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1년, 여전히 신선한 ‘문채원표’ 로코
문채원은 예쁘다. 옅은 화장, 자연스러운 이목구비, 고전미와 단아함을 동시에 겸비했다. 올해 나이 33세, 데뷔 11년째인 그녀는 여전히 신인의 풋풋함마저 지녔다. 브랜드 행사장이나 패션쇼에 얼굴을 비치는 일이 드물어 신비감마저 주고 있다. ‘말을 천천히 해서 착해 보인다’는 한 네티즌의 말처럼, 그녀는 선한 외모가 트레이드마크다.
최근 신선한 드라마 한 편이 케이블을 탔다. 동물 CG가 수시로 등장하며, ‘1인 2역’이 아닌 ‘2인 1역’이 주인공인, 만화적인 설정과 요소 때문에 황당하지만 폭소하게 하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드라마’다. 덕분에 시청률도 고공행진 중이다. 바로 tvN 월화극 《계룡선녀전》의 이야기다.
선녀폭포에서 날개옷을 잃어버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채 699년 동안 나무꾼인 서방님의 환생을 기다리며 바리스타가 된 선녀가 서방님 후보 ‘정이현’과 ‘김금’ 두 남자를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코믹 판타지 드라마로, 문채원은 고두심과 함께 극 중 나무꾼 남편의 환생을 기다리는 선녀 선옥남 역을 맡았다. 1인 2역이 아닌 2인 1역이라는 사실도 신선하다.
“류승룡 선배님 대본 보고 자극 받아”
이 작품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연출을 맡은 김윤철 감독은 “꿈과 기억을 통해 사람의 운명과 인연을 찾아가는 원작 웹툰의 독특한 주제에 끌렸다”면서 “원작 자체가 진중해서 TV 드라마로 옮기기 부담스러웠지만, 사람과 사람 관계에 대한 중요하고 깊은 이야기가 웃음 뒤에 담겨 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사실 저는 웹툰을 본 적이 없어요. 캐스팅되고 나서도 굳이 찾아보진 않았어요. 애초부터 봤더라면 모르겠지만 뒤늦게 찾아보는 게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저는 대본에 충실할 뿐이에요. 요즘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많은데, 드라마 시장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담감요? 딱히 없답니다.”
슬쩍 언급을 했지만, 그녀는 대본을 파고드는 배우로 유명하다. 대본에 많은 부분을 써놓고 세분화해서 반응과 리액션까지 적어놓고 연기하는 스타일이다. 스스로를 들들 볶는 스타일이다. 대본에 충실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문채원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촬영할 당시 꼼꼼하게 무언가가 적힌 누군가의 대본을 봤어요. 그 대본에는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고, 팬으로 여자 글씨가 아주 예쁘게 빼곡하게 적혀 있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류승룡 선배님 대본이었어요. 당시 제 대본은 깨끗했고, 저는 그걸 보고 자극 받았죠. 그 이후부터는 대본에 꼼꼼하게 메모를 하게 됐어요.”
극 중 상대역이자 ‘서방님’ 후보인 두 배우와의 호흡은 어떨까.
“윤현민 오빠는 극 중에선 까칠하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긍정적이고 매사에 웃음이 많아요. 같이 있으면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에요. 아까 포토타임 때도 보셨죠? 배우들이 보통 긴장을 하는데 소리 내서 크게 웃잖아요(웃음). 그런 모습들이 같이 연기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요. 서지훈씨는 사실 저보다 이렇게 나이가 많이 어린지 몰랐어요(웃음). 워낙 키가 크잖아요. 전작에서는 주로 반항적인 역할을 해 왔고, 순수한 캐릭터로는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가식 떨지 말라고 장난을 친답니다. 다행히 지훈이가 누나 장난을 잘 받아줘서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어요.”
극 중 문채원은 아이돌 ‘구구단’의 멤버 미나(점순이 역)와 모녀 관계로 호흡을 맞춘다.
“그 친구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양이와 이미지가 너무 잘 매치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실제로 만난 적이 없고, 연기 경험도 없다고 해서 과연 모녀 관계를 연기하는 게 어떨까 스스로도 궁금했어요. 실제로 촬영해 보니 너무 편해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어색함이 없어요. 애초에 엄마와 딸 관계여서인지 저도 모르게 자꾸 사랑스럽게 미나를 바라보게 돼요.”
상대 배우들은 문채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의 경우는 상대 배우의 표정을 보면서 연기할 때 도움을 받는 스타일인데, 그런 점에서 채원씨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순간 몰입과 집중력이 놀라워요.”(윤현민)
“현장에서 제가 긴장하고 있으면 그걸 풀어주려고 장난을 쳐주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어요. 덕분에 긴장이 풀려서 편안하게 찍을 수 있었어요.”(서지훈)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잘 챙겨주셨어요. 제가 아직 촬영장에서 익숙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노하우도 알려주셨거든요.”(미나)
미친 싱크로율, 아찔한 케미스트리
문채원은 대선배인 고두심과 2인 1역을 맡았다. ‘선옥남’은 선녀폭포에서 날개옷을 잃어버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채 나무꾼과 혼인, 남편이 죽은 후 699년 동안 환생할 날만을 기다리는 계룡산 ‘선녀 다방’의 바리스타 선녀다. 문채원은 “순수하고 선하며 올곧다. 그리고 서방님과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캐릭터”라며 선옥남의 매력 포인트를 꼽았다. 이 같은 캐스팅에 대해 김 감독은 “비주얼적으로 닮았기 때문에 고두심과 문채원을 캐스팅한 것은 아니다”며 “밝고 건강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분이 누굴까 고민 끝에 캐스팅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현장에서 선생님을 자주 뵙고 있지만 한 신에서 같이 연기하는 장면은 없어요. 그래서 늘 아쉬운 마음으로 촬영 중이에요. 선생님과 같이 연기하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제가 선생님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인상 깊게 보고 있었던 터라 저희 드라마에 함께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너무 감사했어요.”
한동안 문채원은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영화 《최종병기 활》(2011), 드라마 《공주의 남자》(2011),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 등 정적인 작품에 주로 출연해 왔다. 그런 그녀가 최근 들어서는 밝은 에너지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스스로 딥(Deep)한 작품을 좋아해서 몇 년간 집중해 왔지만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드라마 《굿 닥터》(2013)를 하면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대중에게 드리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상이다.
“간혹 재미있고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보게 되는 드라마들이 있잖아요. 그 드라마가 가진 기운이나 메시지가 현실의 팍팍함과 맞물려서 잘 표현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고 뻐근한 작품요. 반면 《계룡선녀전》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시면서 보실 수 있는 드라마일 것 같아요. 그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시트콤을 좋아해서 시트콤처럼 재미있는 작품에 출연하고픈 갈증이 있었는데, 이 드라마가 제겐 그런 드라마예요. 시청자분들도 재미있게 스트레스 안 받고 볼 수 있는 드라마, 갑자기 틀어도 이야기가 잘 이어지는 드라마일 거예요(웃음).”
30대가 되고 난 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두려움이 줄어들고, 마음이 열렸다는 그녀. 문채원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배우였다. 그녀가 바라는 배우상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