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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인물] 상고법원 도입 위해 박근혜 정부와 ‘재판거래’ 의혹 불거져

한때 대한민국 법조계의 ‘살아 있는 권력’으로 불렸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8년 최악의 인물로 뽑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국내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니만큼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가 소명된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 6월 검찰 특수부가 사법농단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목적으로 정부와 결탁해 사법질서를 어지르려 한 정황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국민들의 불신(不信)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대법원장 취임 후 상고법원에 ‘올인’

논란에 휩싸이기 전까지 양 전 대법원장은 ‘엘리트 법조인’ 코스를 밟아왔다. 1970년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관으로 임용돼 1975년 11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재직했고 파산실무연구회를 조직해 파산 관련 제반 법률 문제를 연구하기도 했다. 2002년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거쳐 2003년 특허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2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2011년 9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되었으며 2017년 9월 퇴임했다.

명예로운 법관으로 한평생을 살았지만, 단 한 번의 의혹이 그가 쌓은 명예를 무너뜨렸다. 그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대법원장의 힘을 남용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서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상 지시관계에 따른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최종 책임은 조직의 수장인 양 전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법원행정처 등을 통해 공개된 양승태 행정처 문건들은 사실상 대부분이 상고법원 도입을 최종 목표로 작성됐다.

상고심제도 개혁은 법원의 해묵은 화두였다. 우리나라 재판은 3심제로 운영된다. 1심은 지방법원에서, 2심인 항소사건은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 항소부에서 재판한다. 마지막 3심은 상고사건이라 하여 대법원에서 재판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다.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고등법원 사이에서 대부분의 상고사건을 전담하는 새로운 법원을 말한다. 대법원이 감당하기에는 상고사건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상고법원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이 사법부에서 지속적으로 나왔다.

2011년 취임한 양 전 대법원장도 공식 석상에서 상고심제도 개선 의지를 드러낸다. 2013년 3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그는 “모델로 삼았던 미국 연방대법원을 따라간다면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대법원 심리사건 수를 줄이는 게 가장 취지에 맞다”면서도 “국민의 상고 열망을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려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등법원 상고부라든지 상고법원을 따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욕심이 과해서였을까.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재판거래’를 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과 행정처 직원들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던 재판과 상고법원 추진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방안이 담긴 각종 보고서를 작성한다.

실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특정 재판에 직접 개입한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재판 상고심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2015년 일본 전범기업의 소송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한모 변호사를 수차례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파악했다. 고위직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11월12일 한 변호사의 김앤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정부와 결탁해 ‘재판거래’ 시도한 정황

양승태 사법부는 또 법무부 설득을 위해 국민 기본권과 관련된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및 체포 전치주의 도입’, ‘영장항고제 도입’ 등을 양보할 수 있다는 안을 내기도 했다. 동시에 법조계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꾸리기도 했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상고법원 반대 핵심그룹으로 보고 활동을 억누를 방안을 고안한 것. 이 과정에서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당시 상고법원 반대 핵심그룹을 주도하는 인물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반대 목소리를 내던 하창우 전 변협 회장을 뒷조사한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이 같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수십 명의 전·현직 법관들을 불러 조사하고, 확보한 인적·물적 증거 분석도 세밀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 수사는 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새해로 넘길 방침이다. 당초 검찰은 관련 수사를 연말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2011~17년 양 전 대법원장 임기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2014~16년)·고영한(2016~17년)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은 12월7일 기각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전에 두 전 대법관 영장을 다시 청구할지, 재청구 없이 소환할지 등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을 비롯해 재판 개입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물증이 이미 많이 확보됐다. 이 때문에 당사자에 대한 직접 수사도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다만 필요한 수사가 많이 남아 있어 연말 안에 양 전 대법원장을 부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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