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동탄우체국 집배원 일일체험…“파업하면 우리 쉬는 거예요?”
지각이다. 화성동탄우체국에 도착한 시각은 6월25일 화요일 오전 7시30분. 편지와 짐짝을 분류하는 작업은 이미 한창이었다. 수십 명의 집배원들은 창고에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뛰어다녔다. 업무강도에 대한 질문 따위는 방해만 될 것 같아 그냥 삼키고 말았다.
이날은 기자가 화성동탄우체국에서 집배원 일일체험을 하기로 한 날이다. “봐주지 말고 다른 분들과 똑같이 일 시켜 달라”는 기자의 말에 박민호 우정노조지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화요일이 가장 바쁜 날입니다.” 지난 주말 동안 고객들이 주문한 상품이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이곳은 지난해 집배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3063시간(집배원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 발표)으로 집계됐다. 전국 67개 우편총괄국 중 다섯 번째로 높다.
정식 업무는 아침 9시, 출근은 ‘7시’
체험을 함께 할 김정섭 집배원(44)을 만났다. 경력 13년 차인 그는 차량을 이용해 화물을 배달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의 주변엔 화물들이 184cm인 본인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배달은 정식 업무 시작 시간인 오전 9시부터다. 하지만 집배원들은 보통 2시간 전부터 나와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한다. 분류 작업을 끝낸 김 집배원은 기자와 함께 차에 화물을 실었다. 우편물 규격에 따라 최대 30kg짜리 상자를 날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 집배원의 관할지역인 화성시 반월동·진안동엔 총 3만여 세대가 산다. 동탄2신도시엔 올해만 3만9000세대가 입주했는데, 이 중 일부도 김 집배원이 담당하고 있다. 그는 “세대수는 늘어났는데 집배원 증원이 없으니 쉴 틈이 없다”고 했다. 올해는 하루도 휴가를 못 썼다. 김 집배원은 “지리를 꿰고 있지 않으면 누가 대신해 주기 힘든 업무”라고 했다.
실제 김 집배원의 운전엔 거침이 없었다. 내비게이션은 켜지 않았다. 잘못 들어섰다 싶은 비포장도로를 건너면 어김없이 배송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운전하면서도 업무용 PDA로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대개 수신인에게 수령 가능 여부나 수령 방법을 확인하는 통화다.
이 과정에서 전화를 안 받으면 곤란해진다. 화물을 문 앞에 뒀는데 없어지면,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공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물 배송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항상 직접 전달할 필요는 없어서다. 문제는 꼭 직접 건네야 하는 등기우편이다. 일일이 사람을 만나야 하니 부담감이 크다. 김 집배원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한 집배원은 불친절하다는 민원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그만뒀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반월동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 도착했다. 먼저 와 있던 다른 집배원이 물었다. “그럼 우리 다음 달부터 쉬는 거예요?”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9시20분에 우정노조의 7월9일 총파업이 확정됐다. 집배원은 넋두리처럼 말을 이었다. “솔직히 토요일은 쉬게 해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화성동탄우체국 집배원은 2~3주마다 한 번씩 토요일 근무를 하고 있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갈증도 밀려왔다. 이날 최고기온은 32도. 소매 아래쪽 팔뚝이 어느새 햇빛에 그을어 있었다. 기자가 “일부러 힘들게 일할 필요는 없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김 집배원은 웃으며 “오늘은 그나마 일이 적은 편”이라며 “그래도 머뭇거리면 퇴근시간 전에 배달을 끝낼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김 집배원은 단 1분도 쉬지 않았다. 비흡연자라 ‘담배타임’도 없었다. 반월동을 다 돌고 오후 1시20분이 돼서야 배송지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일과의 절반을 마쳤지만 육안으론 일감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원인은 택배 방문접수였다. 이는 집배원이 고객 집에 들러 화물을 접수하는 서비스다. 물건을 배달하는 동시에 받아오니 차량엔 짐짝이 또 쌓여갔다.
김 집배원은 “방문접수 한 건당 수당으로 100원을 받는다”며 “실익도 없고 부담만 지우는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업무 과다로 방문접수를 시행하지 않는 우체국도 일부 있다. 화성동탄우체국의 경우 기업이 요청하는 방문접수만 받고 있다.
그에게 ‘과거로 돌아가도 집배원을 다시 할 건가’라고 물었다. 긍정적으로 답할 줄 알았다. 실외업무를 좋아하는 데다 집배원 집안 출신이라서다. 그의 아버지도 집배원이었다. 작은아버지와 외삼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의외였다. “먹여 살릴 식구가 없다면 조금 고민해 볼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오후 5시30분. 마지막 배송지인 동탄산업단지 내 제조업체로 향했다. 이곳의 지문기 차장(41)은 “오후 5시까지 배달해 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다 이내 “요즘 많이 힘드시죠”라며 위로의 말을 꺼냈다. 그는 “집배원들의 고생과 파업 소식을 잘 알고 있다”면서 “처우에 대해 제도 차원의 뒷받침이 안 된다면 일본처럼 우체국을 민영화해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녁 7시 넘어서도 업무 이어져
우체국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가 살짝 넘었다. 이날 나른 화물의 수는 방문접수 건을 포함해 약 75개. 들른 장소는 50군데가 넘었다. 김 집배원은 “차로 이동한 거리는 70km쯤 될 것”이라고 했다. 업무를 시작할 때 켰던 만보기 앱을 열었다. 대부분 차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8637보로 나왔다.
아직 업무는 끝이 아니다. 이젠 다음 날 보낼 우편물을 배송지별로 분류해야 한다. 신문이나 잡지 등 통상우편물은 기계가 분류하지 못해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한다. 양이 많으면 2시간까지 걸린다. 이날 배달된 통상우편물은 약 1만2000개다. 김 집배원은 오후 7시30분이 넘었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사측인 우정사업본부는 “우편 물량이 지속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노조 측의 집배원 증원 요구를 반대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박민호 우정노조지부장은 “편지 물량은 이메일의 보편화로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1인 가구 증가와 인터넷 쇼핑의 발달로 화물 물량은 오히려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화성동탄우체국엔 총 1만9299개의 화물이 접수됐다. 우체국을 나설 때 아침에 봤던 짐짝들이 눈에 또 들어왔다. 이날 미처 배달하지 못하고 다음 날로 미뤄둔 수백 개의 화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