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대통령’ 꿈꾸는 이기흥, 용산과 한판 전쟁도 불사하나
규정 바꿔 체육회장 3선 연임 시도에 尹, ‘유신 독재’ 사례 언급…李 “불법적 선거개입” 반발
젊은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투혼은 폭염에 지친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대한민국은 8월11일 폐막한 파리올림픽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으로 ‘스포츠 코리아’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금메달 13개로 종합 8위를 차지한 성과는 당초 대한체육회가 내놓은 ‘금5, 종합 15위’ 목표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었다. 국민은 기쁜 마음으로 우리 선수들의 금의환향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한민국 선수단의 8월13일 해단식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그에 앞선 5일,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중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 선수는 배드민턴협회를 맹비난하는 기자회견으로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배드민턴협회와 대한체육회에 대한 조사를 예고했다.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할 올림픽 뒤풀이는 그야말로 상처투성이가 됐다.
올림픽이 끝난 지 2주가 지난 지금, 문체부와 체육회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일촉즉발의 정면충돌 양상 조짐까지 보인다. 문체부에 칼을 쥐여준 정부는 체육계를 향한 여론의 비판이 고조되는 이참에 체육회의 방만한 운영과 무분별한 예산집행을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체육회는 이번 파리올림픽에 역대 최소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으면서도 예산은 예년 올림픽에 비해 2배 가까이 증액된 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체육회에 매년 지급하는 4200억원의 보조금에 대한 집행내역도 문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밝혀야 한다고 체육회를 압박하고 나섰다.
특히 이런 정부와 체육회의 갈등 이면에는 ‘용산’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정관을 개정해 3선 연임을 시도하는 이기흥 체육회장의 행보를 매우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최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이강래 선임행정관이 사퇴했는데, 이 전 선임행정관은 이 회장의 조카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최근 문체부의 조사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이 회장에 대해 “마치 체육계의 대통령이 되려는 듯 정부마저 쥐고 흔들려 한다”며 불쾌한 심경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쟁점1. 올림픽 선수단 최소 규모인데, 예산은 역대 최대
축구 등 구기 종목 부진으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최소 규모로 선수단을 꾸린 것과 달리 이번 파리올림픽 참가 예산은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시사저널이 문체부를 통해 확보한 ‘대회별 선수단 규모 및 참가 예산’에 따르면, 파리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단은 양궁·탁구·사격 등 22개 종목 선수 144명, 임원은 117명이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이전 올림픽과 비교해 선수단 규모는 급감했지만, 예산은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대한체육회가 이번 올림픽에서 사용한 총 예산(현지 훈련시설 및 운영비 제외)은 88억7500만원으로 드러났다. 직전 대회인 2020 도쿄올림픽 때의 46억5900만원과 비교했을 때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6 리우올림픽(53억600만원), 2012 런던올림픽(49억8600만원), 2008 베이징올림픽(33억9500만원)보다 월등히 많은 수준이다.
체육회는 이번 올림픽에 총 26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도쿄올림픽의 경우 선수단은 총 354명이었다. 리우올림픽은 333명이 참여했다. 런던올림픽은 374명, 베이징올림픽은 389명으로 각각 구성됐다.
이렇듯 선수단 규모가 줄어들었음에도 파리올림픽 예산이 급증한 이유는 역대 최대 규모로 설치된 ‘코리아하우스’가 원인으로 꼽힌다. 코리아하우스는 체육회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한 곳으로 활용해 왔다. 코리아하우스는 한국의 주요 경기를 시청하며, 참여를 원하는 누구나 함께 응원할 수 있는 장소로 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또 올림픽 선수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어 방문객들이 선수들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간직하거나 직접 응원의 마음을 글로 적을 수 있다는 게 체육회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코리아하우스가 에펠탑 등 프랑스 주요 관광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임대 비용이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히는 파리의 중심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건물 전체를 임대한 만큼 비용은 천정부지로 늘어났다. 세금을 허투루 썼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체 선수단 중 선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임원단 규모는 변동이 없어 이 또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체부는 체육회가 예산을 독자적으로 편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체육회 예산은 문체부를 통해 내려온다.
문체부는 체육회에 예산을 지원하는 만큼 보조금법에 따른 관리·감독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대한체육회는 연간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받고 있다. 전액 국민체육진흥기금이다. 거금의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만큼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체육회는 자율성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체육회 관계자는 “모든 예산은 문체부와 협의하고, 승인을 받아 사용한 금액이다. 단돈 5만원도 함부로 못 쓰는 실정”이라며 “올림픽 기간 동안 코리아하우스는 외국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6만8000명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80%가 외국인이었다. 한국을 크게 알렸으니 예산 사용은 적절했던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쟁점2. 4200억 보조금 받는 체육회, 관리·감독 문제로 문체부와 대립
대한체육회가 받는 정부 보조금도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2024년 문체부의 체육 관련 예산은 1조6163억원이다. 이 중 체육회가 받은 예산은 약 4200억원이다. 전체 체육 예산에서 4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체육회의 예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3717억7300만원, 2023년 4039억5800만원, 2024년 4119억200만원이다.
체육회는 연간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문체부로부터 받아 집행한다. 정부 예산을 사용하면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체육회는 스포츠 육성을 위한 기구로 활동하면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체부가 종목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체육회에 예산을 직접 교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대한체육회와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7월2일 열린 체육 분야 간담회에 참석한 유인촌 장관은 “대한체육회가 4200억원이라는 정부 예산을 받음에도 관리·감독 부재로 인해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뜨렸다”며 “체육계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논의 중 하나로 문체부가 지방체육회와 종목단체에 예산을 직접 교부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체육회는 즉각 반발했다. 이기흥 체육회장은 “체육회가 수천억원의 예산을 함부로 쓴다는 듯 말한 유 장관의 말은 사실과 많이 잘못된 부분”이라며 “체육회 예산은 모두 문체부의 승인을 받은 뒤 사용하고 있다. 또 문체부 감사,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까지 받는 상황에서 체육회가 뭘 어떻게 독자적으로 예산을 사용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맞받아쳤다.
전문가들은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 철저한 시스템 도입 및 관리·감독과 통합에 따른 일원화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재근 서울과학기술대 스포츠과학과 명예교수는 “국고를 사용하면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대한체육회 예산이 무려 4000억원이 넘는 만큼 사용처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 건 체육회를 옥죄는 것이 아닌, 양 기관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 교수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서 위원을 각각 선발해 체육전문위원회를 만들 것을 추천한다. 화합을 도모하면서 감시 체계도 강화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스포츠는 화합이다. 화합 없는 스포츠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쟁점3. 유인촌- 이기흥 갈등은 ‘용산’과 이기흥 대리전?
문체부와 체육회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실제 문체부의 뒤에는 ‘용산’(대통령실)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최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이강래 선임행정관이 사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선임행정관은 이기흥 체육회장의 조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을 도왔고, 조카를 시민사회수석실 종교담당 선임행정관으로 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임행정관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을 두고 정부와 체육회 간 갈등의 연장선상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 선임행정관의 사퇴와 이 회장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선임행정관은 지난 4월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사퇴 의사를 피력했고, 비록 실제 출마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왕에 사퇴 의사를 피력한 터여서 자연스레 그만두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통령실 안팎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에 따르면, 삼촌인 이 회장과 함께 불교계 접촉 등 외부활동을 함께 다닌 이 선임행정관의 행보를 바라보는 내부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에 대한 불편한 기류와 연관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강래 전 선임행정관은 시사저널에 “이 회장과 외부행사를 함께 한 게 아니라 종교가 같다 보니 불교계 행사에 참석해서 그곳에서 만난 적은 있겠지만, 행보를 함께 한 건 전혀 아니다”라고 밝히며, “본인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의전비서관실에서 근무를 했었고 윤석열 정부 때도 같은 의전 관련 업무로 일을 보다가 자리를 옮겼을 뿐, 이 회장이 밀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용산에서 특히 이기흥 회장을 못마땅해한 것은 체육회 정관 개정을 통해 회장 3선 연임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한다. 앞서 체육회는 7월4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2024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체육 단체장의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한 정관 개정안을 승인한 바 있다.
현 체육회 정관에 따르면, 임원(회장)의 연임은 1회 가능하다. 3선 이상 회장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공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스포츠 공정위원회 심의 과정을 없애자는 것이 체육회 정관 개정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유인촌 장관은 “정관 개정안을 승인하지 않겠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소식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윤 대통령은 이 회장의 3선 연임 시도에 대해 과거 유신 독재 사례를 들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표시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이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체육계 수장에 올라 문재인 정부 때(2020년) 연임에 성공했고, 현 정부에서 3선에 나서려 하고 있다. 체육계 주변에서는 그에 대해 여야를 넘나드는 마당발 인맥을 과시하는 등 처세에 뛰어나고, 특히 불교계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권의 또 다른 인사는 “이 회장이 마치 체육계의 대통령이 되려는 듯 이제는 정부까지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동향이 파악됐다”며 “용산에선 이 회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기흥 회장은 8월21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체육회장 연임을 두고 문체부와 정부 관계자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반헌법적인 이야기다. 결격 사유가 없으면 누구든지 출마할 수 있는 것이 선거”라며 “그런 의미에서 문체부 및 정부에서 연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불법적인 선거개입이고, 직권남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세력들이 떠오른다. 체육·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정부가 주도해 만들지 않았나. 반헌법적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