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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무현 경제참모’ 이정우 前 청와대 정책실장 “일자리는 성장 결과물, 정책 앞뒤 바뀌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만큼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정책참모가 있을까. 순간 이정우 전 정책실장이 떠오른 건 왜일까. 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종합부동산세는 이 전 실장 작품이다. 당시 종합부동산세가 생긴 데는 이 전 실장 외 김수현 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깊숙이 관여했다.

이 전 실장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김수현 정책실장 기용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과 김 실장은 참여정부 때도 손발을 맞췄기에 그의 진단과 평가는 여론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실장은 11월22일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에서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수현) 실장과는 개인적으로 ‘호형호제’ 사이일 정도로 가깝다. 이는 개인적 친소관계에서 한 말이 아니다”면서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 자리이기에 그렇게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경북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현재 대구에 본부를 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이 전 실장을 만나 현안과 관련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평등의식은 인간의 본성과 직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배경이 궁금하다.

“장학금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내 전공이 불평등의 경제학이다. 30년 전 경북대 경상대 학생과장으로 일했을 때다. 학생회 간부를 했던 학생이 장학금을 신청했는데 평균성적이 80점에 약간 못 미친 79.8점이었다. 0.2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학교에 이야기했는데 안 됐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장학금은 가난한 학생에게 줘야지 왜 성적을 보는 것인가라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글을 교내 신문에 냈다. 전면에 실렸다. 그때는 공허한 메아리였는데, 그걸 주장하니까 우리 과 교수들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 과는 일찍부터 개편했다. 성적은 덜 보고, 가정 형편을 보자고 말이다. 매 학기 교수들이 면접을 보고 가난한 학생에게 주는 걸로 바뀌었다. 9년 전 생긴 한국장학재단도 비슷하다. 성적은 부차적이고 주로 소득분위를 갖고 장학금 지급 여부, 범위를 결정한다.”

학자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불평등 수준은 어떤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인 건 맞다. 1998년 이후 많이 달라졌다. 그 이전엔 고성장했고 고용도 좋았으며 분배도 비교적 양호했다. 그런데 이후 세상은 다 나빠졌다. 양극화가 심해졌고 성장은 줄었으며, 고용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지금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 주요 지표들이 좋지 않다. 위기라는 지적에 동의하나.

“위기까지는 아니다. 2.8% 성장은 선진국 기준으론 양호한 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으로도 고성장이다. 한국의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지금, 저성장인 건 맞다.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다. 우선 산업이 어렵다. 조선, 자동차가 그렇고 반도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방향은 맞다. 외국에선 임금주도성장이라고 부른다. 케인스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노동자 중심의 임금주도성장만으로 부족하니, 자영업자가 추가된 소득주도성장이 나온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이 왜 논란이 된다고 보나.

“새로운 모델이라서 그런 거다. 정통파 경제학자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폈다면 올해면 효과를 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적극성이 부족했다.”


최저임금 인상, 양날의 칼·과유불급

적극성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최저임금 인상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양날의 칼이다. 적당히 해야 하는데 지금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오히려 놓치고 있는 부분은 뭔가.

“크게 세 가지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잡아야 한다.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 소득주도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독일이 고성장을 거듭하는 비결은 강한 제조업도 있지만, 주거비 부담이 낮기 때문이다. 소비지출 여력이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소득주도성장을 가로 막는다. 불로소득이 많은데 누가 벤처, 중소기업을 운영하겠는가. 그런 면에서 혁신성장도 방해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아파트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이 건만 잡았어도 더 많이 소득주도성장이 일어났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 대응에 안일했다는 뜻인가.

“현 정부 들어 9차례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는데 이 중 8차례에 보유세가 빠져 있었다. 보유세는 부동산 투기를 막는 데 충분조건은 못 되지만, 필요조건은 된다. 이번 9·13 대책에 보유세 강화가 들어왔는데 충분한지는 미지수다.”

나머지 두 가지는 무엇인가.

“복지 강화가 좀 더 대대적으로 이뤄졌어야 한다. 자연히 세금 문제가 따라올 것이다. 해법은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저출산 속도가 빨라 인구절벽이 오고 일할 사람이 부족할 거라고 설명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증세 아닌가. 그래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 결과 인기 떨어지고 선거에서 표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먼 장래에 가서, 그때 그 정부가 증세를 통해 복지를 강화한 건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세 번째는 중소기업에 대한 갑을(甲乙) 관계를 없애는 것이다.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말이다. 내부 개혁인 지배구조도 필요하지만 외부관계인 갑을 관계도 바뀌어야 한다. 갑을 관계를 개혁하면 소득주도성장은 물론, 혁신성장도 일어난다.”

내년에 소득주도성장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나.

“세 가지 개혁에 전력하면 1~2년 정도 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최근 대통령이 포용국가를 강조하는데, 소득주도성장보단 그게 낫다. 소득주도성장은 너무 학술적이다. 반면, 포용국가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북유럽식의 복지국가는 인간존중, 노동존중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맞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에 적합한 정책수단은 아니다.”

다른 정책수단이 있을까.

“그보단 참여정부 때 시행된 근로장려세제가 낫다. 부작용이 없어 호평 받았다. 사실 처음 도입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미국, 영국에서 성공한 시장경제 친화적 정책이다. 저소득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도와주는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정우 정책실장(가운데)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사장께서 경험한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어땠나.

“당시 나한테 늘 따라다닌 수식어가 ‘재벌과 사이가 나쁘다’와 ‘관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건 누군가가 지어낸 말이다. 관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나에게 ‘이 실장은 다 좋은데, 왜 관료들과 사이가 나쁩니까’라고 했다. 그래서 ‘사무관·과장들하곤 아주 생각도 잘 통하고 의기투합하는 편입니다. 국장은 중간쯤 되지만 실장, 차관 정도 되면 보수적이기 때문에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젊을 때 관료들은 국민을 바라보고 있어 개혁성이 있지만, 국장·실장에 가면 노후를 생각한다. 로펌에 가서 고문직을 할 생각을 한다. 일부 고위층의 보수성이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최고 관료들이 노후에 로펌으로 가는 건 법관들의 전관예우와 같은 것이다. 최고의 관료들이 노후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지 이익을 탐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최고의 관료와 법관들에 대한 평생 보상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지 않고선 관료사회를 제대로 개혁하기 힘들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간 갈등에 김 전 부총리 편을 들었다.

“하나는 최저임금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학자적 판단이라면, 다른 하나는 단골 동네 빵집 등에 가본 뒤 느낀 현장 경험이다. 그런 곳에 가면 임금, 임대료 문제 등을 물어보는데 단골로 가는 식당, 빵집에서 최근 일하는 사람을 내보냈다고 하더라. 이로 인해 사회 내 가장 영세한 자영업자,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온다고 판단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발언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청와대 참모들의 조급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아이디어다. 학계에 있을 때 가장 연구를 많이 했다. 방향은 맞지만 정책수단 선택에 있어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성과는 별로 없고 민심이 동요하는 것 같다.”

김수현 실장의 정책실장 기용에 대해 적합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김수현 실장과는 형·동생 사이다. 참여정부 인수위 때부터 같이 일했다. 그 뒤로 청와대 들어가선 빈부격차·차별기획단에서 나는 위원장, 김수현 실장은 비서관으로 함께했다. 2년 반 동안 복지, 부동산 일을 같이했다. 더군다나 우리 둘은 경북고 선후배 사이다. 지금도 친하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사회 기류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개혁적 경제학자’가 정책실장을 맡으면 좋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정책실 일 중에 경제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분배·성장 후 결과물이 일자리”

정부의 경제 정책 첫 번째가 ‘일자리’다.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의한다. 일자리는 성장의 결과다. 성장을 하면 일자리는 따라온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느낌이다. 성장을 하려면 분배가 급선무다. 분배, 성장, 고용 순서로 가야 하고, 그게 소득주도성장이고 포용적 성장이다. 일자리가 좋아지면 선순환이 이뤄지는 법이다. 마차를 말 앞에 세울 수는 없는 거다. 고용이 마차고, 말이 성장이다.”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언한다면.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게 역대 정부가 빠진 함정이다. 단기적 저성과는 감수해야 한다. 그 대신 국민들에게 잘 설명을 해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爐邊)담화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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