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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따라 핵심권력 호남·PK 독식 논란

내각의 면면은 정권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첫 정권교체이자 김대중(DJ), 김종필(JP) 두 정치지도자의 연합정부 성격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구성원도 정치인 일색이다. 당시 JP가 내각제 개헌을 목표로 DJ와 손잡은 것도 새 정부 첫 국무위원이 정치인으로 채워진 이유다. 당시 경제는 JP, 외교·안보·사회는 DJ가 맡는 책임내각 성격이 짙었다. 

 

19명의 국무위원 중 정치인 출신 국무위원은 DJ와 JP를 포함, 15명이나 됐다. 나머지 국무위원 중 관료 출신은 이규성 재정경제부·강인덕 통일부·이기호 노동부 장관 등 3명이었으며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은 민간기업(대우전자) CEO(최고경영자) 출신이다.

 

1998년 3월3일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에서 17개 부처 신임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고건 국무총리(맨 왼쪽)와 함께 다과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호남을 근거로 한 DJ와 충청 맹주 JP의 연합정부였기에 국무위원 출신지도 호남(광주·전북·전남)이 6명, 충청(대전·충북·충남)이 4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임 김영삼 정부 시절 주도권을 쥐고 있던 PK(부산·울산·경남) 출신은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은 김정길 전 의원(경남 거제)이 유일했다. 하지만 핵심 부처는 호남 출신이 차지하면서 논란이 많았다. 

 

김태정 검찰총장과 김세옥 경찰청장이 좋은 예다. ‘경제 검찰총장’이라 불린 국세청장은 충남 공주 출신의 이건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승진 기용됐다. 안기부의 경우 이종찬 원장은 정치인 출신이지만 바로 아래 있는 신건 1차장(전북 전주), 라종일 2차장(전북 정읍), 이강래 기획조정실장(전북 남원)은 모두 호남 출신이다. 


내각의 평균 나이는 59.9세. 출신 고등학교는 지역 명문이었던 경기고·경북고·광주고·대전고가 각각 2명씩 배출했다. 대학은 서울대 출신이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많은 곳이 김종필 국무총리, 강창희 과학기술부·천용택 국방부 장관을 배출한 육사였다. 


첫 정권교체인 데다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탄생한 탓에 국민의 정부는 출범 때부터 산통을 겪어야 했다. 우선 총리인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개국공신인 JP는 총리가 아닌 총리서리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전임 고건 총리가 각료를 제청한 다음 사퇴하는 편법이 동원됐다. 대신 차관급 인사는 대부분 관료 출신을 기용했다. 40명의 차관 또는 차관급 인사 가운데 정치인 출신은 이강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유일했다. 

 


DJ·盧, 모두 組閣 15개월 만에 개각 단행


그러나 1998년 3월4일 출범한 1기 내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3년 한·일 어업협상, 국민연금 파동으로 개각 필요성이 커지면서 DJ는 15개월 만인 5월24일 2기 내각을 출범시킨다. 2기 내각의 특징은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집단 퇴진이다. 1999년 5·24 개각 후 내각에 남아 있던 1기 국무위원은 김성훈 농림부 장관이 유일하다. 김기재 행정자치부·정상천 해양수산부·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등은 정치인 출신이지만, 나머지는 관료·학계 인사들로 구성됐다. 정치인 출신 장관 가운데 박상천 법무부·천용택 국방부·이해찬 교육부·신낙균 문화관광부·박태영 산업자원부·최재욱 환경부·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은 모두 국회로 돌아갔다. 

 

당시 관가(官街)에선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퇴진 이유를 이듬해 치러지는 16대 총선 준비용으로 해석했다. 또 개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DJ와 JP가 ‘의원겸직 장관 전원 국회 복귀’라는 원칙을 세운 것도 비정치인 출신 인사들의 중용으로 이어졌다. 이종찬 국정원장 역시 총선 출마를 이유로 천용택 국방부 장관으로 교체됐다. 


기획예산처 장관, 중앙인사위원장이 새롭게 장관급으로 추가된 2기 내각에서 정치인 출신들의 빈자리는 전문 관료나 민간 전문가로 교체됐다. 강봉균 재정경제부·임동원 통일부·홍순영 외무부·김정길 법무부·조성태 국방부·서정욱 과학기술부·정덕구 산업자원부·차흥봉 보건복지부·이상룡 노동부·이건춘 건설교통부 장관은 관료 출신, 김덕중 교육부·남궁석 정보통신부·김명자 환경부 장관은 대학 교수 등 민간 전문가 출신이다. 

 

관료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이 입각하면서 국무위원 평균 연령은 59.9세에서 64.6세로 다소 높아졌다. 연령별로는 60대가 8명, 70대가 7명을 차지했다. 출신 지역별로는 호남과 충청이 각각 5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학별로는 서울대 출신이 6명, 고려대가 3명이었으며 육사는 3명의 장관을 배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2월27일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등 신임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연합뉴스

 

盧정부 1기 내각, 평균 50세 가장 젊어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내각은 어땠을까. 2003년 2월27일 단행된 조각(組閣)을 보면, 현장 중심의 전문가 위주로 배치된 게 특징이다. 


윤영관 외교통상부·강금실 법무부·김두관 행정자치부·이창동 문화부·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기용은 관행을 깬 깜짝 인사로 평가받는다. 관료 출신은 김진표 재정경제부·정세현 통일부·조영길 국방부·윤진식 산업자원부·최종찬 건설교통부·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등이다. 박호군 과학기술부·권기홍 노동부·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은 교수 출신, 김영진 농림부·김화중 보건복지부·한명숙 환경부 장관은 정치인 출신으로 분류된다.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기에 내각의 평균 나이도 50.0세로 젊어졌다. 21명의 국무위원 중 50대가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호남과 PK가 각각 5명씩 가장 많았다. 출신고는 경북고가 4명, 경기고가 3명이었다. 대학은 서울대 출신이 12명으로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역시 15개월 만에 개각을 단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대통령 탄핵 사태 때문. 국면 쇄신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6월30일 전면 개각을 단행했다. 1기 내각 국무위원 중 남아 있던 인사는 진대제 정보통신부·지은희 여성부 장관뿐이었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해양수산부에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동영 통일부·김근태 보건복지부·정동채 문화체육부 장관 등 거물급 정치인이 대거 내각에 입성했다. 국무위원의 평균 나이는 50.0세에서 52.8세로 다소 높아졌다. 

 


盧정부 직계 보좌라인 PK계로 구성


지역별로는 호남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PK가 4명, TK(대구·경북)가 3명이었다. 고등학교별로는 경기고가 6명, 전주고와 부산상고가 각각 2명씩 장관을 배출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해사 20기로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다. 출신 대학 기준으로는 서울대가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권부 핵심을 특정 지역 인사들이 독식하는 경우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경기(의정부), 송광수 검찰총장은 PK(경남 마산), 최기문 경찰청장은 TK(경북 영천), 이용섭 국세청장은 호남(전남 함평),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충남(공주) 출신이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 보좌라인인 청와대는 PK 지역 출신 인사들이 핵심을 차지했다. 김희상 국방보좌관, 문재인 민정수석, 이해성 홍보수석, 이호철 민정1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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