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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채 해병 특검으로 尹·韓 갈라치기…韓은 금투세 카드로 역공
尹, ‘김경수 복권’으로 이이제이…韓·李 회담 성사로 존재감 저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선출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임. 충분히 예견됐던 이 두 개의 정치 이벤트는 물고 물리는 ‘권력 삼국지’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 정치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세 개의 권력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총선을 지휘한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정식으로 집권여당의 권력을 거머쥔 한동훈 대표, 더 확고한 2기 체제를 구축하며 입법권력을 확보한 거야(巨野) 권력 그 자체로 거듭난 이재명 대표, 그리고 임기를 반 이상 남겨 놓은 ‘살아있는 권력’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현재 권력’이다. 현재 권력으로서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낮은 지지율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미래 권력’의 때 이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권력 삼국지는 물고 물리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당은 두 개, 권력은 세 갈래다. 이런 구도는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 사이의 균열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한때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다. 상황은 이제 달라졌다. 둘 사이엔 균열의 틈이 생겨났다.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론 꽤 깊은 틈이 자리해 있다. 여권의 두 권력은 균열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애쓰면서도 틈을 메울 노력은 크게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로 은근히 밀어낼 뿐이다. 두 사람의 경쟁자인 이 대표는 그 틈을 벌리려 애쓴다. 거꾸로 윤 대통령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처럼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름) 전략 등을 쓰며 미래 권력을 견제하고 있다. 앞으로 한동안 반복될 장면들이다. 지금 이어지고 있는 세 권력의 치열한 수 싸움은 바로 그 전초전이다. 권력의 충돌은 이미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 사진부터) ⓒ연합뉴스·국회사진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 사진부터) ⓒ연합뉴스·국회사진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회담 제안’ 李의 선공, ‘생중계’ 韓의 되치기

총 득표율 85%를 넘긴 압도적 기록으로 연임에 성공한 이 대표의 일성은 뜻밖이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향해 각각 회담을 제안했다. ‘마치 선전포고 같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일극(一極)’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적으론 굳건한 권력 체제를 구축한 뒤의 자신감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 치고 나간 이 대표의 가장 큰 의도는 ‘이 판은 내가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샅바싸움의 시작에서 먼저 기습적으로 기술을 건 셈이다. 상대는 일단 수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공수가 형성되면 주도권은 기운다. 수비자는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실제적으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입장에서 이 대표와의 회담은 제안 자체로 부담일 수 있다. 민생이 앞세워졌다. 피하기엔 여론이 부담이다. 받자니 끌려가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선 대통령과 여당보다 먼저 민생을 챙기는 수권 야당 대표로서의 이미지를 선점하는 득도 있다.

그런데 의외의 장면이 나타났다. 이 대표의 회담 제안에 한 대표가 즉각 화답했다. 한 대표는 이 대표의 당선에 환영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민생 앞에서 여야가 따로 없다. 민생을 위한 대승적 협력의 정치를 이 대표님과 함께 하고 싶다”며 “조만간 뵙고 많은 말씀 나누겠다”고 했다. 말뿐 아니라 실제 양측은 곧장 실무 협상에 돌입했다. 일사천리로 여야 대표회담 일정이 성사됐다. 양당 대표는 8월25일 만나기로 했다.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일정이 잠시 연기됐으나 최종적으로 성사되면 여야 대표의 공식 회담은 무려 11년 만이다. 2013년 11월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직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와 김한길 민주당 대표(현 국민통합위원장)가 만난 이후 처음이다.

한 대표가 대표회담을 받은 건 일종의 되치기로 해석된다. 순순히 주도권을 내주진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한 대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야 대표회담을 전체 생중계하자고 역제안했다. 되치기에 이어 이번엔 자신이 공격자의 위치를 점하겠다는 계산이다. 다만 무리한 공격은 자칫 빈틈을 내줄 수 있다. 여당 내부에서 “회담을 생중계하자는 건 무리수”라는 불안한 시선도 포착된다. 반면 한 대표와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수동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굉장히 능동적으로, 그것도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친 탁월한 수였다”고 평했다. 당장 이 대표 쪽에선 “정치 이벤트를 하는 것이냐”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한 대표 측에선 “반대할 명분이 있나”라며 지난해 이재명 대표가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공개 정책 대화를 요구한 일을 거론하며 압박에 나섰다.

이 대표와의 회담은 한 대표 입장에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도 될 수 있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해 만났으나 취임 2년 만에, 그것도 총선 참패 직후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후 대통령과 야당의 관계는 다시 극단적이었던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번 이 대표의 제안도 윤 대통령이 받지 않는다면 즉각적으로 화답한 한 대표의 태도는 더욱 부각된다. 윤 대통령이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야당과의 협치를 시도하면서 여당 내 권력의 추를 자신에게 더 가져오겠다는 생각을 한 대표가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 대표가 이 대표와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월1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1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지우기?…韓·李의 적대적 공생관계

이 대표에게도 또 하나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여당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사이의 틈을 더 벌리는 일이다. 한 대표 앞엔 고(故) 채 해병 사망 사고 특검이 최대 난제로 놓여 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스스로 채 해병 특검 추진을 약속했다. 단 제3자 추천 특검 방식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한 대표 당선 이후로도 여당 내에서 채 해병 특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 특히 원내지도부 등에선 ‘특검은 원내의 일’이라며 선을 긋는 모습도 보인다. 한 대표는 당내 의원들을 설득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으나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대통령실에서도 ‘절대 반대’ 기류가 읽힌다.

민주당은 최근 일찍부터 확실시됐던 이 대표 2기 체제 출범을 앞두고 제3자 추천 특검 수용 의사를 밝히며 특검의 공을 한 대표에게 던졌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한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하면서 “가장 큰 쟁점인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회담의 의제로 채 해병 특검법을 앞세운 것이다.

일단 종국엔 제3자 추천 특검 추진 여부를 어떻게 풀 것인지가 한 대표에게 가장 큰 문제겠으나 당장은 이 사안이 회담에서 의제로 다뤄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한 여권 관계자도 “야당이 채 해병 특검을 의제로 앞세울 게 뻔하다는 점에서 한 대표가 덥석 (회담 제안을) 받은 게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이 굉장히 불쾌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대표 측이 회담 자체로 노리는 게 이 지점일 수 있다. 여권의 두 개의 태양, 그 권력 사이를 벌려 놓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순순히 끌려가지 않겠다는 한 대표의 각오도 포착된다. 한 대표 측은 회담 의제로 금융투자세 유예 혹은 완화 문제를 앞세우고 있다. 이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 같은 주장을 했으나 당내 반발이 적지 않은 사안이다. 최근 취임한 이 대표에겐 부담스러운 주제일 수 있다. 양측 모두 서로에게 가장 예민한 사안을 최우선 의제로 주장하며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회담 결정과 달리 의제 협상에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엔 채 해병 특검과 금투세 유예라는 각각에 예민한 사안을 두고 서로 일정 부분의 부담을 주고받거나 혹은 이 두 가지 사안을 회담의 주요 의제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협상할 가능성도 있다.

 

韓, 민생 앞세워 협치 시도하며 尹과 차별화

예상을 깨고 만일 두 여야 대표의 회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온다면 윤 대통령이 고립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190석을 넘기는 거야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 거부권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국정이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이 지속돼 왔다. 이를 여야 대표가 풀어내며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갈 경우 윤 대통령을 향해 국정 책임론이 일 수 있다. 이재명 대표의 선출 직후 여야가 그간 이견을 보여왔던 전세사기특별법을 합의 처리하기로 한 데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2대 국회 들어 약 3개월 만에 여야가 합의 처리한 첫 민생법안이다.

그러나 세 권력이 일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대표의 회담 제안에 한 대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이 대표와의 협상 관계를 설정했으나 정작 이 대표는 한 대표보다는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더 중요한 목표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선 차기 경쟁 상대인 한 대표를 회담을 통해 부각시켜주는 것보다 윤 대통령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정치적 위상을 입증하는 게 더 큰 정치적 이득일 수 있다. 이처럼 미묘한 배경이 추후 여야 대표회담에 난항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 대통령도 두 차기 권력의 부상 앞에 직면한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을 피하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9월초 연금개혁 정부안 발표 계획 등을 밝히며 한동안 멈춘 것으로 평가된 3대 개혁과제를 포함한 주요 국정과제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아울러 최근엔 군 출신을 전면 배치한 외교·안보라인의 전격 교체(신원식 안보실장-김용현 국방부 장관 지명)를 통해 안보 드라이브에 집중한다는 관측도 있다.

윤 대통령이 자체적인 쇄신 시도들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면서도 두 차기 권력에 대한 견제 또한 놓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야권의 또 다른 차기 권력으로 평가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복권은 일종의 이이제이라는 관측이 있다. 연임을 통해 더욱 견고한 이재명 체제로 탈바꿈한 민주당을 내부적으로 흔들기 위함 아니냐는 해석이다. 여당 내에서 친윤(親윤석열)계를 중심으로 한 대표에 대한 공개적인 견제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 윤 대통령의 입김 때문이라는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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