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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 논란
SNS 아닌 진짜 현실 속에서 건강한 사회공동체 의식 회복해야

20년 전 한 소도시에서 일어났던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되고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지난 6월초 한 유튜버의 가해자 신상 공개로부터 비롯되었다. 

밀양에서 일어난 이 성폭행 사건은 당시에도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한 명의 여학생을 무려 44명(실제 가담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도 알려져 있지만)의 남학생이 1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집단 강간, 금품 갈취, 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협박과 실제 유포, 폭행을 일삼은 죄질이 심각하게 나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피해자 보호와 배려가 없는 경찰·검찰의 2차 가해,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한 지역사회,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의 반성 없는 폭언과 합의 요구 등 2차 가해와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으로 많은 사람을 분노에 빠뜨렸고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같은 미성년자였음에도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로서 보호를 받았지만, 정작 피해자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6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정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6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정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유튜버 영향력, 공적 언론 뛰어넘는 것 실감

서울 광화문에서 이에 분노한 촛불시위가 여러 차례 열렸을 정도로 여론의 관심을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44명의 가해자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기소된 10명 중 주범 3명은 범죄사실도 남지 않는 소년원 수감, 6명은 보호관찰, 80시간의 봉사시간, 40시간의 교화 프로그램 수강 등의 처벌을 받았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훈방 조치되었다. 수사 종결 후에도 피해자가 전학 간 학교까지 찾아가 합의서를 요구하던 가해자 부모들의 만행이 있었지만 경찰이나 학교 측의 피해자 후속 보호조치는 전무했고, 피해자는 결국 고향을 떠나 숨어야 했다. 

20년이 지난 올해 6월초 한 유튜버의 공개로, 지금도 힘겹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피해자와는 달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가해자들의 평범하고 안위한 삶이 알려지면서 대중은 분노했고 그들을 향한 응징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중적 관심의 흐름을 읽은 다수의 유튜버가 합류했고, 결국 신상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공개된 가해자들은 폐업·해고·사직의 결과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피해자가 생기기도 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 같은 SNS를 통한 사적 제재는 최근 계속돼 왔고 점차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부산의 돌려차기남이라든지,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거제 교제살인 등 현실 법체제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 유튜버들이 신상 공개 등의 영상으로 사회적인 여론을 만들어 실제 양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그것이다. 

사적 제재는 분명히 범죄다. 게다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책임질 필요도 없으며 손쉬운 동작만으로도 가능한 SNS로 인해 사적 제재는 더욱 쉬워졌다. 개인의 동의하지 않은 신상 노출은 그것 자체가 위법이고, 명예훼손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적 제재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공적 체계인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일부분이나마 만족시켜 준다는 것이다.

또 불의를 처단하는 정의로움에 동승하는 듯한 쾌감이 있고, 무엇보다 대중이 자극적인 소재를 편향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영상을 만드는 이들은 피해자를 돕거나 정의를 지향하는 것이 관심 밖일 수도 있지만 그런 영상에 ‘좋아요’나 ‘화나요’의 이모티콘을 누름으로써 정의의 실현에 동승하는 것 같은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 ⓒ무비꼴라쥬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 ⓒ무비꼴라쥬

이러한 사적 제재는 이미  TV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미제범죄 추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온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것들이 그 모체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공적 기능과 조건을 가진 언론의 역할을 사적 기능의 SNS가 나눠 가짐으로써 개인방송을 통한 사적 제재 역시 대중의 관심을 등에 업고 앞으로도 영역을 확산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대중은 이제 TV나 신문으로 뉴스를 보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며, 일방향 전달이 아닌 다방향으로 뉴스를 공유하고 있다. 단순한 뉴스뿐 아니라 사회·정치·문화 모든 분야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섞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1인 미디어가 그동안 공적 기능을 담당해 오고 여론을 이끄는 책임도 담당했던 언론의 역할을 꿰찰 뿐 아니라 더한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몇몇 힘 있는 유튜버들의 영향력이 공적 언론을 뛰어넘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SNS로 관심 몰리는 건 ‘외로움의 전염병’ 질환

SNS에서의 사적 제재 기능을 오롯이 부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분명히 예전보다 대중의 성인지 감수성은 높아졌고 공정에 대한 기준도 예민해졌다. 사법부의 제도와 구성원들이 성인지 감수성이나 상식적인 면에서 오히려 대중을 못 따라오는 느낌이기 때문에 사적 제재가 더 대중의 응원과 힘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사적 제재에 대한 우리의 공감 표시에서 ‘옳고 그름’의 사실 확인 부분은 미흡한 채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공격성이나 폭력성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는 SNS에서의 무분별한 공감 표시가, 그리고 댓글들이 어떤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고 이선균씨나 다른 여러 불행한 사례를 통해 이미 경험하고 있다. 표적이 정해지면 몰려가 물어뜯고 악의적인 댓글로 상대를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특정 대상에게 악의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익명성을 보장하는 댓글 뒤에 숨어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SNS라는 가상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 속에서, 사회공동체로서의 건강함을 회복하는 것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SNS로 사람의 관심이 몰리는 것을 ‘외로움의 전염병’이란 질환으로 규정한 바 있다. 사람들이 SNS로 인해 더욱더 고립되고 외로움도 심해지는데, 이는 분노나 원망의 마음을 일으킨다는 연구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SNS를 통한 사적 제재가 더욱 폭력적으로 흐르는 이유도 여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온라인 세계 속에 점점 더 많이 머무르며 영향도 주고받겠지만, 무엇보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SNS를 통한 불특정의 가짜 관심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에서 만나는 끈끈한 인간적 소통의 방법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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