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단계 우리 사회의 주소를 점검할 때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보다 ‘전진하는 느낌’ 여부를 더 중시하는 편이다. 대체로 제6공화국이 출범한 노태우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대체로 전진하는 느낌을 갖고 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가 그런 대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선진국으로 가겠구나라는 기대였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데서 보여주듯 경제정책 면에서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뭔가 회귀하는 느낌이 강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다.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경제나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아버지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필자는 그래서 그 시기를 ‘복고풍’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복고는 숨고르기라는 차원에서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역사도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앞으로 전진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기반한 국가는 잠깐 쉴 수는 있어도 한참 쉬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2000년부터 2020년 사이에 세계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사회로 진입했다는 사실이었다. 현대사회가 기반한 기술 자체가 너무나도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의 20년은 그 흐름에 올라타기보다는 과거 역사를 둘러싼 탁상공론, 남 탓하기 정쟁으로 얼룩졌다.
문재인 정권은 5년 내내 과거사 청산과 정치보복만 하며 소중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박근혜 정권이 1970년대 노스탤지어를 만들어냈다면 문재인 정권은 1980년대 노스탤지어를 만들어냈다. 전두환 정권과 투쟁할 때의 운동권 문화가 온 사회를 뒤덮었다. 그때 제대로 외치지 못했던 구호들이 40년이 지난 시점에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죽창가, 반일투쟁 구호가 대표적이다. 2020년대 대한민국을 1980년대 틀로 대중을 선동하고 정적을 압박했다.
시대착오적인 정치행태에 불안과 염증을 느낀 중간층 국민들은 여야 모두를 거부했다. 국민의힘이 아니라 외곽에서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낸 것도 실은 윤석열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뭔가 전진하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지난 2년은 전진의 잣대에서 짚어보면 철저하게 실패했다. 용산 참모들 수준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윤 대통령은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회 개원식에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참석하지 않은 옹졸함이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개원식 불참은 야당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무시한 것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인사에서 전진하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새로운 인물들을 발굴하지 못하고 전직 아니면 측근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눈에 띄게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보수우파에서조차 고개를 갸웃할 강성 인물을 대거 기용하고 있다.
부인 문제를 처리하는 모습 또한 전근대적이다. 1970~80년대 수준이 아니라 조선시대를 떠올려야 할 정도다. 이게 빌미가 되어 훨씬 심각한 야당 대표 부인 문제도 희석되어 버렸고 파렴치범 조국 전 교수가 어느새 또 하나의 야당 대표가 되었다. 이런 일은 적어도 1970~80년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전진하는 느낌을 회복하는 날은 과연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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