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성 해프닝보다 추석 연휴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그러나 위험천만해
윤 대통령, ‘충암고 출신’ 안보 요직 중용으로 빌미 줘…냉철하게 대응해야
민주당은 8월말 폭염 속에서 계엄설을 기습적으로 터뜨린 이후 9월 들어 ‘친위 쿠데타’ ‘제2의 하나회’ 같은 자극적 용어를 구사하며 여권을 밀어붙이고 있다. 성난 용산 대통령실도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나치와 스탈인 전체주의의 선동정치를 닮아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번 계엄령 논란은 단순히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야가 고도의 심리전을 통한 정국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진짜 계엄령 발동을 걱정하는 걸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연일 목소리를 높여 금방이라도 군대가 튀어나올 것처럼 경고하고 있지만, 왠지 어설픈 느낌조차 든다. 애당초 이 대표는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 때 “그런 이야기도 있다”며 ‘카더라식 발언’을 했었고, 이후 김민석 의원은 ‘정황적 근거’라고 한발 뺐으며, 정성호 의원은 “정치인이 그런 정도 상상도 못 하냐”고 반문했다. 계엄설을 맨처음 터뜨린 김병주 최고의원은 9월5일 “제보자가 있지만 다치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지만, 여지껏 이렇다 할 단서조차 없다. 국회 국방위에서만 20년 넘게 활동한 민주당 5선 안규백 의원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대표를 비롯한 소수의 당 지도부가 작심하고 계엄설을 띄우는 모양새다. 민주당이 이렇다 할 근거 없이 작심하고 계엄설을 계속 띄우는 의도는 무엇일까?
“나폴레옹의 몰락, 화 자주 낼 때부터 시작”
윤석열 대통령의 멘털(정신 상태)과 이재명 대표의 10월 위기설, 문재인 수사 같은 현재의 국면을 일거에 뒤흔들어 보려는 의도는 아닐까? 《전쟁의 기술》 《권력의 법칙》의 저자로 유명한 로버트 그린 박사의 책을 읽어보면,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작금의 한국 정치에 그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의 ‘모략편’에 보면 “상대방의 기대와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라”는 심리전 스킬이 있다. 어느 날 밤 수천 명의 군중이 코끼리를 타고 횃불을 든 채 함성을 지르며 나타나듯이 돌발적인 ‘괴상한 수’와 ‘변칙 전술’을 구사할 경우, 상대방은 당황하고 분노한 나머지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계엄설이야말로 아닌 밤에 홍두깨 식으로 튀어나온 괴이한 수이자 변칙 전술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냉철한 대응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이번 계엄령 논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말해 준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에겐 이런 정치공학적 전술이 도움이 될까? 국회권력과 당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의 대표가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기 어려운 계엄설을 계속 터뜨릴 경우, 그의 진정성과 책임성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민주당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전략을 감행한 데는 사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민주당이 계엄설의 정황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첫째, 윤 대통령이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서 작금의 정국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규정하면서 반국가 세력-반자유 세력-반통일 세력의 엄단을 공언했고, 둘째 충암고 출신인 ‘충암파’들을 군의 국방-정보 분야 요직에 중용했으며, 셋째 박근혜 정부 때 기무사 계엄문건 사건이 있었다는 점을 든다. 윤 대통령이 탄핵 등 궁지에 몰리면 북한 도발로 인한 국지전 발생과 국회 마비 등을 빌미 삼아 계엄령을 발동하고 군의 충암고 직계 라인을 통해 전권을 장악할 것이며, 실제 그런 시도가 박근혜 정부 때 있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이나 충암고 출신의 중용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상황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꽤 있다. 그런 점을 간파한 민주당은 계엄설을 확산시킴으로써 중도층과 지지 세력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 극대화와 박근혜 악몽 되살리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보면, 개딸 같은 극성 지지층의 전의(戰意)를 더욱 부채질하며 양극단 정치와 선동정치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어 걱정이다.
사실 우리 국민은 기나긴 군사정권을 겪으면서 뼈아픈 ‘계엄령 트라우마’가 뿌리 박혀 있다. ‘계엄’이라는 말만 들어도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이 떠오르고, 권력자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그런 점에서 계엄이라는 단어가 반복해 튀어나올수록 부지불식간에 옛 아픔과 고통이 떠오르고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불안한 마음이 증폭될 것이다. 이 또한 야당의 노림수는 아닐까? 진보적인 운동권 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과거에도 이념성 짙은 계엄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적 실리를 챙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초 박근혜 정부의 기무사 계엄문건 사건에 대한 특별 수사를 지시해 적폐 청산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재명, ‘10월 위기설’ 뒤집기 위한 작심 선택?
최근 민주당은 겉으로 기세등등하지만 속으로는 고민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운명의 ‘이재명 10월 재판’이 시한폭탄 움직이듯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고,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뭔가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맞대응 카드가 필요하다. 과거 광우병-천안함-세월호-사드-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같은 민심 전환 호재 말이다. 그게 바로 계엄령 카드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계엄 시나리오가 얼마나 어설프고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엄령을 발동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살행위나 나름없다. 우리나라에서 헌정 이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7차례의 계엄령을 발동했지만 대부분 준(準)전시상황이었고, 발동한 후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현재 대한민국 장성 400여 명 가운데 4명이 충암고 출신이라고 ‘충암고 사단’ ‘제2의 하나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 말기의 계엄문건의 결말은 어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특별 수사 지시를 내려 검사 37명이 투입되어 104일간 200여 명을 집중 조사했지만, 전원 무혐의 처리로 종결되었다. 허망한 결말이었다.
민주당의 행태와 별개로 윤 대통령도 민심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기 바란다. 과감하게 변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계엄설은 또 튀어나온다. 야권은 앞으로도 계속 특검-탄핵-계엄설을 띄우며 탄핵의 길로 질주하려고 할 것이다.
《권력의 법칙》의 저자인 로버트 그린 박사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지도자의 냉철한 대응을 주문한다. 그는 나폴레옹이 몰락하기 시작한 시점은 러시아 원정의 패배가 아니라 최측근인 탈레랑에게 자주 화를 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고 말했다. 그린 박사는 당부한다. “분노는 대단히 비생산적인 전략이다. 늘 침착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만약 상대를 화나게 하고 당신은 차분할 수 있다면 결정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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