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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 부인이 혐오·차별로 이어진다면 규제 필요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필요악 선택한 것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이 지난 12월9일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 법률에 대하여 반대하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반대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제기된다. 하나의 측면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법이라거나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인 법이라는 비판이다. 다른 측면은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특정한 역사적 사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입법화된 5․18 허위사실 유포 처벌 조항은 표현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과의 충돌의 문제를 고민하고 완충하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대의견을 억압하지 않도록 부인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허위사실유포행위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했다. 또한 차별금지법과 배치된다고 보기보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먼저 도입된 최소한의 시작점이자 계기라고 선해하고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시행 이후 순기능과 부작용 등을 면밀히 살펴 보완하거나, 보다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규율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이어가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2월1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 모인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이 역사 왜곡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포토
2월1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 모인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이 역사 왜곡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포토

5.18 왜곡 임계점 넘어…최소한의 법적 규제 필요

법은 사회를 반영하는 그릇이다. 사회가 건강하면 규제할 법도 필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현실을 진단하는 시각과 평가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도 다르다. 이번에 입법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5․18에 대한 왜곡이 광범위하게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다른 선택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다. 현재와 같은 왜곡이 일상화되어 있고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데, 최소한의 법적 규제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법이 사회적 병리현상과 범죄행위에 대해 방임하자는 것이고, 법의 무기력과 게으름을 자초해서 처벌의 공백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5·18 허위사실 유포 처벌조항은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입법을 추진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으로서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관용과 다원성이 있는 성숙하고 품격 있는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5․18역사왜곡에 대한 해결책이 오로지 형사처벌에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형사처벌의 보충성, 최후 수단성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자제되어야 함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상의 자유 시장’에 의한 정화, 사회·문화적인 해결, 교육과 계몽에 의한 치유가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자정에 의하여 해결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지향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인 자정력에 의한 해결만을 바라기에 현재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은 임계점을 넘은 측면이 있다. 그냥 방치하기에는 수인한도를 넘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회적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계속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규제는 어렵다. 왜곡은 일상화되고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에서부터 유튜브를 통한 왜곡도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급기야 지난해 2월에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극우 인사 지만원을 버젓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초청해 공청회를 열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만원은 최근 ‘북조선 5․18 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를 출판하고 더욱 더 노골적으로 북한군 개입 허위주장을 반복하면서 법을 조롱하고, 왜곡과 폄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전두환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줄어들지 않았다.  

기존 법조항으로는 처벌의 공백 발생해

사정이 이렇지만 5.18에 대한 왜곡과 같은 집단표시 명예훼손의 경우 기존 법조항으로는 처벌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달리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민사적인 구제책도 상징적일 뿐이고 실효성이 없다. 전두환이 ‘전두환 회고록’에서 주장하는 북한 특수군 600명 개입설 등의 5.18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형사고소를 하지 못하고 민사적으로 출판 및 배포금지가처분 신청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특정이 가능한 고(故) 조비오 신부와 관련된 헬기 사격 부인 부분만 사자명예훼손으로 기소돼 유죄판결선고가 가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해결책 중 형사처벌을 빼고 논의되는 해결방안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5.18 허위사실유포 처벌조항에 대하여 주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미국에서의 논의에 근거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법’이라거나 ‘반자유주의적인 법’이라고 비난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 부인행위에 대한 처벌의 문제는 해당 국가가 경험한 역사적 사실과 이에 대한 폐해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다.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를 경험한 유럽의 경우와 5․18의 학살을 경험한 우리나라와 그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는 미국에서의 논의를 동일한 선상에서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법리에 터 잡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보완하고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도 다르다.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지만, 제21조 제4항에서 언론·출판을 통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헌법 제37조 제2항을 통해 규율한다. 우리 헌법 체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다른 중대한 이익과 비교해 규범 조화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한다고 해서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전두환 회고록’과 ‘제국의 위안부’ 서적에 대한 출판및배포금지가처분 사건 재판에서 법원이 "허위사실을 기재하여 타인의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 범위 밖에 있다”고 판결한 내용도 같은 취지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해서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체계가 후진적이라거나 전체주의로 몰아가는 악법이라거나,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파시즘이라는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홀로코스트 부정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고,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와 같은 폭력적인 과거사를 마음대로 왜곡하여 발언하는 것은 이러한 왜곡이 한 국가의 소수집단에 대한 공격을 선동하는 효과에 의해 공공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5․18 왜곡은 북한군으로 상징되는 악의적 색깔론과 홍어로 상징되는 저열한 지역 비하적 혐오표현이 동시에 작동되는 사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역사적 사실 부인행위가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과 배제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했던 맥락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11월30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5·18단체 관계자가 전두환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전씨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합포토
11월30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5·18단체 관계자가 전두환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전씨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합포토

홀로코스트 처벌법과 다른 이유…허위사실 유포만 처벌대상

이번에 만들어진 5․18 허위사실유포 처벌조항은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를 받아들여 수정하고 보완한 내용이다. 먼저 사적인 대화가 처벌되지 않도록 구성요건에서 신문, 잡지, 방송, 출판물, 정보통신망, 전시물, 공연물,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기자회견 등에서의 허위사실 유포로 범죄행위의 방법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학문·예술의 자유와 보도의 자유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완충제로서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했다. 독일 형법 제130조 제6항과 같이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 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위법성조각사유 조항을 신설해 부작용과 남용의 폐해를 줄이는 방식으로 보완한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의 홀로코스트 부정행위 처벌은 홀로코스트를 부인만 하더라도 처벌하는 것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이를 그대로 차용해 법을 만드는 것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현’을 처벌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 국회를 통과한 법률조항은 다르다. 반대의견 표현을 억압할 부작용이 있다는 우려를 수용해, 부인·비방·왜곡·날조를 구성요건에서 모두 삭제하고 허위사실 유포만 처벌대상으로 한다. 의견의 영역이 아닌 사실의 영역에서 사실확인이 가능한 5.18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부인이나 부정행위를 처벌하는 독일과 달리 반대의견을 처벌한다는 우려와 위험성이 훨씬 줄어든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만원, 전두환 등의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국민의 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나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이미 사법부의 판결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행위’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지만원, 전두환 등이 주장하는 북한군 개입설은 해석이나 평가나 ‘의견의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잡아야 할 ‘사실의 영역’이고, ‘사실 왜곡’의 문제인 허위사실이다. 향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5․18 허위사실유포 처벌조항을 신설하자는 논의는 다른 역사적 사안에 비추어 5․18민주화운동만을 더 특별하게 취급해달라는 특혜를 바라는 취지가 아니다. 예외적으로 5․18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허위사실로 부정하는 것을 처벌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다른 사안에 비추어 인정되어야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주장과 같이, 정당화 논거는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다른 역사적 사안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하고, 진실에 반하기 때문에(진실 논거) 정당화 논거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은 단순히 진실에 반하기 때문에 처벌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는,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에 대한 살상행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반인륜적 행위를 용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허용될 수 없다(인간존엄 논거). 더구나 호남이나 5․18 유공자로 대표되는 소수자에 대한 허위사실에 기초한 혐오표현이고(소수자 차별 논거), 생존하는 유족과 관계자 등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모독, 왜곡, 폄훼이기 때문에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피해자 논거+현재성 논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의 피해자는 비단 5.18 희생자와 관련자와 광주시민 만이 아니다. 나치 선동가 괴벨스는 ‘거짓이 처음에는 부정되지만, 나중에는 의심되고, 계속 반복되면 결국 모두 믿게 된다’고 했다. 오히려 팩트체크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왜곡된 허위사실을 사실로 잘못 알게 되는, 속고 있는 일부 국민들과 청소년들이 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5․18 진상규명과 역사왜곡에 대한 대처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를 확인하는 일이며,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민주주의의 성숙성을 지키는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명언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은 관용으로만 건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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