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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협상 교착 속 CSIS ‘삭간몰’ 보고서 후폭풍

'북한의 핵 사기도박' 미국 내 대표적인 진보 정론지 뉴욕타임스(NYT) 사설 제목이다. 한국 강경 보수 세력의 표현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격하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체되면서 북한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여론이 시끌시끌하다.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 장면에서 등장한 북한의 신형 대함미사일 ⓒ 연합뉴스



CSIS '北 미사일 기지 보고서' 놓고 美 들썩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1월12일(현지시간) '신고되지 않은 북한 :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 보고서를 통해 "북한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약 20곳의 미신고 미사일 운용 기지 중 13곳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NYT·워싱턴포스트(WP) 등을 위시한 미국 진보 진영은 북한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속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11월12일 해당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큰 속임수(great deception)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11월14일 '북한의 핵 사기도박(shell game)'이란 제목의 사설에선 북한이 미사일 발사장 해체를 위한 일부 '반보(半步)'를 내세우지만 최소 13곳, 어쩌면 많게는 20곳의 미사일 기지를 운영하고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무기고 증강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WP도 11월13일 사설에서 "북한이 최근 미사일이나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활동을) 게을리했던 것도 아니다"라면서 CSIS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NYT 보도를 지목하며 "부정확하다. 가짜뉴스다"라고 힐난했다. 이전부터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로 일축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이 주장의 힘은 그리 크지 않았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 글을 리트윗하고 "그것(삭간몰 기지)은 가동 중이며 BM(Ballistic Missile·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며 "당신이 그 장소들(북한의 미사일 기지들)에 대해 알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장소들이 북한의 신고에 포함될까"라고 반문했다.

다만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와 전직 관리 등 미국 내에서 'NYT 보도가 다소 과격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태는 균형점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크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걱정할 이유(cause for concern)'는 된다는 반응이라고 미 CBS 방송이 전했다.


한국에서도 갑론을박…"북·미가 얼른 풀어야"

미국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 뒤 불똥은 한국으로 튀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월13일 "CSIS 보고서 출처는 상업용 위성인데, 한·미 정보 당국은 군사용 위성으로 훨씬 더 상세하게 파악하고 면밀히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NYT 주장에는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해당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입장에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국내 보수 진영은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가 도를 넘어 북한을 두둔했다며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북한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완전한 폐기와 함께 미사일 등 운반 수단의 폐기까지 포괄하는 것"이라면서 "청와대가 북한 미사일 기지를 옹호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보수권의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거들었다. 황 전 총리는 11월15일 SNS에 "(북한이) 계속해서 숨겨진 다른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면 이것이 기만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적었다. '기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김 대변인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황 전 총리는 "북한은 남북 회담, 북·미 회담 이후 역할이 끝나 쓸모가 없어진 핵 시설에 대해 폭파 퍼포먼스를 했을 뿐이다. 그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까지 중단됐다"며 "북한이 여전히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는 데 이를 변호할 일인가"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북한을 대변·옹호했다는 지적과 관련, 배종호 세한대 교수는 "북한보다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대변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지만, 우리 정부를 '북한 대변인이냐'고까지 공격하는 게 과연 얼마나 공감을 사겠느냐"며 "이 문제는 결국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실현할 것이냐, 아니면 냉전적 사고로 접근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으므로 (공격하더라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미국 언론, 정치권, 싱크탱크 등 내에선 북한 비핵화 회의론과 반(反) 트럼프 정서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번과 같은 논란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여지가 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월14일 정례 브리핑에서 CSIS 보고서를 둘러싼 잡음에 대해 "북·미 양측은 정상회담 성과를 잘 실현하며 상대의 합리적인 우려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며 "한반도 문제 프로세스의 정치적 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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