찰청장에게 제가 이천만원, 삼천만원, 사천만원, 오천만원 중 얼마를 주었느냐고….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친구로서도 금융기관에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하면서 비자금을 갖고 있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계속 추궁, 회유, 협박을 해왔지만…. (검찰의 요구대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평소 용돈을 여러 번 준 것처럼 해서 총 일천만원 정도 만들어서 법정에서 무조건 주었다고 할 테니까….
특히 다음과 같은 대목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사건은 매일 대검에 보고하고 지시받아 수사하고 있으니까 부산지검에서 함부로 처리할 수 없는 사건이고,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이미 오천만원 받은 혐의로 곧 구속되니깐 미련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저(송씨)는 깃털에 불과하니까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며….
“무소불위 검찰, 수사 제멋대로”
검찰이 조 전 청장을 겨냥한 ‘표적수사’를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조 전 청장과 검찰의 악연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조 전 청장은 경찰청장 시절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검찰과 각을 세웠고, 경찰청에 범죄정보과를 만들어 검찰 비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직 경찰 고위 관계자 A씨는 “검찰이 자신의 조직과 각을 세웠던 조 전 청장에 대한 보복수사에 나섰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면서 “특히 조 전 청장 임기 때 있었던 윤 아무개 전 용산 세무서장에 대한 수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세무서장 사건 당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던 검사가 이번 조 전 청장 사건을 지휘한 부산지검의 차장검사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 2012년 ‘육류수입가공업자 김 아무개씨가 세무조사 무마의 대가로 현금 2000만원을 윤 전 서장에게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윤 전 세무서장이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골프 접대 등 로비를 펼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A씨는 “윤 전 세무서장의 친동생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고위 간부였고, 윤 전 서장의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산 검사들도 모두 고위 간부였다”면서 “당시 검찰은 경찰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며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수차례 기각하는 등 정당한 수사를 방해했다. 결국 검찰은 윤 전 세무서장을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모든 사건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