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감명받게 한 신간이 있다. 소설가 한창훈의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다. 그가 특별히 발행되자마자 보내주어 정말 따끈따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채로 이 책에 빠져들었다.
이 소설은 작가가 경험한 해양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은퇴하고 그의 집이 있는 작은 섬에 다시 돌아와 있을 때 갑자기 생텍쥐페리(소설에서는 생텍스라고 부른다)의 ‘어린 왕자’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사막에서 생텍스를 만난 지 80년 만에 다시 지구라는 별에 그가 나타난 것이다. 아마 작가는 그 전에 이 ‘어린 왕자’에 깊이 심취했던 모양이다. 그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나누어준 책이자 처음 만난 책이 바로 이 《어린왕자》였다고 한다.
어린 왕자는 자기의 조그만 별 B612에서 지구라는 별을 오갈 수 있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우주인’이다. 주인공은 가도 가도 수평선만 보이는 대양이라는 공간에서 몇십 년간을 선원으로서 또는 선장으로서 살아왔는데 그것은 또 다른 ‘바다’라는 우주 공간이다. 어린 왕자는 자기의 별에는 없는 지구에만 있는 바다를 보고 싶어 했고 그 바다가 있는 주인공의 섬에 왔던 것이다.
주인공과 어린 왕자는 금방 친해져 지구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같이 돌아다닌다. 어린 왕자는 잠시 전쟁이 벌어지는 지구의 참화 현장에 갔다가 죽어가는 어린이를 보고 그를 구할 수 없어 한탄하면서 이 지구라는 별의 비극을 끝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구라는 별의 신비스러움을 뒤로하고 자기 별로 돌아간다.
내가 한창훈의 소설에 꽂힌 것은 그의 우화집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서부터였다. 거기엔 ‘쿠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추구하던 ‘이야기 집’의 원형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성북동에서 나이 어린 미술가 후배들과 이런 ‘이야기 집’을 운영하고 있다. 금년이 두 번째로 벌써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젊은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만들어 발표를 끝냈다. 작품 발표 자리에 한창훈 작가를 초대했는데 그때 소설집이 곧 나오니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 바로 《네가 이 별을 떠날 때》이다.
나는 꽤 많은 책을 읽는다. 일종의 잡독 스타일인데 그중에서도 나의 영감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특히 좋아한다. 나 스스로 이야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2016년 개인 전시회의 출품작에 이 어린 왕자를 출현시킨 바 있다. 내가 원래 그려 두었던 그림인데 마침 우주 공간을 그린 것이 있어 여기에 어린 왕자를 더 그려 넣은 것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반드시 ‘어린 왕자’나 어린 왕자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어린 왕자를 만나려면 마음이 어린 왕자처럼 순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벌어지는 수많은 참화를 보고 아귀다툼 같은 세상을 보며 산다. 어쩔 수 없이 이런 험악한 세상을 살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우리는 가끔씩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거기에 살고 있는 ‘어린 왕자’를 만나야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순수를 지킬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