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읽고 “일제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왔던 점에 대해 공포감”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는 15세 나이에 미쓰비시 탄광에 끌려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한 퇴직교사의 강제 징용 수기다. 고(故) 이상업씨(1928년생)가 쓴 이 수기는 지난 2017년 4월 일본어판으로 출간됐다. 이 책의 출간은 당시 군함도 등 일제 강제징용 시설이 유네스코 산업유산에 등재된 직후,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에 대한 징용은 있었지만 강제 노동은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현실에서, 직접 겪은 강제 징용 실상을 일본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
저자인 이씨는 1943년 11월경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 만 17세 이상의 남자에 한해 노무자로 동원할 수 있는 ‘징용령’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후쿠오카현의 가미야마다 탄광, 지하 1500m의 막장에서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징용된 탄광에는 2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동원됐다. 구타와 뇌진탕 등으로 탄광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병사’로 처리됐다.
이씨는 탄광에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 든 생각을 책에 이렇게 서술했다.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속으로는 차라리 그 소년의 죽음에 모두 소리 없는 축복을 보내고 있었다. 지옥 같은 노동과 굶주림과 구타에서 일찍 해방된 그 소년의 죽음을 차라리 부러워하고 있었다.” 두 번의 탈출에 실패한 뒤 세 번째 탈출에 성공한 이씨는 1945년 해방 이후 귀향해 33년 동안 교사로 재직했고, 지난해 5월26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5월1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일본 국립 아이치교육대학교 나야 마사히로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3개 교과목의 수강생들에게 이씨가 쓴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를 읽을 것을 권했다.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나야 마사히로 교수는 “이 감상문은 성적 평가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학생들이 부담 없이 자신의 느낌을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학생들은 이 수기를 읽고 어떤 감상을 내놓았을까. 이 감상문에는 그동안 몰랐던 일제의 강제 징용 실태를 처음 접한 학생들의 솔직한 심경들이 담겨 있다.
4학년 가야하라 유이는 “70년 전에 정말로 일어났던 얘기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일제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왔던 점에 대해 공포감마저 느꼈다”고 언급했다. 또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역사교육에서는 일본은 피해자였고, 전쟁의 비극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일본도 소름끼치는 가해자가 아닌가. 자국이 저지른 일을 감추고 후세에게 전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눈을 돌려버리고 싶은 일일지라도 잘못과 맞서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서술했다.
2학년에 재학 중인 다케우치 미쿠는 “지금 일본과 한국의 관계와는 너무 달라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일본은 당시 조선인에게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요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원양성과정을 밟고 있는 4학년 고다마 유다이는 “책을 읽고 전쟁의 공포를 느꼈다”며 “15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징용령을 받다니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고 적었다. 그는 “이런 일을 일본인이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공포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슬퍼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