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 대학언론상] 집배노동자에게 선택지는 없다

 

시사저널이 주최하는 대학언론상이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서도 짧은 바지를 입지 못하는 집배원의 현실적인 고충을 직접 체험한 르포 기사 ‘바지 속 열섬 부르는 집배원복’(경희대 오문영·조아라)이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중·노년층 여성 문제에 대한 성범죄를 다룬 ‘피해자에게 질문하는 사회’(성균관대 권예진·김여진)와 과거 언론에 알려진 대구희망원 사태에 대한 후속 취재 격인 ‘대구희망원은 어떻게 됐을까’(이화여대 홍수민·김수현) 등이 장려상을 각각 수상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등에 줄줄 흘렀다. 7월23일은 절기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였다. 낮 최고기온이 36도를 웃돌았다. 서울 길음동 D아파트 119동 앞. 따가운 햇볕 아래 성북구 집배원 이동조씨(38)가 오토바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그는 우편물과 택배물품들을 챙겼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쫓았다.

 

“잘 따라오세요.” 배달 일은 대개 발로 뛰는 것이었다. 이씨는 아파트 우편함에 우편물을 꽂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편함 위쪽과 아래쪽을 번갈아가며 우편물을 넣느라 그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금세 아파트 한 동의 우편함이 꽉 찼다. 그는 바로 택배와 등기 배달을 위해 승강기로 향했다. 최고층까지 올라가 비상구 계단을 한 층씩 내려왔다. 현관문을 일일이 두드리고, 사람이 없으면 우편물 도착안내서를 붙였다. 계단과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긴바지가 불편한지 자주 추켜올렸다. 

 

한 우체국 직원이 무더위에 말아 올렸던 근무복 바지 밑단을 다시 내리고 있다. © 오문영·조아라

 

얼음 물통, 셀프 7부바지 ‘궁여지책’ 

 

“그래도 아파트는 편한 거예요.” 오후 1시를 넘긴 시각, 이씨는 길음동 주택가 배달을 시작했다. 주택가는 아파트처럼 세대들이 모여 있지 않다. 그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빌라 계단을 올랐다. 택배를 전달하고, 다시 내려와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또다시 5m를 움직이고,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어느새 그의 새까만 긴바지는 땀에 절어 엉덩이와 허벅지 살갗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이씨는 그날 우편물 1500여 건, 등기 및 택배 150여 건을 배달했다. 거리로는 40km를 움직였다.

 

올해로 3년 차가 된 이씨는 ‘눈을 감고도 담당 구역의 지도를 그릴 만큼’ 일이 익숙하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더위에는 속수무책이다. 폭염 속 배달이 더 힘든 이유는 긴바지와 땀 배출이 잘 안 되는 셔츠 때문이었다. 그는 옷 때문에 가중되는 더위와 습기가 오히려 일의 속도를 늦춘다며, 집배원복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긴바지가 불편한 것은 이씨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성북우체국의 많은 집배원들이 긴바지를 무릎 아래까지 말아 올린 채 배달을 준비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곧장 밑단을 다시 내렸다. 창고에서 꺼낸 배달물을 오토바이에 싣는 배달 준비 과정에서도 긴바지는 성가신 것이었다. 성북우체국에서는 집배원들을 위해 제빙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덕분에 집배원들은 출발 전 사무실 입구에 있는 제빙기에서 얼음 물통을 하나씩 챙긴다. 하지만 모두 미봉책이다. 얼음은 더위 속에서 금세 녹아버리고, 얼음물이 긴바지 속에서 높아질 대로 높아진 체온을 식혀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복장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떠한 노력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현장에서 뛰는 집배원들은 “제발 근무복을 바꿔 달라”고 아우성이다. 서울의 ㄷ구 집배실장 A씨는 “여름만 되면 현장에선 다들 죽겠다고 하는데 관리자들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바지를 입으면 다리털이 드러나지 않나. 집배원 품위유지 등의 이유로 윗선이 반대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장의 집배원들도 “지금도 이미 여름용 소재 바지”라며 “그런데도 엉덩이와 허벅지에 땀띠가 나 난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바지 길이가 짧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북우체국 소속 18년 차 박동조 집배원은 얼마 전 여의도 지역 집배원이 폭염 속에 배달을 하다 쓰러진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바지는 신발 위까지 덮는 길이의 정장 스타일 긴바지”라며 “종아리까지 오는 7부바지만 되어도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은 단정함을 위해 셔츠를 입는데, 미국처럼 옷깃이 있는 기능성 티셔츠도 합리적으로 도입할 만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러한 여름철 복장 문제에 대해 윗선에 여러 차례 요구해 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매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전문제에 관해서도 한 집배원은 “집배원들의 조심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며 “현장의 일은 현장 노동자가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 여름처럼 39도에 육박하는 기온 속에서 긴바지는 집배원들에게 온열질환을 발생시켜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미국 우정청(USPS) 소속 집배원의 근무복 © USPS 홈페이지


 

해외는 반바지, 기능성 반팔 티 등 다양

 

하지만 우정본부 측은 긴소매의 근무복장을 계속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긴소매 근무복을 도입한 이유는 작업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김경식 우정본부 홍보실장은 “바지 길이가 짧아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집배원이 택배 상자를 들어올리다 긁혀 찰과상을 입을 수도 있고, 가열된 오토바이 배기장치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또 “현재 집배원복은 2012년 이상봉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집배 서비스를 하는 데 있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라며 “시각적인 통일성과 정체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통일성과 정체성이 꼭 긴바지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앞으로 쿨 재질을 도입하는 등 소재를 개선할 계획은 있다”고 답했다. 

 

해외 선진국들의 집배원은 어떤 모습으로 배달을 할까. 미국 우정청(USPS) 소속 집배원들은 계절 불문하고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상의 역시 폴로셔츠 형식의 기능성 티셔츠를 입는다. 영국의 집배원 역시 기동성이 높은 폴로셔츠 상의와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호주 우정청(Australia Post)도 서면 인터뷰에서 “소속 집배원들이 배달 지역에 따라 바뀌는 다양한 날씨에 맞춰 적절한 옷을 자유롭게 골라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처음부터 반바지가 허용됐던 것은 아니다. 이들 국가에서도 집배원이 긴바지밖에 입을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여름철 복장에 대한 집배원들의 불만이 나오자, 노동조합과 우정본부는 대화에 나섰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복장의 자유를 넓혀갔다. 그렇게 영국 우정공사(Royal Mail)는 1992년부터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반바지를 허용하기 시작해 1999년에는 반바지를 전면적으로 허용했고, 미국도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5월 마지막 월요일)부터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10월 둘째 월요일)까지만 반바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다가 계절에 상관없이 반바지를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해외 우정청, 집배원 노동조합은 집배노동자의 복장에 대한 관점이 한국과 달랐다. 영국 집배원 노동조합(CWU) 국가안전 행정관인 데이브는 “경우에 따라 안전을 위해 반바지보다는 긴바지가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6시간 이상 밖에서 일하는 현장 집배원의 현실적인 고충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라며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호주 우정청 관계자인 로스는 “모든 노동자는 자신이 원하는 복장을 선택할 수 있다”며 복장에 대한 질문 자체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 국가에서 노동자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옷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던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가 복장 선택할 수 있어야”

 

유례없는 폭염 속에 사기업을 비롯한 지자체와 관공서도 노동자 스스로가 편안한 복장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추세다. ‘쿨비즈룩(간편하고 시원한 업무 복장)’ 열풍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야외 노동자인 집배원들에게 쿨비즈룩은 아직 그림의 떡이다. 이들에게는 검정 긴바지와 셔츠라는 단일 선택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배원복은 대개 10년마다 기능성이 개선된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현장 집배원들의 요구는 충분히 담기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매일같이 옷과 한 몸이 되어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것은 다름 아닌 현장 집배원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집배원복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 

 

왼쪽부터 조아라, 오문영 © 시사저널 임준선


 

[취재 후기] 집배원 ‘복장 선택권’ 주어져야  

 

더워도 너무 더웠다. 지난여름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사정 따위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날씨였다. 그런데 보였다. 모두가 온몸으로 ‘더 짧게, 더 얇게’를 외치는 가운데 새까만 긴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배원들은 그 더운 여름날 아파트에서, 주택가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홀로 양복바지를 입고 뛰어다녔다. 폭염 속의 검은 양복바지와 땀범벅이 된 미소. 그 모순들은 우리를 취재로 이끌었다.

 

현장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어떠한 것도 달아오를 대로 오른 긴바지 속 온도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집배원들은 여름철만 되면 땀띠와도 싸워야 했다. 집배원들은 ‘바지 길이를 줄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사무실은 ‘안전’을 이유로 바지 길이를 줄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집배원들의 복장 선택은 ‘권리’로 인정받고 있지 못했다. 

 

취재를 위해 성북우체국을 찾아갔을 당시, 우리는 일개 대학생일 뿐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학생증뿐이었고, 기사를 실어줄 이렇다 할 소속집단도 없었다. 우리는 “공모전에 지원해 보겠다”는 말로 스스로를 소개해야만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그럼에도 집배원들은 우리에게 불편함을 호소했다. 집배실장은 바쁜 업무에도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해 줬다. 한 집배원은 흔쾌히 자신과의 동행취재를 허락했다. 무엇보다도 “제발 부탁드립니다”라는 한 집배원의 간곡한 부탁은 잊을 수 없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기사는 ‘써야만 하는 것’이 됐다. 우리의 기사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기사가 집배원들의 ‘복장 선택권’ 보장의 시작점이 되길 희망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