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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3남 김홍걸 전 의원, 커피 프랜차이즈 업자에 사저 매각
김 전 의원 “상속세 감당 못 해”…동교동계 “황망하고 참담”
역대 대통령·주요 정치인 사저에도 영광만큼 짙은 그림자

‘100주년’ 그리고 ‘100억원’.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된 2024년 8월, ‘DJ’라는 시대적 상징 앞에 숙연함과 장탄식이 교차한다. 김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DJ 정신’을 되새기려던 움직임은 서울 동교동 사저 매각이라는 충격적 변수 앞에 출렁였다. 역대 대통령 및 주요 정치인 사저를 중심으로 전개된 ‘잔혹사’ 그림자가 동교동에도 드리우면서 파장이 쉽사리 걷히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 뒤로 김대중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 뒤로 김대중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사저 내부 모습 ⓒ시사저널 이종현
사저 내부 모습 ⓒ시사저널 이종현

17억 상속세에 발목? 동교동계 ‘울분’

“황망하고 부끄럽다.” “고개를 들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혹은 ‘후예’들은 한목소리로 동교동 사저 매각에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국의 민주화와 정치사가 응축된 동교동 사저가 제3자에게 넘어가버린 현실 앞에 노정객(老政客)들은 한목소리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쓰디쓴 평가를 내놨다.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정치 여정의 충실한 기록서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 이희호 여사와 이곳에 입주한 김 전 대통령은 무려 55차례 가택연금을 당했고, 납치·사형 선고 등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바로 이곳에서 겪어냈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부터 ‘상도동계’(김영삼), ‘동교동계’(김대중), ‘청구동계’(김종필)라는 ‘3金 시대’의 토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새기고 3전4기 끝에 이뤄낸 대통령 당선의 발판을 마련했고,  퇴임 후 2009년 8월18일 타계할 때까지 동교동 사저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호흡한 동지였다.

8월21일 찾은 동교동 사저는 굳게 닫힌 채 ‘金大中(김대중)’ ‘李姬鎬(이희호)’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러나 현재 DJ 사저의 법적 소유주는 50대 박아무개씨 등 민간인 3명이다. 대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등을 운영하는 박씨가 사저 건물 및 토지 지분 20%를, 박씨의 아내 정아무개씨가 60%, 정씨 가족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정아무개씨가 20% 지분을 갖고 있다. 매매대금은 100억원. 은행의 채권최고액이 96억원인 점에 비춰보면 박씨 측은 80억원가량을 대출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 전 의원은 올해 7월2일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7월24일 박씨 측에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했다. 사저(私邸)였지만, 동시에 ‘사저(史邸)’였던 동교동 178-1번지는 이렇게 김 전 대통령 서거 15년 만에 굴곡진 운명을 마주해야했다.

김홍걸 전 의원 ⓒ시사저널 최준필
김홍걸 전 의원 ⓒ시사저널 최준필

다른 선택지 없다는 김홍걸…재단은 “각서 쓰고도 일방 파기”

김 전 의원은 17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미납분을 감당하지 못해 사저를 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서울 반포의 아파트와 상가 등 김 전 의원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이 있지만, 이미 많은 대출을 받아 부채가 상당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6억원 기부’ 등 정치권 인사들이 ‘뒷북’ 수습에 나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문화재 지정과 서울시 매각 등도 추진했지만, 마지막 개·보수 시점(2002년)으로부터 50년이 지나지 않았고, 상속세 미납으로 인한 근저당까지 설정돼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대중기념사업회(김대중 재단) 핵심 관계자는 그러나 “김 전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재단에서는 재작년부터 김 전 의원 사저 매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대안을 제시해 왔다고 한다. 2022년 11월경, 22억원에 사저 소유권을 넘기면 상속세를 포함한 모든 재정적 부담을 재단이 지겠다는 점과 기념관 건립에 관한 세부조항도 함께 논의한 뒤 김 전 의원과 각서까지 작성했다는 게 재단 측 입장이다.

이 각서를 작성하게 된 경위도 결국은 김 전 의원의 ‘변심’ 때문이었다. 이 여사는 2017년 2월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당시 장남 김홍일 전 의원(2019년 사망)의 부인과 차남 김홍업 김대중재단 부이사장, 김 전 의원 모두 이에 동의했고 문건에 서명 날인도 마쳤다. 이 여사는 유언장에 ‘노벨상 상금 8억원(전체 11억원 중 3억원은 선기부)은 전액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고, 자택은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하며 만약 지자체 및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한다면 보상금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고 3분의 2는 홍일·홍업·홍걸에게 균등 상속토록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2년 후인 2019년 이 여사가 사망하자 김 전 의원은 입장을 바꿨다. 공증 절차 누락으로 유언장의 법적 효력이 없고, 이 여사의 유일한 친자는 자신뿐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약속을 파기했다. 부친 사망 시 전처의 출생자(홍일·홍업)와 계모(이 여사) 사이의 친족 관계는 소멸된다는 민법 규정을 파고든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동교동 사저를 자신 명의로 바꿨고, 노벨상 상금 등 현금 8억원도 모두 인출했다. 차남인 김 부이사장이 뒤늦게 소송을 내면서 형제간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재단이 중재에 나선 끝에 2020년 6월 김 전 의원도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로 하면서 김 부이사장은 소송을 취하했다. 이때 작성된 것이 바로 그 ‘각서’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또다시 입장을 바꿨다. 그는 재단 관계자에게 “큰손이 나타났다”는 말을 남긴 후 연락도 없고, 사저 매각 관련 진행 상황도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배기선 재단 사무총장 등 관계자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두 달 전에 김 전 의원을 만나 “동교동 사저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이 서린 곳”이라며 울분을 토했지만 김 전 의원의 결정을 막진 못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사저 2층의 서재·침실은 원형을 보존하되 나머지 공간 활용은 박씨 판단에 따른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매각 사실이 알려졌을 때 김 전 의원은 언론에 “DJ 기념관을 만들진 못했지만, 매입자가 사저 일부를 보존해 고인의 유품을 전시해 주기로 약속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공간 일부’만 보존할 예정이라던 김 전 의원은 매각 역풍이 거세지자 상업적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 없으며, 오는 10~11월께 사저 전체를 민간 기념관 형태로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거액을 들여 건물을 매입한 민간업자가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떠안으며 기념관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놓고는 우려의 시선이 팽배하다.

사저 매각은 DJ 적통 논란으로도 번졌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그토록 추구했던 평화·화합·연대가 사저 문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셈이다. 이낙연 상임고문 등 DJ계 인사들이 포진한 새로운미래는 민주당과 이재명 당대표를 겨냥하며 책임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가 공과를 떠나 공공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전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승만 전 대통령 가옥 ‘이화장’은 사적 제497호로, 서울 신당동의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과 서교동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은 각각 국가등록문화재 제412호와 제413호로 돼 있어 서울시 등이 예산을 배정해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재단에서는 사저 개·보수로 인해 문화재 등록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권과 지자체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박씨가 사저를 다시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재단 측은 여러 차례 물밑 접촉을 시도했지만 박씨가 끝내 만남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시사저널은 박씨에게 사저를 다시 매각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박씨는 카페로 운영할 계획은 없다며 민간 기념관과 관련한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상의한 후 정리해서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박씨가 언급한 ‘상의’ 주체는 김 전 의원 및 공동 매입자들로 추정된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청구동 사저 ⓒ시사저널 이종현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청구동 사저 ⓒ시사저널 이종현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청구동 사저는 원룸으 로 재건축돼 현재는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사저널 임준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청구동 사저는 원룸으 로 재건축돼 현재는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사저널 임준선

4명의 대통령 사저·농장 사들인 홍성열 회장

‘3김’의 정치적 유산을 품고 있는 사저의 명맥은 끊길 위기에 놓여 있다. ‘정치 1번지’로 꼽히는 김종필(JP) 전 총리의 청구동 사저는 현재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JP의 자제들도 사저 유지·관리 비용을 놓고 고민하다 2019년 4월 뒤늦게 매각 사실을 공개했다. 1965년부터 2018년까지 53년 동안 JP의 숨결이 녹아든 청구동 사저는 이후 철거됐고, 그 자리에 현재는 원룸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92년 3월 총선에서 과반 획득에 실패해 위기에 내몰리자 청구동 문을 두드렸던 YS(김영삼 전 대통령),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0월 예고 없이 청구동 자택을 찾아와 지지를 호소했던 DJ, 그리고 이들과 한국 정치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JP의 ‘그때 그 결단’을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 속절없이 사라진 셈이다.

YS가 살던 서울 상도동 자택은 2011년 김영삼민주센터에 헌납됐다. YS는 2015년 서거 때까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지만, 센터의 부채가 불어나면서 결국 압류 조치되는 곡절을 겪었다. 장남 은철씨는 ‘외부로 소유권을 넘겨선 안 된다’며 2017년 2월 그의 아들이자 YS 손자인 성민씨 명의로 은행 대출 7억원을 받아 11억원에 사저를 재매입했다. 부친의 상징을 지키려 애썼던 은철씨는 8월7일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탄핵 정국에서 27년간 소유했던 서울 삼성동 사저를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에게 67억5000만원에 매각했다. 이후 내곡동 사저로 옮겼지만 검찰의 범죄수익 환수 대상이 돼 공매로 넘어갔다.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를 매입한 홍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 일부도 사들였다. 이 전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 소유권 절반은 부인 김윤옥 여사가, 나머지 절반은 홍 회장이 갖고 있다. 검찰은 뇌물 혐의 등으로 이 전 대통령이 2020년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등을 확정받자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위임했고, 홍 회장이 소유권 절반을 취득했다.

홍 회장의 전직 대통령 사저 매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살던 양산의 매곡동 사저 역시 2022년 17억여원에 홍 회장 소유가 됐다. 2015년 유찰을 거듭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 소유의 경기도 연천 허브농장을 인수한 것까지 포함하면 4명의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부동산과 토지를 홍 회장이 갖게 된 셈이다.

홍 회장은 시사저널에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잇달아 매입한 데 대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대통령 사저가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인적 관심과 사명감으로 하나씩 구입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축업자에게 팔려 원룸 건물이 올라간 JP 사저를 매입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며 한국 정치의 이정표가 하나둘 사라지는 데 대해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동교동계 인사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김 전 의원이 선친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생전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길 바란다”며 “DJ와 이희호 여사의 업적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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