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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자료 단독입수…대입 제도 불신 속 또 하나의 뇌관 ‘학교 해외여행’

[편집자 주] 


수시전형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현 대입(大入) 제도하에서 각종 부작용이 튀어오른다. 최근 불거진 서울 강남의 숙명여고 사태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학교 교무부장이 두 딸을 위해 내신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확대되자 교육현장 반응은 “터질 게 터졌다”는 것이었다. 비뚤어지고 과열된 수시 경쟁 속에 해마다 시험지 유출 사건이 벌어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수시 전쟁’ 속 무리수에 따른 시한폭탄은 또 있었다. 바로 학교 주관 해외여행이다. 무분별한 고(高)비용 해외여행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학교는 멍들고, 학부모와 학생은 울상 짓고 있다.
  100곳이 넘는 학교가 학생 1인당 100만원 이상 고액 해외여행을 추진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교육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전국 시·도 학교별 해외여행 실시 현황’ 자료를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학생 1인당 경비가 100만원이 넘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초·중·고교는 총 98개교, 139건(한 학교에서 여러 팀으로 나눠 가는 경우 포함)이었다. 시사저널은 현황에서 누락된 학교들도 추가로 확인했다. 고액 해외여행을 진행한 학교가 사실상 100곳이 넘는 것이다. 
(자료: 교육부)



최고 비용 477만원…곧 500만원 넘어설 듯 

 이는 학교들이 ‘고(高)비용’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활발히 학생 대상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밀어붙인 결과다. 자료에서 2016년에 1인당 100만원 이상 해외여행을 진행한 학교와 건수는 1년 전에 비해 24개교, 25건 증가했다. 일부 자율형사립·특수목적고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해외여행이 일반고, 또 초·중학교 등으로 확대된 모습이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는 2016년 국정감사에서 2015년 학교별 해외여행 실시 현황 자료를 검토한 끝에 교육부에 “과도한 해외여행 경비를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국회 교문위는 “일부 학교의 경우 1인당 400만원이 넘는 고액 경비를 책정했다”면서 “학교별로 수학여행비 격차가 커지면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권고했다. 하지만 국회의 압박은 전혀 먹히지 않았고, 교육부도 꾸준히 현황을 조사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지난해 현황은 아예 파악하지 않아, 2016년 현황이 가장 최신 자료인 것도 이 때문이다.  10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 해외여행은 2015년 77건에서 2016년 104건으로 대폭 늘었다. 300만원 이상은 16건에서 15건으로, 2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은 21건에서 20건으로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최상위권 액수는 훨씬 더 높아졌다. 2015년 최고 금액은 광주광역시 소재 자율형사립 A고교가 기록했다. 9일간의 미국 서부 여행에 든 경비가 1인당 401만원이었다.  2016년에는 이 액수를 넘어선 경우가 6건에 이르렀다. 2016년 최고액은 강원도에 있는 공립 B고교가 기록했는데, 학생 29명이 2016년 8월 미국 9박10일 역사문화 탐방비로 1인당 487만원을 썼다. 세종특별자치시의 C특목고는 9박10일 미국 여행에 1인당 477만원을 들였다. 학교 해외여행 경비의 심리적 경계선이 국회에서 설정한 400만원을 가뿐히 넘어 500만원에 육박한 모습이다. 학교 급별로 살펴보면 학생 1인당 해외여행 경비가 100만원 이상인 건수는 초등학교에서 34건, 중학교에서 16건, 고등학교에서 88건, 특수학교에서 1건으로 고등학교가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17건), 전남(16건), 충남(14건), 전북(1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조기 大入 준비 열풍 속 초·중도 대거 포함  

 자사고·특목고 외에 일반 국·공립고와 공립 특성화·마이스터고가 4곳 포함됐다. 2015년(초등학교 21건, 중학교 15건, 고등학교 78건)에 비해 초등학교 건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전남에 있는 공립 D초교는 학생 1인당 438만원을 들여 9박10일 독일 예술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웬만한 고등학교도 명함을 못 내밀 고비용이다. 대구광역시의 사립 E초교(러시아 5박6일, 1인당 280만원), 충남의 공립 F초교(일본 5박6일, 1인당 263만원), 충청북도의 사립 G초교(호주 6박7일, 1인당 245만원), 전남의 공립 H초교(중국 4박5일, 1인당 220만원), 경상남도의 공립 I초교(싱가포르 4박5일, 1인당 204만원) 등도 1인당 200만원 넘는 고비용 해외여행을 진행했다.    
ⓒ 일러스트 정재환

 100만원 이상, 많게는 500만원 가까이 되는 학교 해외여행 경비를 향한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또 상당수 고비용 해외여행은 지원자를 받아, 학생 일부만 데리고 가는 식이다. 팀별 참가 학생 수는 30명 이상 40명 미만(22건)과 90명 이상 100명 미만(22건)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어 40명 이상 50명 미만(17건), 20명 이상 30명 미만(16건) 등 순이었다.    금전적 이유 등으로 해외여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상처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 한 고등학생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여행비용이 웬만한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보다 비싼 수준”이라며 “못 가는 아이들은 당연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해당 학생 가정에서는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부모와 자식 사이 벽이 생기는 등 문제가 생길 소지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여행사와 학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이래서 자식을 낳기 싫다”는 등 극단적인 성토도 쏟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비용 해외여행이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차적인 원인은 많은 학교·학부모가 해외여행을 원하는 분위기 탓이다. 김병욱 의원은 “여행지는 보통 학부모와 학교 간 합의를 거쳐 선정된다”며 “이 때문에 해외여행을 무작정 막을 순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대입(大入)이다. 2016년 초·중·고교가 다녀온 100만원 이상 해외여행의 주제는 다양했다. ‘문화 탐방’ 키워드가 포함된 여행을 다녀온 경우가 106건(전체의 76.3%)으로 가장 많았다. ‘해외 대학 탐방’ ‘진로 체험’ ‘봉사’ ‘별 탐사’ ‘외국어 실습’ ‘국제 교류’ 등도 있었다. 이런 명분으로 다녀온 해외여행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계속해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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