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위험 낮추고 면역기능 강화에도 기여
최근 주목받고 있는 ‘녹색 처방’은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활용한 건강 관리 방식이다. 녹색 처방은 의사가 환자에게 자연 속에서의 활동을 처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은 1990년대 뉴질랜드에서 시작되었고, 신체 활동 부족과 만성질환 증가라는 문제에 대안으로 제시됐다. 의사는 환자에게 공원 산책, 등산, 정원 가꾸기 등 다양한 형태로 자연 속에서 하는 활동을 처방하고, 이를 통해 환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도모하게 된다.
얼핏 뜬구름 잡는 막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녹색 처방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영국의 그린 짐(Green Gym) 프로그램은 지역사회 정원 가꾸기와 같은 활동을 제공하고, 미국 워싱턴DC의 ‘Unity Health Care’라는 조직은 공원 산책을 처방하는 ‘파크 RX’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의 ‘서울형 치유의 숲길’ ‘녹색복지센터’ 삼림 치유 프로젝트, 경기도 양평군의 ‘숲 체험 처방’ 등 자연 속 활동을 건강 관리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녹색 처방의 건강상 이득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자연환경에 노출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감소하고,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등 긍정적 정서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스트레스 완화는 물론이고 기분 개선에 도움을 준다. 또한, 자연 속에서의 신체 활동은 전반적으로 신체 활동량을 늘려 비만·심혈관질환·당뇨 등 만성질환 위험을 낮추고,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데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녹색 처방은 다양한 질환의 예방과 관리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연구에서는 녹색 처방이 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으며, 2023년 연구에 따르면 노인 인구의 인지기능 향상과 치매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산림 63%…녹색 처방에 좋은 환경
한 무작위 대조 연구에서는 녹색 처방을 받은 그룹이 일반 처방을 받은 그룹에 비해 신체 활동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삶의 질이 개선되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즉, 일반적인 운동의 권고보다 자연 속에서의 운동, 신체 활동을 권고하고 처방하는 경우 신체 활동량이 더 효과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녹지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과 조기 사망률이 낮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자연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3%가 산림이니만큼, 녹색 처방을 활용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도시 근교의 숲과 공원을 활용한 건강 프로그램 개발, 의료기관과 지자체의 협력을 통한 녹색 처방 시스템 구축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녹색 처방은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 및 발전될 수도 있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실내에서도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거나, 도시 녹지 공간 확대와 접근성을 향상시키려는 시도, 학교와 직장에서 녹색 처방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녹색 처방을 다른 건강 관리 방식과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명상이나 요가 같은 마음 챙김 활동을 자연 속에서 수행하는 프로그램 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녹색 처방이라는 표현은 의료진에 의해 권고되는 자연 속에서의 신체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명명된 호칭이지만, 실제 적절한 신체 활동 강도와 방식을 찾아 자연에서 시행한다면, 이러한 ‘처방’이라는 호칭을 넘어서는 이득이 개인에게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