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모 입원 안 돼 병원에서 노숙…신생아 보호자도 “응급실 뺑뺑이 끔찍”
“병원 밖 휠체어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다 돌아가는 사람들 보면 너무 안타깝다”
“아프면 곧바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응급실이 마비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서울에선 열사병만 걸려도 죽는다. 실제로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남성은 응급실 14곳으로부터 모두 거절당해 숨졌다.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는 더 나올 것이다. 의사는 없는데 코로나19는 재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의료 현장을 지켰던 간호사마저 파업을 말할 만큼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더구나 평상시 대비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2배 늘어나는 추석 연휴도 곧 다가온다. 이번 추석은 ‘최악의 명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시사저널은 응급의료의 3축인 의사·간호사·구급대원으로부터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들었다. ‘삼중고’를 겪을 명절을 앞두고 정부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도 살펴봤다. 이런 상황을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응급실 앞에 선 환자들의 호소도 들어봤다. 안타까운 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은 더 절망적이라는 점이다.
“비상 진료체계 원활하다”는 대통령의 말은 진짜일까
“의료 현장을 가봐라. 비상 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연 윤 대통령의 진단은 적확할까. 8월27일 찾은 서울아산병원에는 환자들이 입원할 병상이 없어 병원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 자정 무렵에 만난 골수암 환자인 이순자 할머니(가명·70)는 거제도에서 서울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어 장장 8시간에 걸쳐 병원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짐 한 보따리를 머리맡에 두고 오전 진료시간이 될 때까지 의자에서 선잠을 잔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오전 진료시간에 맞추려면 새벽 일찍 차를 타고 와야 하는데 차편이 없어요. 입원도 안 된다기에 여기서 밤을 새우는 거예요. 저 멀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냥 병원 로비에서 기거해요.”
소아 환자를 둔 보호자들의 걱정도 역력했다. 새벽 2시경 소아전문응급센터 앞에서 만난 김민환씨(가명·36)는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나고 숨을 몰아쉬었다”며 “혹여나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신생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토로했다. 승재현씨(가명·36)도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조금만 기침을 해도 폐렴으로 커질까 두렵다”며 “지금 같은 시기에 아프면 치료해줄 사람이 없으니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고 호소했다.
응급실은 환자를 수용할 여력이 없었다. 현장에 의사가 없다는 말이다. “24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혼자 근무했다. 아무리 힘을 짜내도 볼 수 있는 환자는 40명 정도다. 어제 하루에만 80명의 환자가 왔다. 1인당 엑스레이 5장만 찍어도 400장이다. 119에서 걸려온 전화만 100통이 넘었다. 물리적으로 환자를 더 볼 수 없다. 의사가 힘을 낸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다. 결국 이렇게 버티든지, 도망가든지 둘 중 하나다. 실제로 추석을 앞두고 의료진이 빠져나가고 있다.” 23년째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의 진단이다.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응급실에 전공의 집단사직이라는 악재가 터져서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2월말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가 모집’이라는 대책을 내놨는데,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다른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1만여 명의 전공의가 가운을 벗었는데 하반기 모집에 겨우 21명만 지원했다. 빅5로 좁히면 7명에 불과하다.
비상 진료체계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파행 직전이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정규 시간 외 안과 수술이 불가능하다. 세브란스병원은 성인·소아 외상환자 등을 못 받는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정형외과 응급 수술과 입원이 안 되고,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은 혈액내과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한다.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1시간짜리 교육을 받고 전공의들을 대신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간협)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60% 이상은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았다. 전공의 업무를 간호사가 간호사에게 가르치는 아이러니한 일도 일어난다. 간협도 “환자 안전이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환자 못 받아요”…‘응급실 뺑뺑이’ 내몰린 환자들
현장 구급대원들의 가장 큰 숙제는 응급실을 수소문하는 것이다.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이송하기 전 인근 병원에 전화를 걸어 수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데, 이 과정에서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러면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싣고 응급실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지금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9년 차 구급대원 김현주씨(가명)가 말했다. “병원에 일일이 전화해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 묻는다. 별개로 이 증상을 봐줄 의사가 있는지도 물어봐야 한다. 운 좋게 병원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안 그럴 때가 더 많다. 그러면 관외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다시 전화를 돌려야 한다. 해당 병원에서 ‘왜 여기까지 오느냐’ ‘우리 병원도 힘들다’며 거절하는 게 부지기수다. 소방관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전화할 수 있다. 문제는 환자들이 그 시간 동안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응급의학과 의사도 “수용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가 오면 이제는 ‘안 됩니다’부터 나간다”고 말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전국에 설치한 ‘응급의료상황실’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상황실에서 병원 이송과 전원을 지휘해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막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정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김 소방관은 “환자 상태는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가장 잘 안다. 어느 병원에서 어떤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연락하는 게 빠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황실을 거치면 다리를 두 번 건너는 것”이라며 “응급환자는 1분 1초가 급박하다”고 덧붙였다.
추석 땐 응급실 환자 2배 증가…교통사고 1.5배 늘어
119 재이송 건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2645건에 달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119구급대 재이송 건수 및 사유 현황’에 따르면, 이 중 40.9%(1081건)는 ‘전문의 부재’로 인해 발생했다.
병원 관계자가 말했다. “주말에는 구급차를 타고 와도 못 들어간다. 보호자가 환자를 들쳐업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정말 죽을 지경이 아니고선 안 받아준다. 병원 밖에서 휠체어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문제는 추석이다. 연휴에는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평상시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서다. 연휴 기간 이동량이 많아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증가하는 데다, 대다수 병·의원이 휴진하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됐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9∼12일)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 건이다. 하루 평균 약 2만3000건꼴이다. 날짜별로 보면, 명절 당일이 2만5000건으로 가장 많다. 이는 평상시 평일의 1.9배 수준이다. 소방청 기록을 봐도 응급실 혼잡이 예상된다. 그해 추석 연휴 119를 통한 상담은 하루 평균 6926건 이뤄졌다. 이는 하루 평균 상담 건수인 4980건과 견줘보면, 1.4배 수준이다.
물론 급증한 환자의 대부분이 경증이긴 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 응급의료센터에서 집계된 질환은 얕은 손상(1536건), 염좌(907건), 감기(817건), 두드러기(707건) 등의 순으로 많았다. 연휴 기간 이들 질환은 평상시의 200%에 가까운 비율로 급증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한 응급실 방문도 급증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연평균 발생량과 비교하면 추석 연휴에는 화상이 3배, 관통상이 2.4배, 교통사고가 1.5배까지 증가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유행과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장에서는 “이대로면 응급실이 셧다운될 것”이라는 경고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형민 회장은 “권역센터에서도 4~5명이 할 일을 전문의 혼자 감당하고 있는데, 하루에 환자가 200명 넘게 온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추석에는 평일 근무가 아니기에 당직 의사가 필요한데 휴진 중인 의사를 어떻게 불러들일 것인가”라며 “음주 등으로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환자가 늘어나는데 대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인 9월11∼25일을 ‘비상 응급 대응 주간’으로 정해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손보겠다고 했다. 대표적인 방안이 경증 환자의 본인 부담금을 인상하는 것이다. 정부는 경증과 비응급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금을 90%까지 인상하기로 했는데, 9월 중 시행되도록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동시에 응급실 의료진의 진찰료도 높이겠다고 했다. 비상 주간에 근무하는 전문의들의 진찰료를 기존 인상분인 150%에서 100%포인트 올려 250%까지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추석에 응급실 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간호법 등이 처리돼 전공의 빈자리를 메울 인력이 생겼고 특별 대책을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추석을 대비해)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강화했다”며 “간호법이 통과되면서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가능성도 줄었고, PA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뺑뺑이에 대해서는 “이런 현상이 나오는 이유가 의사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라며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의료 개혁의 한 과정으로 봐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의료진 사이에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증 환자들의 본인 부담률을 올리면 정말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줄어들 것이냐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경증 환자라 할지라도 편의를 위해 응급실에 오겠느냐. 야간에, 주말에 동네 병원이 휴진하니까 갈 곳이 없어서 오는 것이다. 환자 스스로 경증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어렵다. 병원 총수익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총액은 같은데, 그 돈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아닌 환자들의 주머니에서 뺏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의대 증원 정책 결코 뒤집을 수 없어”
가난한 환자들은 응급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환자단체의 지적도 뼈아프다. 김성주 암환자권익위 대표는 “환자들은 응급실에 가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커져 자포자기한 상태다. 우리의 생명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백날, 천날 정치권에 문제를 제기해도 요지부동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와 정부 간 선명한 입장 차는 도무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공의들은 사직한 이후부터 의대 증원 백지화 등 7대 요구안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의대 증원 계획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 유예 등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관계자는 “입시 현장의 큰 혼란이 우려되는 만큼 이제 와서 뒤집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 일각에서 복지부 장차관 교체 요구가 나온 데 대해선 “의료 개혁이라는 국정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복지부 장차관을 교체할 계획도 없다. 직역 단체의 심기를 거스르면 정부가 물러서야 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