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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양민혁 발굴 등으로 센세이션…시·도민 구단 우승 신화에 성큼
‘이름값 기대 비싼 이적료 지불’했던 구단들 패턴 바꿔…유망주 발굴 노력

프로 스포츠는 자본주의의 총아다. 많은 돈을 들인 만큼 좋은 선수가 모이고, 승리와 우승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제아무리 효율적인 구단 운영과 경영을 해도 평균의 2~3배가 넘는 자금을 쓰는 팀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선수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팀 스포츠에는 변수가 많다. 그 변수가 물고 물리면서 연쇄 작용을 하면 예상하지 못한 ‘언더독’의 기적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축구 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015~16 시즌 벌어진 레스터시티의 동화 같은 우승이 대표적이다. 지겨울 정도로 준우승만 했던 바이어 레버쿠젠은 2023~24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2023년 구단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텍사스 레인저스도 대표적인 언더독의 반란으로 꼽힌다.

강원FC가 8월18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광주FC와의 홈경기에서 3대2로 승리한 뒤 홈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강원FC 제공
강원FC가 8월18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광주FC와의 홈경기에서 3대2로 승리한 뒤 홈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강원FC 제공

‘쩐의 전쟁’ 프로 세계 판도 뒤집고 우승 도전

한국 프로축구 K리그는 이런 이변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전북 현대가 7회 우승을 차지했고, 울산 HD가 2회, FC서울이 1회 정상에 섰다. 전북·울산·서울은 K리그 1부 리그(K리그1)에서 대기업의 지원 속에 팀 연봉과 예산에서 1·2·3위를 기록 중인 팀이다. 

이런 ‘쩐의 전쟁’에서 시·도민 구단은 명함을 내밀기가 더 어렵다.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같은 기회를 잡으면 예산이 일시적으로 늘지만 지속성이 약하다. 연봉까진 감당할 수 있어도 거액의 이적료를 지급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 시·도민 구단은 팀 내 우수 선수를 비싸게 팔고, 그 자리에 이적료가 적거나 FA인 선수를 데려오는 게 일반적이다. 전술과 용인술이 뛰어난 감독이 격차를 어느 정도 메운다고 해도 국가대표급 선수가 계속 쌓이는 대기업 구단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데는 힘에 부친다.

이 구도를 흔드는 팀이 2024 시즌 등장했다. 강원FC다. 2009년 K리그에 참전한 강원은 역대 최고 성적이 K리그1 6위다. 2013년에는 2부 리그로 강등돼 3년간 K리그2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10위로 간신히 1부 리그에 잔류했다. 올 시즌 개막 전에 강원의 우승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8라운드를 마친 8월29일 현재 강원은 15승5무8패, 승점 50점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올 시즌 세 차례 1위에 올랐지만 현재는 3주째 그 자리를 수성 중이다. 남은 10경기에서 지금 순위를 지키면 K리그1 최초로 우승에 성공한 시·도민 구단이 된다. 강원의 가장 큰 무기는 공격력이다. 51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1.82골을 넣었다. 국가대표급 선수 하나 없이 시즌을 시작했지만 현재 K리그1에서 유일하게 50골이 넘는 팀 득점을 올렸다.

강원의 시즌 준비는 요란스럽지 않았다. 이상헌·김강국·김이석·박청효처럼 K리그2에서 뛰는 선수들을 주로 영입했다. 1부 리그 소속인 이기혁·이유현·정한민은 막바지에 보강했지만 모두 이전 소속팀에서 주전이 아니었다. 이들을 영입하는 데 들인 총 이적료는 6억원. 전북, 울산, 서울, 대전 하나시티즌 같은 대표적인 기업 구단이 주전 선수 1명을 보강하는 데 들인 이적료보다 적었다. 자연스럽게 특별한 전력 상승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윤정환 감독은 이 선수들로 탄탄한 팀을 만들었다. 비싼 이적료를 주고 국가대표급 선수를 데려올 수 없는 형편의 강원은 저평가된 선수나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를 내부에서 키워 국가대표로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 축구 레전드인 김병지 대표이사, 그리고 윤정환 감독의 안목이 중요한 열쇠였다. 지난 시즌 2부 리그에서도 부진했던 이상헌은 윤 감독으로부터 전술적 역할을 확실히 부여받았다. 유망주 시절 뛰어난 테크닉과 골 감각으로 유명했던 이상헌은 그런 신뢰에 득점으로 답했고, 현재 10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공동 3위에 올라있다.

황문기는 포지션 변경을 통해 축구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윤 감독과 국가대표 윙백 출신인 최효진 코치의 조언을 받아 중앙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변신했는데 그 선택이 적중했다. 뛰어난 공격 가담 능력으로 올해 최고의 풀백으로 올라섰다. 결국 홍명보 감독의 첫 대표팀 소집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고교 졸업 후 5년간 포르투갈 무대로 나갔다 조용히 국내로 돌아온 황문기는 2024년 최고의 발견으로 꼽힌다.

이런 강원의 혁신적 운영 전략의 결정체는 2006년생 공격수 양민혁이다. 강원 구단 산하 유스인 제일고에서 활약한 양민혁은 지난해 말 준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준프로 계약은 만 18세가 되기 전에 구단과 체결하는 임시 계약 형태다. 지난해 17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한 양민혁의 잠재력을 주목한 김병지 대표이사의 결정이었다. 김 대표이사는 자신의 직권으로 양민혁을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진행된 동계훈련에 합류시켰다. 거기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윤정환 감독의 신임을 얻은 양민혁은 개막전에서 어시스트, 2라운드에서 골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양민혁의 등장은 K리그1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MVP급 퍼포먼스를 고교 3년생에 불과한 어린 선수가 펼치는 중이다. 매 경기 거듭되는 활약은 유럽 클럽들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지난 7월말에는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와 사전 계약을 체결했다. 양민혁은 올해까지는 강원 소속으로 K리그에서 뛰고 내년부터는 토트넘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를 누비게 된다. 자연스럽게 양민혁도 홍명보호에 승선했다.

7월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토트넘과 팀K리그의 경기에서 양민혁(가운데)이 드리블하고 있다. ⓒ강원FC 제공
7월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토트넘과 팀K리그의 경기에서 양민혁(가운데)이 드리블하고 있다. ⓒ강원FC 제공

토트넘 이적하는 양민혁, 강원에 70억 안겨

새로운 선수들의 등장과 활약만이 강원의 성공을 만든 게 아니다. 여러 중요한 선택에서 강원의 판단이 적중했다. 동계훈련을 유일하게 유럽에서 진행한 강원은 안탈리아에서 무수한 실전 경기를 펼쳤다. 보통 다른 팀들이 동계훈련 기간에 6~7차례 연습경기를 치르고 시즌에 돌입하는 데 반해 강원은 러시아, 동유럽 강팀들이 전지훈련을 오는 안탈리아에서 수준 높은 팀들과 12차례 연습경기를 가졌다. 강한 상대와의 잦은 실전 중심의 훈련은 선수들의 자신감을 높였고, 조직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병지 대표이사는 “전훈 첫 경기 상대가 러시아의 강호 디나모 모스크바였다. 양민혁이 그 경기에 선발 출전해 6분 만에 저돌적인 돌파로 골을 뽑았다. 거기서 올해 강원의 운명은 모두 바뀌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평가된 선수들을 찾는 안목, 그들을 실전 위주로 단련시킨 동계훈련 콘셉트, 그 안에서 내용을 채운 윤정환 감독과 정경호 수석코치 등 코칭 스태프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며 올 시즌 돌풍의 힘이 갖춰진 것이다.

강원의 돌풍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선수의 네임밸류에 지나치게 기댄 가치 평가와 이적료에 대해 구단들의 의구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보다는 숨은 진주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됐다. 17~18세 어린 선수를 활용하려는 시도도 더 적극적인 분위기다. 강원은 양민혁을 토트넘에 보내는 대가로 70억원이 넘는 이적료를 챙겼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양민혁과 경쟁했던 선수들을 본격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이뤄졌다. 윤도영(대전), 강주혁(서울), 박승수(수원 삼성) 등 다른 구단도 유스에서 올라온 준프로 계약 선수를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있다.

강원이 우승을 향한 놀라운 도전을 이어가자 팬들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구단 티켓, 머천다이징 상품 판매 등으로 이미 지난해 매출의 1.5배를 달성했다. 김병지 대표이사는 선수단뿐만 아니라 프런트 경쟁력도 계속 올라가야 한다며 최근 직원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 J리그 구단들을 견학했다. 양민혁을 보내며 토트넘과 구단 직원 연수 제공도 별도 옵션으로 넣어, 해외 구단의 경쟁력을 배울 기회도 마련했다. 김 대표이사는 “반짝 성공으로 끝나고 싶지 않다. 올해 우승을 하든 못 하든, 내년과 그 이후에도 계속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서는 팀이 되는 것이 진짜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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