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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배후세력 있나…범인 김씨가 혼자 범행 주도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불법 주식거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복역 중인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 가족 이야기다. 언론은 온통 ‘영화 같은 사건’ ‘미스터리’ 등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씨의 과거 사기행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찰 조사에서 이씨는 동생 이희문씨(미래투자파트너스 대표), 동생 친구 박아무개씨(A투자파트너스 대표)와 함께 2015년 2월과 2016년 8월 사이 투자자들에게 271억원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드러난 피해자만 211명이었다. 검찰은 이씨가 투자자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부당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사기를 벌였다고 판단했다. 2016년 9월 기소된 이씨는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200억원, 추징금 약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씨 동생에게도 같은 혐의로 징역 2년6월, 벌금 100억원(선고유예)을 선고했다. 이씨 재판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씨 부모 살인 사건은 이렇다. 3월18일 경찰에 붙잡힌 범인 김아무개씨는 미국 유학생 출신으로 이씨 아버지에게 2000만원을 빌려줬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와 이씨 아버지는 지난해 2월 요트 판매대행을 계기로 알게 됐다. 미국에서 요트 사업을 하던 김씨가 한국으로 건너와 투자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씨 아버지와 친분을 쌓았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이씨 아버지로부터 약속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여러 엽기 행각이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구속 집행 정지로 잠시 나온 이희진씨(오른쪽)가 3월20일 부모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pixabay
구속 집행 정지로 잠시 나온 이희진씨(오른쪽)가 3월20일 부모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pixabay

범인, 피해자와 연락 주고받은 흔적 없어

우선, 범행을 모의하는 과정 자체가 충격적이다. 김씨는 지난 2월초 인터넷에 ‘경호 인력을 구한다’는 글을 올려 중국동포 3명을 모집했다. 이들은 2월18일 경기도 부천에서 만나 범행을 모의한 뒤 일주일 뒤인 25일 오후 3시51분 이씨 부모가 사는 집에 몰래 들어가 숨었다. 범인들은 15분 뒤 이씨 부모가 들어오자 살해한 뒤 금품을 챙겨 달아났으며, 공범인 중국동포 3명은 곧장 중국으로 출국했다. 현재 경찰은 인터폴에 이들에 대한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범행이 발각된 것은 3월16일. 모친과 연락이 닿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느낀 동생 이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집 안 옷장에서 살해된 모친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아파트 CCTV 등을 살핀 경찰은 김씨를 검거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김씨가 사건 당일 이씨 부모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버지 이씨의 시신을 이삿짐으로 위장해 냉장고에 넣어 경기도 평택의 한 창고로 운반했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범인이 20일 만에 검거된 것은 김씨가 범행 후 이씨 모친의 휴대폰을 갖고 자신이 어머니인 척 가장해 동생 이씨와 문자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이씨 측 관계자는 “부모와 따로 살고 있던 동생에게 최소 4차례 이상 만나자고 연락하는 등 평소 행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범인 김씨는 동생 이씨가 건 전화는 받지도 않고 오로지 카카오톡으로만 답을 했다. 수상함을 느낀 동생 이씨가 경찰에 신고했고, 집 안에서 살해된 모친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왜 범인들이 이씨 부모를 노렸을까. 김씨는 이씨 아버지와의 채무관계 때문이라고 진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범행을 준비하는 과정 등을 살펴볼 때 의심이 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경찰은 범인 김씨의 휴대전화에서 살해된 이씨 부친과 주고받은 문자 또는 통화내역이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살해 목적이 이씨 부친과의 채무관계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단순 살해 목적이었다면, 범행을 저지른 뒤 도망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갖고 연락을 취했다는 것은 다른 공범들이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면서 추가 범죄를 저지를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희진씨 측도 “이번 사건은 부모가 아닌 이씨 형제를 노리고 한 행동”이라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이씨 측 관계자는 “김씨가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라고 연락했다”면서 “이에 동생 이씨는 경호요원 2명을 고용해 대동하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배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씨가 투자금 2000만원 때문에 청부살인을 감행했다고 보기 힘들어서다. 이씨와 관련된 재판이 여러 건 진행 중인 데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도 이번 사건을 단순 채무관계에 따른 범죄로 보기 힘든 이유다.  경찰 주변에서는 동생 이씨가 출소한 이후의 시점을 주목한다. 검찰은 이희진씨와 동생 이희문씨에게 각각 66억원과 61억원의 추징보전을 신청했다. 그러면서 이희진씨가 대표로 있는 미라클인베스트먼트 소유 건물과 이희문씨가 대표로 있는 미래투자파트너스 소유 건물에 가압류 조치를 했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졌던 이희진씨 ⓒ KBS 캡쳐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졌던 이희진씨 ⓒ KBS 캡쳐

주변 인물들과 투자금 변제 놓고 갈등

변수가 생긴 것은 동생 이씨가 2017년 5월 법인 소유의 건물을 약 306억원에 매각하면서다. 동생 이씨는 처분한 돈의 일부를 공탁금으로 내고 지난해 11월 만기 출소했다. 동생이 출소하면서 이희진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도 함께 움직였다. 현재 경찰은 이씨 형제와 관련된 인물이 배후에 있음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씨 주변 상황을 잘 아는 C씨는 “곁에서 보디가드 역할을 하던 이아무개씨가 이씨에게 빌려준 4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올 2월 자살했는데, 그 주변 사람들이 복수하기 위해 사건을 모의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폭 연루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시사저널은 부산의 대형 폭력조직 출신이라고 주장한 K씨의 진정서와 검찰 기록물 등을 입수했다. 관련 서류에서 K씨는 “이희진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술하는 사람들에 대해 폭력을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K씨의 진정이 들어오자 검찰은 이를 토대로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 조사에서 이희진씨는 “지지자를 자처하던 K씨와 편지를 주고받던 중 2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해 거절하자 마치 내가 어떤 일을 사주한 것처럼 꾸며 진정서를 냈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 K씨가 불응하면서 사건은 없던 일로 끝났다. 징역 3년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K씨는 올 상반기 출소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이씨는 미라클인베스트먼트가 소유한 건물의 전 소유주와도 갈등 관계에 있다. 이씨 사정을 잘 아는 지인 D씨는 “투자를 조건으로 전 건물주가 다운계약서까지 써줬는데 나중에 이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희진씨가 타고 다니던 슈퍼카 부가티 베이론의 행방’은 이번 사건을 풀 열쇠다. 이씨 측은 “동생이 사건이 발생한 2월25일 차를 팔아 현금 5억원을 부모님에게 드렸는데, 집에 가보니 현금이 든 가방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범인 김씨는 “우발적인 범죄였으며, 현금 가방은 공범 3명이 들고 도망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범인들은 사건 현장에 먼저 가 이씨 부모가 오길 기다렸다. 경우에 따라, 이날 슈퍼카가 판매됐음을 미리 알고 피해자들의 귀가를 기다렸을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이번 사건을 기획한 세력은 차가 판매되는 전 과정을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희진씨가 타고 다녔던 슈퍼카는 동생 이씨가 대표로 있는 법인 소속 차량이다. 법인 소유 부동산을 팔고 난 뒤 남은 돈을 공탁하면서 매매가 가능해졌다. 차량 이력을 확인한 결과, 차량번호 ‘38부 XXXX’였던 이 차는 2월25일자로 소유자가 변경됐다. 그러면서 차량 번호도 ‘11거XXXX’로 바뀌었다. 현재 이 차량은 경기도 분당의 한 중고차 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차량 소유권이 바뀐 날은 사건이 벌어진 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씨 측은 “진범이 붙잡히고 공범은 해외로 도주했지만, 사건의 배후세력은 여전히 이씨 형제를 주목하고 있는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수정 교수는 “사건현장을 청소하고 아버지 시신을 제3의 장소로 옮기는 것도 모자라,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누구를 만나라’로 지시하는 등 대담한 범행을 저지른 것은 배후세력이 이씨 형제들에게 ‘부모를 죽인 것으로는 끝이 안 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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