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인수위’ 출신 이종식 대표, 목적과 다른 투자금 사용 정황에 횡령 등 혐의 피소
“투자금은 합의하에 썼고 유사 고발건 무혐의 종결돼” 항변
한국의 알리바바를 표방하며 투자금을 끌어모아 한때 국내 최대 역직구 쇼핑몰로 불린 이커머스 업체 ‘판다코리아’(이하 판다)가 100억원대 횡령·배임 의혹에 휩싸였다. 최근 대표가 피소된 가운데 수사기관은 관계자 조사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판다는 2014년 초 출범할 때부터 화려한 배경을 자랑했다. 설립자는 일간지 기자 출신 이종식 대표로, 윤상규 NS스튜디오 대표(전 네오위즈게임즈 대표)와 합심해 창업했다. 두 사람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으로 같이 활동한 이력이 있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이던 이준석·손수조 등과 함께 ‘박근혜 키즈’였던 셈이다.
판다가 특히 주목을 받은 부분은 투자자들의 화려한 면면이었다. 공동창업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딸 최민정씨다. 이 때문에 한때 판다가 SK의 투자금을 받아 설립됐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에 이 대표는 “온전히 제 퇴직금과 중소기업진흥공단 지원금으로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씨는 판다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2014년 9월 해군에 입대했다. 그때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사드 사태’ 후 배터리 사업으로 점유율 1위
최씨의 퇴사로 어려움을 겪던 판다는 곧 다시 지원군을 만났다. 2014년 12월 ‘욘사마’ 배용준이 대주주인 연예기획사 키이스트가 33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이후 판다는 키이스트 소속 배우인 한류스타 김수현을 앞세워 중화권 시장 공략에 나섰다. 배용준과 김수현도 개인 자격으로 판다에 투자했다. 투자자 중에는 ‘박연차 게이트’ 당사자인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도 있었다. 이에 힘입어 판다는 창업 1년 만에 1000억원의 회사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다 2016년 ‘사드 사태’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이때 신사업으로 구상한 게 휴대폰 보조배터리 대여 서비스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2019년 ‘백퍼센트’란 회사를 설립했다. 대외적으로는 판다의 자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이 대표 자신이 최대주주(32%)인 개인회사에 가깝다. 백퍼센트에 대한 판다의 지분율은 그보다 낮은 19%다. 백퍼센트는 보조배터리 수요와 맞물려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까지 전국에 1만 대가 넘는 보조배터리 대여 기기를 설치해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신한·하나증권 등 대형 기관사도 투자자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 성장세와 투자유치 이면에는 이 대표의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고소장과 계약서·재무제표·실사보고서 등 관련 증거자료에 따르면, 백퍼센트는 2022년 4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그 용도는 ‘기기 매입 및 인건비’로 제한돼 있었다.
그런데 백퍼센트는 투자금 전액을 판다에 차입금 변제와 신규 대여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했다. 지급 목적 중에는 보조배터리 대여 기기 구입대금도 있었는데, 정작 백퍼센트 실사보고서에는 기기에 대해 ‘미납품’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를 두고 “판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백퍼센트에 배임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판다와 백퍼센트 모두 최대주주가 이 대표이기에 상호 계약은 수월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 의혹도 불거졌다. 2022년 초 판다는 60억원을 따로 투자받았다. 그런데 그해 3분기 회사의 가결산 재무제표를 보면 ‘IOT상품’이란 재고자산이 55억원어치 쌓여 있다. 이는 판다가 자회사인 중국 법인으로부터 매입해 카카오모빌리티에 납품하는 공유형 전기자전거를 가리킨다. 남아있는 55억원 상당의 전기자전거 재고는 의문을 낳았다. 카카오와의 납품 계약분은 이미 전달 완료됐기 때문이다. 앞서 2022년 3월 전기자전거 화재 사고로 납품이 늦어지긴 했지만, 판다는 이미 물품인수증도 받아둔 상태였다.
이에 대해 내부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2022년 4분기에 해당 재고자산은 전액 매출원가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적자 폭이 치솟아 그해 8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부풀린 매입재고가 들통나 손실로 처리했다”는 시각이 짙어진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고소장에는 판다와 백퍼센트가 2022년 유치한 총 투자금 100억원이 이 대표의 횡령·배임 액수로 적시됐다. 혐의를 검토한 한 상법 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비유했다.
“요식업 경영인이 ‘우리에게 투자해 주면 피자가게 20개를 늘려 200억원의 매출을 만들겠다’고 말한 후 10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실제 점포 20개를 열고도 예상한 매출이 안 나왔다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피자가게를 하나만 열고 ‘사실 전에 하던 햄버거집이 망해서 그 빚부터 갚았다’고 한다면 전형적인 사기다.”
“피자가게가 '햄버거집 빚 갚느라 투자금 썼다'고 하면 사기”
판다코리아의 2022년 가결산 재무제표에는 또 다른 의문의 자산이 등장한다. ‘회원권’이다. 추후 법인카드 사용내역 조회 결과, 이는 국내 최고급 골프클럽으로 유명한 춘천 휘슬링락CC 회원권으로 밝혀졌다. 2022년 초 판다가 회원권을 구입했을 때의 시세는 13억원이었다. 이 대표는 회원권을 외부인과 공동 구매해 7억원에 취득했다.
해당 회원권을 구입하기 한 달 전에 판다코리아는 벤처캐피털(VC) B사의 투자금 20억원을 유치했다. 고소인은 “투자금은 투자계약상 정해진 용도 이외의 사용이 금지돼 있음에도 이 대표는 투자금으로 골프 회원권을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백퍼센트 회계장부에는 그해 3월부터 6개월 동안 휘슬링락CC에서 58차례에 걸쳐 2600여만원의 접대비가 지출된 내역이 나와 있다. 이후 판다는 2022년 12월 휘슬링락CC 회원권을 매각했다.
이 대표는 암호화폐 사업에도 손을 댔다. 그는 2021년 ‘더리차지(RCG)’ 코인을 발행한 후 일부를 자신과 법인 ‘더리차지’가 나눠 갖고 있었다. 더리차지 법인의 현재 등기상 이사진은 이 대표가 유일하다. 이 대표의 개인회사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더리차지 코인의 당초 발행 목적은 백퍼센트의 충전 서비스 이용자에게 보상 명목으로 나눠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충전 서비스와의 연계는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코인은 발행 목적과 달리 이 대표의 개인 자산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백퍼센트 직원들에게 더리차지 코인의 홍보와 상장 업무를 맡겼다고 한다. 또 코인 상장수수료 약 1억원을 백퍼센트 회계장부에 ‘보증금’으로 써놓고 자기 몫의 코인으로 메웠다. 이후 추가로 코인을 백퍼센트에 5억5000만원에 넘긴다는 계약서를 쓰고 실제 해당 금액을 지출했다. 그 외에 백퍼센트가 더리차지 법인에 돈을 빌려주고 용역수수료도 지불하게 했다. 이를 포함해 이 대표가 코인을 통해 횡령·배임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액수는 총 14억여원이다.
시사저널은 19일 이 대표를 만나 입장을 들었다. 그는 “받은 투자금은 모두 투자기관과의 합의 하에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재고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선 “당시 전기자전거 화재로 납품이 지연되다가 뒤늦게 재고로 잡혀서 그런 것”이라며 “완전한 허위 사실이고 재무적으로 모두 소명 가능하다”고 강변했다. 휘슬링락CC 회원권을 두고는 “해당 골프장에 우리 제품인 전기 카트를 공급하기 위해 영업용으로 구입한 것”이라며 “법인이 영업용 자산을 취득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더리차지 코인과 관련해선 “백퍼센트의 코인 구매 역시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백퍼센트가 코인 구매금으로 썼다는) 5억5000만원은 사실 대여금이었고 그중 2억5000만원을 올 3월에 변제했다”며 “감사보고서에 모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또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와 협업해 더리차지 코인을 1호 RWA(실물연계자산)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그 실용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해당 사안은 이미 작년에 경찰에서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됐다”며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마저 무혐의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확인 결과 작년에 무혐의로 판단된 사건은 이 대표에 대한 고발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은 증거와 혐의가 추가돼 올 6월 검찰에 접수된 고소 사건이다. 사건을 이관받은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고소인 조사를 마쳤고, 향후 수사 강도를 높일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고소인은 증거 보강을 위해 작년 말부터 이 대표를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허용 가처분을 세 차례 신청한 바 있다. 세 차례 모두 고소인의 열람권이 인정됐으나 회계장부는 전달되지 않았다. 고소인이 자료를 입수한 건 첫 가처분 결정일로부터 7개월 만인 지난 5월이었다. 그 사이 이 대표가 의무 불이행으로 부담해야 할 간접강제금은 8100만원까지 늘어난 상태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VC…“재무제표도 못 보는 사람 수두룩”
이 대표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벤처캐피털 업계의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우후죽순으로 업체가 생겨나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한 종류인 벤처투자회사(구 창업투자회사)의 설립 요건은 2005년 최소 자본금 100억원에서 현재 20억원까지 떨어졌다. 그사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21년 기준금리 인하로 ‘유동성 파티’가 벌어지면서 업계가 과열 양상을 띠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벤처투자회사는 149개였다. 2023년에는 246개로 4년 사이 97개 증가했다.
회사가 난립하면서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형 로펌 출신 M&A 전문 변호사는 “벤처투자회사 경영진 중에 재무제표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며 “은행 등 기관투자가가 ‘마도(주도)’를 서면 우르르 따라가서 공동 투자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현실은 일반 국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벤처업계에 투입되는 혈세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벤처투자회사 등이 조성한 펀드에 3년간 2조원 이상 출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벤처투자회사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도 신설했다. 벤처 투자 실패의 여파를 업계만 떠안는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그럼에도 투자 실패로 부도 위기에 몰린 벤처투자회사는 해마다 늘고 있다. 자본잠식에 빠진 벤처투자회사는 △2021년 4개 △2022년 6개 △2023년 8개 등으로 나타났고, 올 상반기에만 5개가 자본잠식 경고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