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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이야기 잔치를 벌여보자

 추석이 되면 해마다 언론의 단골 메뉴로 오르는 단어가 있다. 명절증후군. 다행히 올해는 남북 정상회담에 가려 이 단어가 그다지 등장하지 않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들뿐 아니라 결혼 안 한 젊은이들에게도, 대체로 원성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시어머니에게도 명절은 극기 훈련의 날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진 않지만 추석엔 남성들도 힘들다는 기사도 종종 보인다. 주된 메뉴는 “남편도 운전하느라 힘들다” “남편은 돈 때문에 힘들다” 심지어 “시가만 힘드냐 처가도 힘들다” 이런 제목도 등장한다. 웃자고 쓴 기사는 아닐 것이고, 남자들도 힘드는구나. 이런 기사들이 일종의 물타기인 것은 맞지만, 명절을 모두가 힘들어한다는 점은 사실일 것이다.  
© 연합뉴스

 그러나 정작 추석이 되면 거의 모든 가정에서 명절증후군은 되풀이되기만 할 뿐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시가에 가지 않는 것으로 해결한다거나, 처가에 먼저 가기로 한다거나 하는 타협이 결국 미봉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놓고 이야기하는 가정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대화부족증은 사회의 세포인 가정에서부터 만연하다.  가부장적 가족 질서의 시대 끝단에 있는 어른들과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이제 막 만들어가는 젊은이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다. 얼핏 보기에 어른들은 완고해서 말이 안 통하며 젊은이들은 이기적이어서 자기밖에 몰라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핵심은 가족을 구성하는 사회적 여건과 경제적 토대가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당연히 결혼에 대한 생각도 예전 같지 않다. 평소의 삶은 달라진 문화에 맞춰 살다가 갑자기 명절만 되면 찾아오는 복고풍을 그러려니 하고 견디기엔 그 간극이 너무 큰 것이다. 직시해야 한다.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서로의 우애와 친목을 다지는 일을 위해 가족 내 여성들이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방식의 우애와 친목이 가족 공동체 유지에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이미 태어난 원가족과 데면데면해지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현실로 존재한다. 삶을 유지하는 경제적 토대가 바뀌었다. 문화적 토대도 바뀌고 있다. 앞날에는 결혼하고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녀를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고 갖은 투자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의 하루를 열심히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세가 될 것이다. 자녀에게도 다른 삶을 선택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이 올 것이다. 세상은 달라졌다. 특히 기성세대, 우리 사회의 발전의 혜택을 입었으나 자녀 뒷바라지에 모든 것이 털린 세대는 생각을 잘 해야 한다. 내가 우리 가족의 실제 현실이 아닌 내 머릿속에 구성된 통념에 의존하여 내 자녀를, 내 법적 가족인 며느리와 사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점검이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따라가 주지 않는다. 감정은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감정이 나를 외롭게 한다는 것을 배워보자.  어찌 생각하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명절이다. 이미 명절이 아니라 연휴로 바뀐 사람들도 많다. 이번 추석이 그래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려면, 대화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남북한도 만나고 대화하는데 신구세대가, 남녀가 소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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