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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뇌전증 환자의 외국행은 목숨 건 행동…검사기 한 대가 없어서”

 

36세 남성 A씨는 약을 먹어도 치료가 어려운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다. 4가지 항경련제를 복용하지만 한 달에 4~5회 경련 발작이 생긴다. 이런 환자에게 유일한 치료 방법은 수술이다. 뇌전증은 과거 간질이라고 부르던 질환이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뇌전증의 발생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일반적인 뇌파검사는 공간 해상도와 정확도가 낮아서 뇌전증 발생 부위를 정확하게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뇌자도(MEG) 검사는 뇌전증 발생 부위를 훨씬 더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일본(50대), 미국(90대), 유럽(50대), 중국·타이완(10대) 등은 이미 뇌자도 기기를 갖췄지만, 국내엔 한 대도 없다. 

 

A씨와 가족은 11월12일 일본으로 떠났다.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 일본 교토대학병원에서 뇌자도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중증 뇌전증 환자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다. 그런데도 정확한 검사를 받기 위해 그 위험을 감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뇌자도(MEG) 검사기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A씨는 환자와 보호자의 일본 왕복 항공료 약 100만원, 일본에서 입원 진료 및 뇌자도 검사 비용 300만원, 일본어 통역 비용 70만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교통비와 식비 등을 합하면 총 500여만 원이 든다. 

 

홍 교수는 “과거 서울대병원에 뇌자도가 한 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기된 상태다. 국내에서 이 검사 비용은 약 50만원이고, 건강보험 혜택이 주어지면 환자는 약 5만원만 지급하면 된다”면서 “그런데 환자가 검사에 500만원을 쓰고, 위험을 감수하며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뇌전증 환자는 치매 환자(약 70만 명)의 절반 수준이다. 인지기능이 약간 떨어진 경도인지장애에 약 1조원의 돈을 쓰면서도 뇌전증 환자를 위한 검사기기는 1대도 없다. 홍 교수는 “뇌자도는 약 30억원인데, 한 대만 있어도 환자가 위험을 감수하며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며 “올해 오제세 의원의 요청으로 보건복지부에서 뇌자도 도입을 검토한 바가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보류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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