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여사 문자’에 뒤덮인 국민의힘 전당대회
정책비전 경쟁 대신 계파정치 이전투구만
“그렇게 당을 망가뜨리면서 이기면 뭐가 남느냐”(한동훈 후보), “팀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대표를 맡겨서 실험하기엔 너무 위험하다”(원희룡 후보), “다 같이 망하는 전당대회냐”(나경원 후보), “(원희룡·한동훈) 갈등은 윤석열 대 한동훈 대리전이다. 누가 되든 이 당은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윤상현 후보).
7월8일 광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에서 4인의 당대표 후보가 했던 말들이다. 후보 자신들의 입을 통해 이미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진흙탕 싸움 속에서 공멸의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훈 대 반(反)한동훈’ ‘친윤 대 반윤’의 대결 논란 속에 계파 싸움으로 번지던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김건희 여사 문자’를 둘러싼 공방전이다.
발단은 CBS라디오를 통해 CBS 간부가 지난 1월 김 여사가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보냈다는 문자메시지를 재구성해 공개하면서였다. 이에 한 후보는 전체적인 상황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문자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는데, 7월8일 TV조선이 5건의 문자메시지 전문을 보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열흘이 지난 1월15일부터 25일까지 보낸 문자들에서 김 여사는 한 위원장에게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자신이 사과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괜히 작은 것으로 오해가 되어 큰일 하시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할 만한 사안으로 이어질까 너무 조바심이 납니다.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1월15일), “제가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제 탓입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이런 사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1월15일 두 번째 문자),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하고 싶습니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1월19일)
정치 경험 부재로 미숙한 판단 내린 한동훈
한 후보는 “그 상황에서 (김 여사와) 사적 통로로 답을 주고받았다면, 그 문자가 오픈되면 야당이 국정농단이라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 여사가 5건의 문자를 보내면서 사과 의향을 밝히며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분명히 했는데도 한 위원장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최대 현안이었던 김 여사 사과의 기회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이유다.
물론 “나는 당시 사과가 필요하다는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고, 그에 따라 큰 피해를 입었다”는 한 후보의 설명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시 김 여사의 사과를 설득해야 할 입장에 있던 여당 비대위원장이 당사자가 사과 의사를 전해 왔는데도 묵살해 결국 사과 없이 총선을 치르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은 드러나게 됐다. 교과서적으로야 공과 사의 구분은 필요하지만, 당면한 최대 악재의 해결이 가능한데도 그 기회를 건너뛴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의 ‘읽씹’(읽고 무시)에 당혹스러웠을 김 여사는 그냥 사과 없이 지나갔고 그 후 총선에서 여당이 최악의 참패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적인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당시 한 위원장이 김 여사의 사과 의향을 당에 전해 비대위에서 사과 요청을 하는 결정을 내렸다면 국민의힘은 ‘디올백’ 악재를 털고 총선을 치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위원장이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정치 경험의 부재에 따른 미숙한 판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다른 후보들이 일제히 한동훈 후보의 ‘읽씹’을 비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훈 독주’ 상황을 막을 묘안이 없던 시점에 다른 후보들로서는 한 후보의 총선 패배 책임론을 부각시킬 호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문자를 둘러싼 후보들 간 공방전이 집권여당 전당대회의 최대 쟁점이 되어버린 광경은 당혹스럽다. 물론 그에 관한 논란도 거쳐야 할 과정이긴 하지만, 2027년 재집권을 향한 보수정치의 환골탈태를 위한 비전의 경쟁터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가 계파정치의 이전투구장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는 모두 한동훈 후보의 문자 ‘읽씹’이 총선 패배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시기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김 여사의 사과를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는 얘기를 우리는 들은 바가 없다. 그러니 다른 후보들이 한 후보의 책임을 추궁하는데도 겸연쩍은 한계는 따를 수밖에 없다.
‘김건희 여사 문자’를 둘러싼 공방전은 급기야 친한동훈계와 친윤석열-원희룡계 간 대결로 드러나고 있다. 한 후보 측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김 여사의 문자가 유출된 배경을 친윤의 전당대회 개입으로 규정하는 모습이다. 특히 친윤계의 핵심인 이철규 의원의 관여를 의심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반면에 친윤의 우회적 지원을 받고 있는 원 후보 측에서는 한 후보를 향해 ‘해당 행위로 인한 윤리위원회 징계감’이라고 공격하는 극한적인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래 포기하고 자해 정치에 몰두
이렇게 가면 누가 당대표가 되든 심각한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고, 보수정치의 분열 사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전당대회가 과도한 비난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황우여 비대위원장), “지금 전당대회 모습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공방으로 자해적 행태를 보인다”(추경호 원내대표).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도 과도한 공방의 자제를 요청했지만 달아오른 공방의 과열은 식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김건희 여사 문자’에 대한 ‘읽씹’ 논란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내부 문제일 뿐 국민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안은 아니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민심의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시켰던, 그래서 총선에서 표를 주기 어려웠던 보수 여당이 뼈아프게 반성하고 새로 태어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너도나도 ‘김건희 문자’만 얘기하는 전당대회에서는 집권여당의 어떤 비전도 다짐도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고 자해정치를 하는 모습 같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