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토론 참패 후폭풍 여전…“미셸 오바마 나오면 트럼프 압도”
애들라이 E 스티븐스 2세(1900~1965). 대통령을 지내지 않았지만 미국인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기에도 극단적 행보에 가담하지 않고 양심과 지성을 지킨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1952년 미 대선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30%를 밑돌던 지지도 때문에 결국 대선 레이스에서 사퇴하면서 애들라이 스티븐스는 갑작스럽게 민주당 대선후보로 호출되었다.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 재선을 준비하던 애들라이 스티븐스에게는 정치적 도박이었다. 결과는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를 상대로 44.3% 대 55.2%, 선거인단 89명 대 442명의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민주당 집권 20년의 피로감과 한국전쟁 종식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이 높아지던 가운데 애들라이 스티븐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전쟁 영웅인 아이젠하워를 상대로 예정된 패배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이든이 6월27일 TV 토론에서 트럼프에게 참패한 이후 민주당은 새로운 애들라이 스티븐스를 찾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강력히 완주 의사를 보이고 있으며, 1952년의 정치 상황과는 다른 면도 많아 후보 교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커 보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트럼프가 아이젠하워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화당도 낙승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오랜 우군 펠로시와 헐리우드 스타 클루니도 결단 촉구
이런 가운데 7월9일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은 각각 오찬과 총회 모임을 통해 바이든의 거취를 논의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까지 반납하고 진행된 7월9일 비공개 상원의원 모임에서는 대선 패배 가능성을 우려하며 눈물까지 흘린 참석자가 있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하원의원 총회에서도 20여 명의 참석자가 바이든의 대선 승리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여기에 바이든의 오랜 우군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결단 촉구에 무게를 싣는 미묘한 발언을 한 데다 또 다른 버팀목이었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마저 사적으로 바이든 대통령 이외의 선택지에 열려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바이든의 사퇴론에는 다시 불이 붙는 모양새다. 바이든 선거자금 모금에 앞장서온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사퇴 촉구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8월19일부터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당대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미국 민주당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의장은 각 주별 대의원들에게 어느 후보를 지명하는지를 묻는 공개 호명투표(Roll Call)를 진행하는데 이론적으로는 민주당 규약상 대의원들이 대답을 안 할 수도 있다. 공화당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명시적으로 밝히고 그에 따라 투표를 하도록 당 규약에 정해져 있는 반면, 민주당은 양심에 따라 대의원이 속한 주의 유권자들이 어느 후보를 지지했는가를 충실하게 투표에 반영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대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동으로 러닝메이트인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것은 아니며 경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그럼에도 해리스 부통령부터 미셸 오바마, 민주당 주지사 3인방 등 바이든의 대안에 대한 하마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를 둔 미국 최초의 여성·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거쳐 2016년 캘리포니아주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20년 미 대선을 앞둔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낙점되어 ‘주류 백인 남성’ 출신인 바이든을 보완하며 표심 확장에 기여했다. 6월27일 TV 토론 이후 진행된 CNN 여론조사에서 만약 해리스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해리스 45% 대 트럼프 47% 결과가 나와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기대감을 품을 수 있는 대목이다.
50% vs 39%…미셸 오바마, 트럼프에 우위
현재 여론조사 결과로는 미셸 오바마가 단연 화제다. 7월2일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조사 결과 미셸 오바마와 트럼프 맞대결 시 50% 대 39%로 상당한 격차로 우세를 보였다. 본인은 정치 등판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셸 오바마는 민주당 후보군 중 줄곧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밖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쉬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그레천 휘트먼 미시간 주지사의 이름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들은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4~5% 정도 열세지만 접전 가능성을 보였다. 샤피로와 휘트먼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의 주지사로서 본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샤피로는 2020년 주지사 재선 당시 트럼프가 공개 지지했던 공화당 후보를 14%포인트 차로 누른 바 있다. 휘트먼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와 차별화할 수 있는 후보로 주목받았다. 그렇지만 휘트먼은 7월1일 성명을 내고 바이든을 100% 지지한다고 밝힌 상태다. 뉴섬은 6월27일 문제의 대선 토론회가 끝난 후 현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바이든 사퇴 가능성을 앞장서서 일축했는데 오히려 자신감 있는 그 모습이 지친 바이든과 대비되어 대선 잠룡으로 부각됐다. 이들 주지사 3인방은 50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 각자 지역에서 인정받은 정치·행정 능력과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 이번 대선후보 교체 논쟁 과정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도 후보로 계속 거명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바이든이 자진 사퇴하고 바이든이 지명하는 새 후보에게 민주당 대의원들이 호명투표를 하는 ‘아름다운 이양’을 하지 않는 한 이변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혹여 민주당 대의원들이 바이든이 지명하는 새 후보에게 호명투표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해도 바이든을 지지했던 전미 민주당원들의 문제 제기 또한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바이든을 후보로 지명하는 전당대회를 치른다고 해도 지금 분위기로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축제의 장이라기보다는 우려 속에서 당원들의 결의를 다지는 비장한 자리가 될 수 있다. 7월15~18일 밀워키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이 모여 흡사 종교집회와도 같은 광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면 이와 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는 기세 싸움이기도 한데 트럼프가 승기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인가. 8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으로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