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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정씨 대법원 자필 진술서 단독입수…“수사 자체가 회유와 협박의 연속”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부산지역 건설업자 뇌물 공여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나왔다. 건설업자 정아무개씨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조 전 청장과 함께 2015년 8월 기소됐다. 정씨와 조 전 청장은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한 것은 2심 때다.  검찰은 정씨로부터 향응을 받은 부산고등법원 문아무개 판사가 정씨를 위해 재판 내용을 빼내려 했다고 보고 부산고등법원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고법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법원행정처는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부산고법원장에게 ‘공판을 추가로 진행해 유죄를 선고하라’는 취지를 전달했다. 실제로 공판은 추가로 열렸고, 2심 결과도 1심을 뒤엎고 유죄로 바뀌었다. 즉, 검찰로부터 비리 의혹을 받은 문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대법원이 일선 재판을 사실상 지휘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재판 당사자인 조 전 청장이나 정씨의 생각은 다르다. 대법원의 개입이 있기 이전에, 애초부터 이 사건 자체가 검찰이 정씨를 협박하고 증거를 조작해 만든 ‘공작 수사’라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정씨가 3심 선고를 앞두고 대법원 측에 제출한 자필 진술서를 단독 입수했다.  A4용지 6장 분량의 진술서에는 어떤 검사가 어떤 식으로 정씨를 협박하고 증거를 조작했는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정씨와 조 전 청장의 주장을 요약하면, 검찰이 정씨를 협박해 조 전 청장을 뇌물죄로 기소했는데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정씨와 관계된 문 판사의 비리 의혹을 앞세워 법원에 압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왼쪽)과 대법원 © 시사저널 임준선 박정훈

 

조현오 “유죄 받아내기 위해 검찰이 법원 압박”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특수3부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서 ‘문○○ 판사 관련 리스크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을 확보했다. 문건에는 “문○○ 부산고법 판사가 건설업체 정씨의 항소심 재판부 심증을 빼내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부산고법 관계자가 검찰 수사관을 통해 들었으며, 검찰이 이에 대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졌다.  법원행정처는 검찰이 이 소문을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문서에는 “무죄가 선고될 경우 관련 의혹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2심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면서 “공판을 1~2회 더 진행하는 방안을 법원행정처장이나 차장이 부산고법원장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돼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하는 무리수를 둔 이유가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한 것도 문제지만, 검찰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법원을 압박했다면 이 역시 적폐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재판은 조 전 청장이 5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했는지를 가리는 재판이다. 부산지검은 이 사건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부산지검은 2015년 5월부터 조 전 청장의 인사 청탁, 뇌물 수수를 입증하기 위해 조 전 청장은 물론 주변인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알선수재 혐의를 받은 송아무개씨의 경우 120여 일간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송씨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무죄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청장 역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정씨가 2010년 8월과 2011년 7월경에 각각 3000만원과 2000만원의 뇌물을 조 전 청장에게 제공했다”며 징역 5년, 벌금 1억원, 추징금 5000만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2016년 2월17일 “주요 증거인 정씨 등의 진술을 믿을 수 없으며, 진술 외의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2심에서까지 무죄가 선고되면 3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청장은 “문 판사는 일개 부장판사에 불과할 뿐이다. 부장판사가 자신이 맡지 않은 재판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보를 빼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검찰이 정씨를 협박해 나를 뇌물죄로 엮었지만 1심에서 패소하자 2심에서라도 이기기 위해 문 판사 비리 의혹으로 법원을 압박했고, 법원행정처가 이를 들어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조 전 청장의 뇌물죄가 2심에서 유죄를 받은 것은 2심 재판부가 정씨 진술의 신빙성을 일부 인정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2017년 2월16일 “정씨 등의 진술을 모조리 부정하거나 또는 그 신빙성을 모조리 배척하여야 할 사유가 없다”며 3000만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로 인정했다. 이처럼 이번 사건의 경우 정씨의 진술 외에 명확한 물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씨가 3심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에 “검찰이 나를 협박해 모든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들이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7월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횡령죄 기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검사와 거래했다”

 정씨는 자필 진술서를 통해 “재판 과정에서 제가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으며 당한 여러 가지 협박과 수모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싶어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라면서 “제가 검사와 딜(deal·거래)을 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말할 수 없었고 재판 과정에서도 되도록 검찰 진술을 유지해 주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진술서 일부분이다. 

“검사실로 끌려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추궁 당했던 것은 조현오에게 경찰간부 인사 청탁과 관련해서 돈을 주었느냐는 것이었지 의외로 횡령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습니다. 검사님과 수사관님은 조현오에게 돈을 준 것만 불면 횡령 문제는 없는 것으로 해 주겠다고 회유하였지만, 저는 조현오와의 관계에 있어서 금전문제에 대해서는 떳떳하다는 취지로 여러 번 검사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정씨가 협조하지 않자 검찰은 즉각 압박에 나섰다고 한다. 

“검찰은 저와 제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와 주거지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에다가 저의 본처와 내연녀를 동시에 불러서 조사하면서 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집행유예 기간 중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상기시키며 제 처의 허위급여나 회사의 다른 것이라도 횡령으로 잡아서 기소하면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결국 6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씨는 검찰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거짓 증언을 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없었던 것을 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제가 여러 번 읍소하였지만 저와 사업적으로 대립각에 있던 이○○와 그 일당들의 진술을 알려주면서 그에 맞추어서 진술하면 된다는 식으로 저를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뇌물 공여만 인정하면 횡령죄는 기소하지 않을 것이어서 집행유예 취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해서도 집행유예 구형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중략)…제가 만약 6년 동안 감옥에서 산다면 아이들 인생이 어찌 되겠나 싶어서 고심 끝에 검찰에서 금융자료를 대면 그에 따라서 진술해 주기로 검찰과 딜을 하였습니다.”

 정씨는 법원행정처의 압력에 의해 공판이 추가돼 선고가 연기된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항소심 마지막에 판결 선고가 연기되고 저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한다기에 ‘2010(년) 공여하였다고 한 것은, 검찰에서 금융자료대로 진술 하라고 해서 한 것이지 실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진술한 바 있습니다.…(중략)…수사과정 자체가 회유와 협박의 연속이었고 요새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검찰개혁 논의와 관련해서도 이러한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게 된 것입니다.”

 
2011년 범죄정보과 현판식 모습.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은 범죄정보과를 통해 비리 검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 연합뉴스

 

조현오 전 청장, 범죄정보과 만들어 검찰과 대립각

 조 전 청장과 정씨의 주장대로라면, 검찰은 조 전 청장을 잡아넣기 위해 증인을 협박해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법원에까지 압력을 행사한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조 전 청장과 검찰의 악연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조 전 청장은 경찰청장 시절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검찰과 각을 세웠고, 경찰청에 범죄정보과를 만들어 검찰 비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직 경찰 고위 관계자 A씨는 “특히 조 전 청장 임기 때 있었던 윤아무개 전 용산 세무서장에 대한 수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조 전 청장 사건을 지휘한 부산지검의 차장검사가 윤 전 세무서장 사건 당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던 검사”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 2012년 ‘육류수입가공업자 김아무개씨가 세무조사 무마의 대가로 현금 2000만원을 윤 전 서장에게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윤 전 세무서장이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골프 접대 등 로비를 펼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A씨는 “윤 전 세무서장의 친동생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고위 간부였고, 윤 전 서장의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산 검사들도 모두 고위 간부였다”면서 “당시 검찰은 경찰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며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수차례 기각하는 등 정당한 수사를 방해했다. 결국 검찰은 윤 전 세무서장을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수사 물망에 올랐던 검사들은 현재 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청장은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면서 “그러나 검찰이 증인을 협박해 증거를 조작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청장은 “또한 검찰은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판사 비리 의혹으로 법원에 압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수사를 받아야 할 검찰이 오히려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증인 협박·증거 조작에 대한 죄는 누가 심판할 수 있겠는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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