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은 일반인에게 필요할까. 단기간 살을 빼는 한 방법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인 건강 유지 목적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게 간헐적 단식에 대한 전문의들의 공통적 판단이다. 간헐적 단식이라는 용어 자체부터 의학적으로 입증된 건강 유지법인 ‘규칙적인 식습관’ 개념과 배치된다. 게다가 간헐적 단식으로 더 뚱뚱해질 가능성도 있다. 간헐적 단식은 비만 환자의 전형적인 식사 패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간헐적 단식이 돌아왔다. 2012년 영국 BBC 다큐 프로그램 《Eat, Fast and Live Longer(먹고, 단식하고, 장수하라)》로 대중에게 알려진 간헐적 단식은 2013년 SBS 스페셜 《끼니 반란》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당시 일본인 의사의 책 《1일1식》도 관심을 끌면서 하루 한 끼 식사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올해 초 일부 연예인이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거나 일주일에 하루 또는 사흘 동안 굶는다는 내용이 전파를 탄 후 간헐적 단식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간헐적 단식은 말 그대로 이따금 단식하는, 일종의 다이어트 방법이다. 간헐적 단식의 원칙은 일정 시간 음식을 먹지 않고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복 시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방법, 일주일 동안 비타민·무기질이 풍부한 주스만 마시는 방법 등이다. 그중 올해 인기를 끄는 방법은 16:8법칙과 5:2법칙이다. 16:8법칙은 하루 중 16시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공복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식사는 나머지 8시간에 한다. 저녁을 먹은 후 다음 날 아침을 거르고 12시쯤 점심을 먹는 식이다. 한마디로 하루 세끼 중 아침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다. 5:2법칙은 일주일에 5일은 평상시처럼 먹고, 2일은 24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 중 화요일·목요일에 아침·점심을 거르는 것이다.
잘못된 간헐적 단식은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
간헐적 단식이 체중 감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많다. 예컨대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이 체질량지수(BMI) 35인 비만 참가자 2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간헐적 단식 16:8법칙을 실천한 실험군은 평균 350kcal를 소비하고, 체중이 3% 줄고, 수축기 혈압도 7mmHg 떨어졌다. 이처럼 간헐적 단식은 단기적으로 체중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내장에서 효소에 의해 당으로 분해된다. 당은 혈관을 통해 신체 곳곳으로 전달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우리 몸은 몸속에 저장해 둔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때 우리는 살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굳이 간헐적 단식이어야 하느냐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하루 세끼를 먹되 그 양만 조금 줄이면 살은 빠지기 때문이다. 신현영 한양대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단만 조절하면 3~4kg을 감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굳이 간헐적 단식이 필요한가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간헐적 단식의 핵심은 영양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식사 습관을 고치는 데 그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간헐적 단식은 무작정 굶는 게 아니다. 16:8법칙에서 16시간 공복 상태일 때 간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식사량도 하루 1500kcal로 제한해야 하므로 점심·저녁에 각 750kcal씩 먹어야 하는 셈이다. 5:2법칙에서 유의할 것은 24시간 공복 후 먹는 화요일·목요일 저녁 식사량은 700kcal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랜 공복 뒤에 폭식하면 간헐적 단식이 아니라 ‘간헐적 폭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간헐적 단식이 간헐적 폭식이 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만 환자 A씨는 한동안 비만클리닉에서 치료받아오다 어느 날부터 비만클리닉을 찾지 않았다. 간헐적 단식으로 단박에 살을 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다시 비만클리닉을 찾은 이유는 오히려 과거보다 살이 더 쪘기 때문이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비만클리닉 교수는 “A씨는 간헐적 단식을 하다 오히려 폭식해 체중이 급격히 불었다. 일반적으로 살을 뺄 때는 어느 정도 빠지다가 더 빠지지 않는 정체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살이 찔 때는 정체기가 없어 걷잡을 수 없이 체중이 불어난다. 시쳇말로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며 “잘못된 간헐적 단식은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간헐적 단식은 주로 아침을 굶는 것인데, 비만 환자의 특징이 아침을 먹지 않는 점이다. 그리고 한두 끼를 몰아서 먹는다. 정상 체중인 사람이 간헐적 단식을 잘못 실천하면 오히려 비만 환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날씬한 몸매 만들려다 뚱뚱한 혈관 만든다”
간헐적 단식으로 살을 뺐다는 사람은 대부분 운동선수나 연예인이다. 이들은 사실 아주 뚱뚱하지 않다. 더 좋은 몸매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간헐적 단식을 이용해 목표로 정한 체중만큼을 줄였을 뿐이다. 연예인과 같은 몸매를 부러워하면서 간헐적 단식을 시도한 끝에 살을 뺐다는 일반인도 있지만, 굶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독한 의지가 있는 사람은 사실 그렇게 뚱뚱하지 않다. 이미 자기 신체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서양인만큼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다.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뚱뚱한 사람도 BMI 27 정도이고 30을 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비만도 아닌데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 유지라기보다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다가 혈관을 뚱뚱하게 만들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박민선 교수는 “간헐적 단식을 하면 일시적으로 당 대사는 좋아지지만, 몸엔 무리를 준다. 음식 조절과 운동을 잘해도 나이가 들면 혈관 벽이 두꺼워지면서 동맥경화 등이 생긴다. 그런데 음식을 불규칙하게 섭취하는 간헐적 단식은 혈관 벽을 더 두껍게 만드는 행위다. 한번 두꺼워진 혈관 벽은 좀처럼 되돌릴 수 없다. 예쁜 몸매를 만들려다 자칫 예쁜 혈관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뚱뚱하지 않은 사람이 간헐적 단식을 할 때 가장 큰 손해는 근육 손실이다. 심경원 교수는 “젊은 사람은 단식을 해도 큰 무리가 없겠지만, 중년 이후의 간헐적 단식은 오히려 근육 감소를 부른다. 안 그래도 근력이 줄어드는 시기에 근육 감소가 더 심해진다. 근육이 없으면 당뇨나 고지혈증 등이 생긴다. 이런 질환을 예방해 건강을 지키려고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일 텐데 오히려 당뇨와 고지혈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속 가능한 실천 어려운 간헐적 단식
단식할 때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은 어지럼증이다. 공복 시간이 길수록 영양 섭취에 불균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기본적으로 근육량이 적은 여성은 적게 먹을 때 어지럼증이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잠깐의 단발적인 어지럼증이라면 충분한 휴식과 음식 섭취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는 어지럼증은 문제가 다르다. 흔히 어지럽다고 표현하지만, 어지럼증에도 다양한 증상이 있다.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을 비롯해 두통을 동반하거나, 특정 행동을 했을 때 심해지기도 하며,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물이 두 개로 보이거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등 원인에 따라 증상이 달라진다. 어지럼증은 증상 자체로 괴롭지만, 증상이 발생하는 장소와 시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길이나 건물 계단에서 증상이 나타나면 2차 사고의 위험도 있다. 박지현 세란병원 뇌신경센터 부장은 “다이어트 중에 어지럼증이 발생하면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에 대해 주의 깊게 파악해야 한다. 다이어트 자체가 원인이 돼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몸이 약해졌을 때 발생한 다른 질환의 증상 중 하나로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당뇨가 있는 사람은 간헐적 단식으로 자칫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영화 《대부3》에서 알파치노는 교황을 만나 면담하던 도중 갑자기 기운을 차리지 못한 채 의자에 주저앉아 허겁지겁 주스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저혈당에 빠진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간헐적 단식은 영양과 호르몬의 불균형을 가져오므로 당뇨 예방에 적절하지 않다. 인슐린 분비가 하루 3번 균일하게 나와야 하는데, 한 번은 적게 또 한 번은 너무 많이 나올 수 있다”며 “또, 당뇨 환자에게 단식 처방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당뇨 환자가 저혈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US뉴스앤월드리포트는 매년 좋은 다이어트 순위를 발표한다. 예컨대 지난해엔 지중해식 식단이 1위였다. 선정 기준 가운데 하나는 실천도(오래 실천할 수 있는가)다. 장기간 실천하기 어려운 다이어트 방법은 좋은 다이어트가 아닌 것이다. 간헐적 단식은 장기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 굶는 게 말처럼 쉽다면 간헐적 단식과 같은 특별한 방법이 필요 없을 것이다. 심경원 교수는 “지속 가능한 실천이 어렵다는 게 간헐적 단신과 같은 유행 다이어트의 한계다. 모든 사람이 오랜 기간 실천할 수 있고, 그만큼 효과적이라면 이미 의학 교과서에 게재됐을 것이고, 의사들이 비만 환자에게 간헐적 단식을 처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실천부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짜 팝콘이라면 무제한 먹는 습관
‘하룻밤 만에 살을 뺐다’는 다이어트는 유혹적이지만, 다이어트를 한번 해 본 사람은 얼마나 어렵고 대부분 효과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여기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자신의 잘못된 식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는 물보다 설탕이 잔뜩 들어간 주스를 마신다. 고기를 먹고도 밥이나 면을 반드시 먹는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며 단 음식으로 입가심한다. 영양가는 없고 열량만 있는 술까지 마신다. 뚱뚱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많이 먹는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영화관 관람객에게 5일이 지난 팝콘을 무료로 줬다. 눅눅해서 맛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팝콘을 무감각하게 먹는다는 게 이 연구의 결과다. 이처럼 비만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온 잘못된 식습관의 결과물이어서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다. 신현영 교수는 “한두 끼 굶으면 우리 몸은 가벼워진다. 그러나 굶는 게 지속 가능한 실천법이 될 수는 없다. 차라리 열량이 적은 식단으로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는 게 장기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