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이동형 무인 상점 2020년 도쿄올림픽 때 첫선 예정

 

지난 1997년, 일본 이케부쿠로에서 무인 편의점을 처음 경험했다. 당시 무인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은 주로 과자류나 레토르트식품(retort food) 등이었다. 제품의 일련번호를 선택한 후 합계 금액을 지폐나 동전으로 결제하면 좌우로 이동 가능한 로봇이 제품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이 제품을 컨베이어벨트로 이동시켜 배출구에서 빼내가는 구조였다. 

 

이후 국내에서는 LG·대상 등 두세 곳의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도입해 상용화한 기업은 없었다. 당시 인터뷰했던 일본의 무인 편의점 개발사 임원은 개발동기를 두 가지로 소개했다. 고객들이 종업원과의 접촉을 불편해하는 소위 언콘택트(Un-contact)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 첫 번째 이유였다. 다른 하나는 종업원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 임원은 설명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하이테크 무인 소매점인 아마존고(Amazon Go)가 미국 시애틀에서 오픈했다. 고객은 아마존고 앱(App)을 내려받은 휴대전화로 입구에서 스캔하고 입장, 필요한 쇼핑을 한 후 곧장 걸어나오면 고객 계정을 통해 비용이 자동으로 결제되는 혁신 매장이다. 

 

자율주행차에 활용된 저스트 워크아웃(Just Walk Ou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아마존고’는 이미지 인식 기술인 컴퓨터 비전, 위치 기반 행동반경을 관찰하는 지오펜싱(Geofencing), 여러 센서 데이터를 조합해 분석하는 센서퓨전, 그리고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계학습 기술인 딥러닝 등이 적용됐다.

 

아마존고는 고객이 앱을 내려받은 후 필요한 쇼핑을 하고 걸어나오면 고객 계정을 통해 비용이 자동 결제된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 연합뉴스

 

美 아마존고와 中 빙고박스 차이 

 

미국에 ‘아마존고’가 있다면 중국에는 ‘빙고박스(BingoBox)’가 있다. 쇼핑 프로세스는 ‘아마존고’와 비슷하지만 별도의 쇼핑 앱을 설치하지 않고, 다기능 메신저 ‘위챗(WeChat)’을 연동해서 위챗 ID로 들어갈 수 있다. RFID 태그로 상품이 관리되고, 알리페이(Alipay)를 통해 결제하도록 했다. 두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점은 ‘아마존고’가 향후 더욱 진화할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빙고박스’는 현재의 기술을 적절히 활용한 시스템이라는 점만 다르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 소매점의 무인화 바람이 거세다. 우리나라는 최근 도입된 월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이 무인점포 도입에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이러한 연구는 계속돼 왔다. 지금은 주로 편의점에 제한적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생필품, 채소,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세탁소 등으로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편의점과 유통업계가 무인점포 시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BGF리테일은 유·무인 병행형 편의점을 시범운영 중이다. 세븐일레븐은 인공지능 결제 로봇 ‘브니(VENY)’를 개발해 고객과의 소통과 결제 등을 돕도록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아마존과 손잡고 미래형 점포 개발에 공동으로 나서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중·소규모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자들도 무인점포 론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세탁업체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인 대구 소재의 하이크리닝협동조합(이은희 이사장)이 최근 론칭한 24시간 무인 세탁소 ‘하이크리닝24’다. 이용방법을 보면 점포 전면에 세워진 키오스크(Kiosk) 화면에서 회원 가입 후 휴대폰 인증을 통해 비밀번호를 만든 다음 세탁물을 맡기면 그 내용이 고객 메시지로 즉시 전달된다. 세탁공장은 이를 수거, 세탁한 후 다시 컨베이어 시스템에 비치해 놓음과 동시에 고객에게 통보한다. 고객은 아무 때나 가면 세탁물을 찾을 수 있는 구조다. 물세탁은 코인세탁소에서 가능하지만 드라이클리닝은 불가하다. 소비자들은 시간 제약 없이 이 세탁소를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워라밸’을 지향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앞선 사례들이 입지(location)에 ‘브릭앤모타르(Brick and Mortar)’형 무인점포 모델이라면  코드앤모타르(Code and Mortar) 즉, 암호(code) 하나만으로 모든 쇼핑이 가능한 이동형 무인점포 사례들도 많다.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8’에서 공개된 도요타의 모빌리티서비스 이팔레트(e-palette)가 대표적이다.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이동식 소매점으로, 필요한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셔틀상점이다. 예컨대 반찬을 사고 싶은 고객에게는 반찬가게가, 우동을 먹고 싶다면 우동가게가 바로 집 앞까지 찾아오는 개인화 서비스인 셈인데, 2020년 도쿄올림픽 때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자율주행차가 초기에는 개인이 사기에 부담스럽기 때문에 모빌리티서비스로 접근하려는 시도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결정체

 

기술 차이는 있지만 같은 메커니즘으로 이미 시험 가동 중인 곳도 있다. 중국의 ‘모비마트(Moby Mart)’로, 점원이 없는 자율주행 채소 상점이다. 태양광 에너지로 움직이는 이 자율주행 점포에 들어서면 가상직원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간단한 인사를 건넨다. 고객이 RFID가 부착된 상품을 리더기가 있는 바구니에 넣으면 바로 계산되는 구조다. 상하이에서 첫선을 보인 ‘모비마트’는 스웨덴의 휠리스(Wheelys)와 중국 허페이(合肥)대학이 공동 개발한 모델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무인점포는 다양하게 모델링돼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고’가 비슷한 신체 유형의 소비자나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는 어린이를 정확하게 식별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하긴 했지만 물리적 소매점의 미래에 대한 티저(teaser)이며 사물인터넷(IoT)의 진일보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도요타의 ‘이팔레트’ 프로젝트는 미래의 무인 소매점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충분하다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