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까지 사로잡은 샤머니즘…‘맹신’ 경계해야
최근 샤머니즘 소재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대중문화 속 샤머니즘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 올해 특히 샤머니즘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파묘》의 천만 관객 흥행이었다. 올해 7월 기준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소풍》 《파묘》 《범죄도시4》 《핸섬가이즈》 《탈주》 이렇게 5편인데, 그중에서 《파묘》와 《핸섬가이즈》 두 편이 샤머니즘과 연관된 이른바 ‘오컬트’ 영화다.
그 후 SBS 연애 예능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의 성공으로 K콘텐츠 샤머니즘 열풍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연애 예능이 인기를 끌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는데 그 속에서 샤머니즘 코드와의 접목도 시도된 것이다.
대체로 이런 연애 프로그램엔 누구나 선망할 법한 선남선녀가 등장한다. 《신들린 연애》에선 무당, 퇴마사, 점술가 등이 그 역할을 맡았다. 프로그램 초기에 출연자들이 1차 호감 상대를 고를 때부터 사주, 신점 등이 활용됐다. 출연자들이 “신령님이 점지해준 사람을 만나겠다” “신령님이 보시기에 그게 편하다고 생각하셨으니까 저한테 그렇게 알려주셨을 것” 이런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 나왔고, 데이트 상대방에게 자신이 모시는 귀신에게 드릴 과일을 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신들린 연애》는 2회 만에 20~49세 시청률 동시간대 1위(1.2%, 수도권 가구 기준)에 올랐고, 인터넷 화제성과 유튜브 조회 수도 높았다. 관련 이벤트인 ‘나의 60갑자 운명패 뽑기’에 14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등 뜨거운 열기가 나타났다. 요즘처럼 신작을 성공시키기 힘든 분위기에 이 프로그램이 뜨자 바로 2탄 제작이 확정됐다.
티빙의 다큐멘터리 《사먼: 귀신전》도 화제를 모았다. 귀신과 연관된 일반인 사례자와 무속인의 의식 과정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였다. 6명의 무속인이 ‘신의 제자’라며 등장했는데, 역대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중 유료 가입자 수 1위에 올랐다.
JTBC 《크레이지 슈퍼 코리안》도 올 상반기에 ‘한국인이 푹 빠진 샤머니즘’편을 내보냈다. 스튜디오에 ‘사주 상담소’를 열어 연예인들을 상담해 주고, 풍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한동안 풍수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올해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샤머니즘 코드가 주목받아왔다. 2022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의 대통령상과 부천만화대상 등을 수상한 무속 소재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현재 영상 콘텐츠로 제작되고 있고, SBS 《악귀》와 tvN 《방법》 등 귀신물도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도 많은 드라마에서 샤머니즘 코드가 등장한다. 토크쇼 등에서는 요즘 무속인이 됐다는 연예인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코미디언 김주연과 배우 정호근, 이건주 등이 그 주인공인데 물론 정말 이른바 ‘신’을 받았는지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이건주의 경우는 지난해 신병을 심하게 앓다가 무속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후 거짓말처럼 나았다고 했다.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이런 이야기들이 수시로 전파를 탄다.
이런 샤머니즘 현상에 외신도 주목했다. 올 6월 로이터통신은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첨단 기술을 갖춘 경제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 샤머니즘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유튜브에서 한국어로 ‘무당’과 ‘점술’을 검색한 횟수가 지난 5년간 두 배가량 늘어났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문화부 소속 한 기관은 2022년 기준 한국에 30만~40만 명의 샤머니즘 관련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신비주의 코드의 범람…도 넘으면 문제
샤머니즘은 원래부터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다. 요즘 샤머니즘 현상의 특이점은 젊은 층이 호응한다는 점이다. 샤머니즘은 중년 이상 연령대에 익숙한 전통문화로 젊은 세대는 ‘무당’이라는 존재에 거리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파묘》 같은 영화에서 젊은 배우들이 신세대 무당으로 등장하고, 심지어 연애 프로그램에서 선망할 만한 매력남, 매력녀로까지 나오자 그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젊고 멋진 사람들이 특이한 무속적 언행을 하는 건 ‘힙’한 개성 또는 매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연애 과정에서 신점 등의 도움을 받는 것도 흥미를 유발했다.
지금이 불황과 불안의 시대라는 점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또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고객 중 상당수가 높은 집값과 자녀 양육비에 대한 걱정으로 찾아온다”는 무속인 인터뷰를 소개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사람은 무언가 믿을 만한 것 또는 위안을 찾게 마련이다.
그런데 기성 대형 종교는 왠지 무겁고 부담스러운 느낌이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경배해야 하고, 평생 예배와 같은 행사에도 참여해야 한다. 반면 샤머니즘은 손쉽게 길흉화복을 알려주며 복을 빌어준다. 비용만 지불하면 딱 내가 원하는 부분에 대한 조언을 패스트푸드처럼 바로 제공한다. 요즘 청년들이 사회적 활동과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낄 때 샤머니즘이 간편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잔혹한 범죄에 대한 공포도 샤머니즘으로 연결됐다. 이해할 수 없는 범죄 행각이 악귀의 소행으로 표현되고 그걸 무속적 방법으로 퇴치한다는 설정이다. 장르물의 샤머니즘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전통문화를 담은 판타지물의 성격도 있다.
한국 문화에서 샤머니즘의 뿌리는 매우 깊다. 유교와 불교가 주류를 이룬 전통사회에서도 샤머니즘은 번성했고 기독교가 들어온 현대도 마찬가지다. 하이브-민희진 분쟁 때 K팝의 핵심부에서 무속인 경영 코치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성세대가 많이 보는 유형의 드라마에서 샤머니즘 코드가 활성화했는데 이젠 젊은 층까지 포괄하는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샤머니즘은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우리 콘텐츠 속에서 표현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도가 문제다. 이런 신비주의적인 코드들이 범람하면 사회의 합리성이 저해되면서 잘못된 믿음이 조장될 수 있다. 기성 대형 종교는 종교전쟁 등 역사적 고투를 거치면서 사회적 가치와 어느 정도 조율이 이루어졌고 표준화도 됐다. 반면 샤머니즘은 그렇지 않고 대형 종단도 없다. 각 개인이 저마다 신을 모신다며 각자 알아서 활동하는 구조다. 결국 그 안에 매우 넓은 스펙트럼이 형성되면서 어느 한 개인이 일탈할 수도 있다. 언론 사회면에 종종 등장하는 무속 관련 사건들이다. 대중문화 콘텐츠로 인한 맹신이 그런 사건의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작진은 이런 믿음 관련 소재를 다룰 땐 좀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