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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직원 회유 및 협박 사례 허다…전문가들 “외부 개입 필요성” 강조

 직장상사 B씨로부터 불쾌한 스킨십을 견디다 못한 여직원 A씨는 고민 끝에 용기를 내 회사 측에 피해사실을 알렸다. B씨는 회사 측에 친밀감을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씨는 결국 조직 내에서 유별난 행동을 한 여직원이라는 시선을 받게 됐고, 이를 견디지 못해 회사를 나오게 됐다. A씨는 아직도 가족에게 자신의 퇴사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한샘 여직원 성폭력’ 사태가 알려지는 등 기업 내 성범죄 사태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기업마다 갖추고 있는 ‘성폭력 처리 시스템’이 먹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직 내에서 해당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자 결국 인터넷으로 피해 여성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성추행·성희롱 등 성폭행 피해 직원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고 발생 시 가해자에 대해 징계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인 이상 사업장은 매년 의무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11월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여성에겐 모든 기업이 한샘이다’ 기자회견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성희롱 문제 제기에 대한 불이익’ 명칭 있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사내 성추문 처리 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사태 발생 시 처리하는 절차는 거의 비슷했다. 우선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고충처리를 담당하는 곳에 인터넷 등을 통해 피해사실을 접수토록 했다. 이후 해당 사실에 대해 인사팀이나 감사팀 등 윤리경영을 담당하는 부서가 검토 및 조사한다. 이후 징계위원회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식이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해자 처리는 신속하게 이뤄지고 처리 결과는 인트라넷을 통해 공고한다”며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렇게만 보면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부 권박미숙 활동가는 “한샘 사태와 같이 사내 성범죄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들먹이는 사례가 많고, 이는 사실상 성범죄 처리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며 “상담할 때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에 대한 불이익’이라는 전문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허다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불거진 한샘 성폭행 사태와 관련해 인사팀장이 피해 여성을 회유 및 협박하려 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자에게 오히려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강조하고, 이런 사건이 커지면 여성이 더 불리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이 같은 인사팀장의 협박성 회유에 고소를 취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판이 거세지자 한샘은 11월8일 ‘기업문화실’을 만들어 기업문화를 혁신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르노삼성 역시 이와 관련해 비슷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번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르노삼성 건이 4년이 지났는데도 해결이 안 됐다”며 “피해자는 법적 보호도 못 받고 인사고과에서 불리한 조치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영주 장관은 “검찰과 협의해 조속히 마무리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르노삼성 건과 관련해선 특히 고용노동부 등 관계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에 올랐다. 르노삼성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문제 제기를 했다가 회사 측으로부터 오히려 불리한 조치를 받았다며,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 위반으로 르노삼성자동차를 고소했지만,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15년 12월18일 민사 손해배상 항소심 판결에선 피해자가 성희롱 피해에 대해 문제 제기한 후 기존에 수행하던 전문 업무에서 공통 업무로 업무배치 통보를 받은 것은 고용평등법 제14조 2항을 위반한 불리한 조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성희롱 사건의 조사를 맡았던 인사팀 직원이 피해자에 대해 부정적인 해석을 덧붙여 사건을 주위에 언급한 것에 대해 조사자로서 비밀유지와 공정성 의무를 저버린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여성민우회에 따르면, 2012~16년 고용노동부가 고용평등법 제14조 2항 위반으로 26건의 사건을 접수했지만, 기소된 사건은 단 2건에 그쳤다. 기소율이 7.7%에 불과한 것인데, 지난 10년간(2008~17년 6월)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 47.3%에 비해 턱없이 낮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린 여성에게 불리한 조치가 내려지는 데 이어, 이와 관련한 피해조차 제대로 구제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한샘 사태는 조직 내 제도가 얼마나 실효성이 없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며 “중요한 건 단순히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해당 시스템을 이용하면 자신이 2차 피해를 받지 않고 가해자가 적절한 징계를 받을 것이란 신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사 가해자에 대해 일부 징계가 내려진다 하더라도 피해 여성의 고통은 끊이지 않는다. 징계가 이뤄진 후에도 피해 여성과 가해 남성을 한 부서에서 일하도록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가해 남성은 버젓이 회사를 다니고 피해 여성이 이직(移職)을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권력관계에 기초해 일어나는 직장 내 성범죄 특성상 가해 남성이 피해 여성보다 회사 내 입김이 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 직장 후배가 여성 상사를 성희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못 미더운’ 회사 시스템 대신 인터넷 찾아

 성추문으로 시끄러워지면 여성을 ‘천덕꾸러기’로 취급하는 잘못된 조직 문화도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정작 문제는 가해 남성이 일으켰는데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가는 특유한 한국 문화는, 매끄러운 성폭력 구제 시스템 작동을 방해하는 요소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 구제 시스템을 불신하는 여성들은 결국 인터넷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61면 딸린 기사 참조) 그야말로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이들이 택하는 극단의 방식이 인터넷을 통해 피해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한샘 성폭행 사태도 그 시작은 인터넷에 올라온 한 글이었다. 이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언론보도를 통해 사실 확인을 거쳐 재생산되는 과정은 폭발력을 지닌다. 하지만 피해 여성의 신상정보 유출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도와온 오지원 변호사는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답답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마지막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사생활 침해·명예훼손 등의 문제로 사건이 비화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근본적 해결책은 각 기업이 성범죄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보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독립성 있는 외부의 개입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경 소장은 “성희롱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을 인사과 등 특정 부서 직원에게 맡기면 본인부터가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 내에서 해결하게 할 경우 위계질서 등으로 피해자보다 직장 상사 말에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조사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들을 의무적으로 두게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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