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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남은 직원들 불만 여전…최악 치닫는 공정위 내부 분위기

내우외환에 휩싸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직원 이탈 조짐이 있었는데, 실제 타 부처로 이동한 인원은 전체 희망자의 단 4%가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사 절차상 전출이 힘들었던 탓이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직원들의 회의감과 불만이 여전한 가운데 공정위 내부 분위기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출입문 앞.(세종=오종탁 기자)


 

엑소더스 조짐 후 단 4명만 전출 성공 

 

10월30일 시사저널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장)실의 협조를 얻어 인사혁신처와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조사한 결과 올해 6월 이후 공정위에서 다른 정부부처로 옮겨간 직원은 모두 4명이다. 이들은 각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외교부, 산림청으로 전출했다.

 

인사혁신처는 '나라일터'란 사이트를 통해 수시로 공무원 인사 교류를 진행한다. 4~9급 중앙·지방공무원은 누구나 타 부처 혹은 지방자치단체로의 전출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 중 직급과 희망 부처 등의 조건이 맞는 경우, 인사혁신처가 선별해 소속 부처들에 통보한다. 여기서 또 당사자 확인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인사 교류가 최종적으로 성사된다.

 

인사혁신처가 올해 하반기 들어 공정위에 '인사 교류 가능자'(전출 후보자)로 통보한 인원은 11명이었다. 상반기(1~5월) 7명보다 4명 늘었다. 그러나 하반기 전출 희망자는 실제론 훨씬 더 많았다. 지난 8월 전후 '나라일터'에 전출을 신청한 공정위 직원은 100명 가까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9월 기준 공정위 전체 인원(602명)의 17%에 이르는 규모다. 당시 언론에 '공정위 엑소더스(대탈출)'라며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신분 노출 등을 우려한 일부 직원은 전출 희망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공정위에서 최종적으로 파악한 전출 희망자는 63명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장 나가고 싶어도 다른 부처 등에서 공정위에 오고 싶어하는 이가 없으면 전출이 힘들다"며 "인사혁신처에서 (타 부처의 전출 희망자와) 매칭을 해줘도 최종 전출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무산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정위를 벗어나고자 했던 직원 100여명 중 4명만 목적을 달성했고, 나머지는 냉가슴을 앓게 됐다.

 

공정위가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검찰의 공정위 재취업 비리 수사 전까지는 이른바 '인기 부처'였다. 공정위 직원들은 불공정 거래 행위를 직접 조사하며 시장경제질서 실현, 소비자 권익 제고에 앞장선다. 일반 행정 대비 높은 업무 능동성에 매력을 느끼고 공정위 전입을 희망하는 타 부처 공무원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전출 희망자는 적었다. 행정고시(재경직)에 합격한 신입 사무관들이 선호하는 발령지 순위에서도 매년 상위권에 랭크됐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분위기는 급변했다. 공정위는 수사 결과 앞에 무릎을 꿇었고, 필사적으로 사수해온 전속고발 권한도 일부 내놨다. 쑥대밭이 된 공정위에는 허탈함과 무력감만 남았다. 외부(대학교수) 출신인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직원들과 만남·대화를 지속해 왔지만, 노력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6월 김 위원장 취임 이후 부쩍 높아진 업무 강도에 대한 불만까지 뒤늦게 표면화하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등 굵직한 정책을 진두지휘하면서 직원들을 몰아붙였다. 직원들은 최근 내부 의견 수렴 과정에서 "마라톤을 100m 달리기처럼 하고 있다" "출근하기 싫다"는 등의 고충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0월15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등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사기 진작책 내놨지만 내홍·회의론 여전        

 

끝이 아니다. 10월15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공정거래위원장과 간부 사이의 내홍이 폭발했다. 김상조 위원장에 의해 직무정지된 유선주 공정위 심판관리관(국장)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전원회의와 소회의의 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녹음해 보관하고 상임·비상임위원과 기업·로펌의 면담을 금지하려는 시도를 윗선에서 조직적으로 막았다"고 폭로했다. 김 위원장이 내부 개혁을 위한 정당한 노력을 억압했다는 주장이다. 유 국장은 김 위원장이 구두로 직무를 정지시킨 것이 위법이라는 점을 들어 헌법소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공정위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해온 한 직원은 "공정위의 대부분 직원이 유 국장의 국감 출석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깜짝 놀랐을 것"이라면서 "사상 초유의 위기라는데, 내부적으로도 역대 최악의 분위기다. 쉽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차관급)도 김 위원장을 향해 불만을 표출했다. 재취업 비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지 부위원장역시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무정지를 당했다. 지 부위원장은 "(유죄판결을 받지도 않았는데) 업무에서 배제한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을 정면비판했다.

 

만천하에 드러난 내부 갈등에 불과 5일 전 김 위원장이 내비친 회한이 무색해졌다. 김 위원장은 10월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위 직원 조례를 열어 "검찰 수사를 계기로 조직 내외부와 소통하면서 이제는 기관장으로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과장급 이상 간부 직원에 대한 다면평가를 도입하고, 직원들의 교육·연수 기회를 확충하는 등의 조직 사기 진작 방안을 내놨다. 김 위원장은 발언 도중 감정에 북받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1년4개월 간 공정위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3000페이지 넘는 심사보고서(공정위 직원들이 작성한 사건 조사 보고서) 등을 많이 접했고, 그 안에서 여러분의 열정과 사명감을 봤다"며 "직원들이 가족, 친구 앞에서 공정위 직원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소통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기 진작책을 놓고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특히 위기에 처한 조직을 외면하는 공정위 직원들에게 당근만 제시하는 것이 근본적인 위기 타개 방안인지에 대한 물음이 뒤따른다. 한 정부 관계자는 "조직 쇄신을 위해서 누구 하나 스스로 나서진 않으면서, '전속고발권을 빼앗기다니, 치욕적이다' '소통이 없다' '힘들다'는 주장만 많은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의 리더십도 문제가 있지만, 내부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반성과 변화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상황 비관, 사람 탓만 하기엔 찜찜함이 많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공정위는 1996년 국장 5명 중 2명이 잇따라 검찰에 구속되자 전 직원이 신뢰 회복을 외치며 사표를 위원장에게 맡긴 바 있다. 1급부터 7급까지 전 직원 288명이 사표를 내며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 등 공직자로서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즉시 사표 수리를 감수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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