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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비 횡령’ ‘클라라 협박’ 의혹에 처음으로 입 연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진심으로 사과하지만 의혹은 사실 아냐...무죄추정 원칙 유효하다면 근거 살펴 달라”

“사실 여부를 떠나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1세대 무기중개상’으로 불리는 이 회장은 2021년 12월 자신이 이사장을 지낸 일광학원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년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서 2018년에는 교비 횡령과 뇌물공여·조세포탈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10개월과 벌금 14억원이 확정됐다. 그 밖에 2014년 방송인 클라라(본명 이성민·39)와의 법적 다툼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클라라 회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과로 시작된 5시간의 인터뷰

시사저널은 이규태 회장을 7월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2018년 11월 출소 후 언론과 공식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신앙생활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본이 되지 못했음을 깊이 통찰한다”고 밝혔다. 기자에게 A4 한 장 분량의 사과문도 내밀었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학교 직원들의 농간으로 또 사학 비리 의혹에 휘말렸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학교를 믿고 따르는 구성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억울한 부분을 소명하고 싶습니다. 피의자 신분이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 유효하다면, 근거를 갖춘 주장은 언론도 다뤄야 할 책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렵사리 언론 앞에 나선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 중 핵심은 업무상 횡령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일광학원 산하 우촌초등학교의 교비 이월금 50억원 중 수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23억여원 규모의 ‘스마트스쿨 환경 구축사업’을 강행했고, 이에 반대한 교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한 혐의(강요)도 받고 있다. 해당 내용은 2019년부터 MBC, SBS를 비롯해 여러 매체가 보도했고 올 5월 KBS 《추적 60분》을 통해 또 한 번 공론화됐다. 결국 스마트스쿨 사업은 서울시교육청의 중단 명령으로 무산됐다. 

이 회장은 500장이 넘는 서류 더미를 책상에 늘어놓았다. 언론에서 나온 근거를 반박하는 동시에 본인의 결백을 입증해줄 증거라고 주장하는 자료였다.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그간 언론이 수차례 반론을 요청했는데도 응하지 않다가 갑자기 인터뷰에 나선 이유가 뭔가.

“방산 비리와 클라라 사건으로 이미 악인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언론의) 반론 요청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취재가 끝난 상황에서 요식행위란 걸 너무 잘 알기에, 응대하면 보도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소재로 이용당할 것 같았다. 또 일광학원 관계자와 변호사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도 있지만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 앞서 언론을 통해 2015~18년 수감 기간 동안 이사장 자격이 아님에도 스마트스쿨 사업을 비롯해 ‘옥중 경영’을 했다는 음성이 공개됐다. 실제 학교 운영에 관여하거나 특정 사안을 강요한 적 있나.

“그런 적 없다. 다만 내가 학교 설립자이고 전 이사장인만큼, 중요 사안에 대해 교직원들이 자문을 구한 적은 있다. 그래서 답변을 한 적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일광학원이 문제의 음성파일을 복수의 디지털포렌식 기관에 분석을 맡긴 결과 ‘원본 파일이 아니다’란 공통 답변을 받았다. 위·변조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 건과 관련해 서울시교육청과 행정소송 중인데, 음성의 원본파일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교육청은 응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측은 행정소송 과정에서 해당 음성파일에 관해 “2018~19년 (녹음이) 이뤄진 것으로 통상 녹취록 작성에 필요한 부분만 추출해 보관하고 있을 뿐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 녹음파일 전부를 보관하길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 그럼 스마트스쿨 사업은 누가 주도한 건가.

“학교 이사회가 구상했고 내가 조언했다. 실무는 교직원들이 진행했다. 입증할 결재서류가 있다. 스마트스쿨 사업 관련 발주 공고가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건 2019년 3월20일이다. 공고는 결재권자인 학교 직원 A씨 이름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이후 4월2일 A씨가 내 비서였던 기획홍보실장을 상위 결재라인에 올려놓고 스마트스쿨 사업 발주 건에 추가 결재를 한 서류 2건이 발견됐다. 원래대로라면 기획홍보실장이 A씨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이 2건만 위에 있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스쿨 사업은 이규태 회장이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쓰였다.”

발주 공고 전인 2019년 3월18일자 결재서류의 결재선에는 기획홍보실장이 A씨 아래에 있었다.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의혹 근거로 쓰인 음성·영상 모두 반박

- 토요일이던 2019년 5월11일 직접 직원들을 데리고 우촌초 기획홍보실에 들어가 손수레 3대 분량의 물건을 옮긴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교육청 감사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스마트스쿨 사업 자료를 은닉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교육청이 압수수색 권한이 없는데 무슨 자료를 숨길 필요가 있었겠나. 또 스마트스쿨 사업 자료는 모두 USB에 담겨 있는 데다 수사기관에 이미 제출했다. 물건을 옮긴 배경을 말하자면, 기획홍보실장이 ‘기획홍보실에 개인금고 등 잡다한 물건이 많은데 감사가 나오면 필요 없는 물건은 치우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하더라. 그래서 함께 옮기는 걸 도와줬다. CCTV를 자세히 보면 금고가 확인된다. 거기에 들어있는 건 실장 개인 물품이다.”

- 스마트스쿨 사업을 사전에 모의한 업체가 입찰에 선정되게 만든 후 해당 업체로부터 용역대금을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교비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나온다.

“스마트스쿨 사업을 수주한 M사와 사전 미팅을 하고 이곳을 선호한 건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M사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후 스마트스쿨 사업 취소로 M사가 일광학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재판부가 ‘일광학원이 M사와 공모하지 않았다’고 확인해 줬다.”

서울동부지법의 2021년 7월 판결문에는 “M사가 이규태와 통모해 우촌초 교비 회계를 횡령할 목적으로 입찰을 진행하고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나와 있다.

법원 “횡령 목적으로 통모해 계약했다고 인정할 증거 없다” 

- 하지만 스마트스쿨 사업의 일부인 교재 개발을 따로 맡은 B씨는 “이규태 회장이 M사에 스마트스쿨 사업비 23억원 중 11억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주장도 재판부가 배척한 부분이다. 일광학원 측은 B씨와 2억원에 교재 납품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그런데 완성도와 저작권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교재를 받지 않고 계약을 해제했다. 이후 일광학원 측은 계약금 반환 소송을 냈고, B씨는 패소해 계약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앙심을 품은 B씨가 허위 주장을 퍼뜨리며 나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는 무혐의로 판단됐고, 나는 B씨를 무고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런데 B씨가 외국에 나가 있어 수사가 중지된 상태다.”

서울동부지법 2021년 7월 판결문에는 “B씨가 작성했다는 이메일과 고소장 외에 M사와 이규태의 통모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이메일과 고소장 내용도 ‘B씨가 M사의 대표이사로부터 들었다’는 것에 불과해 신빙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나와 있다.

- 스마트스쿨 사업의 당위성을 떠나 사업에 책정된 예산 23억원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에서는 태블릿PC 구입 비용만 따져 3억원이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그러면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스마트스쿨 사업을 추진하는 다른 학교와 비교를 한다. 그런데 우촌초는 국고를 전혀 지원 받지 않고 100% 학비로만 운영되는 사립학교다. 사업 계획서에 나온 것처럼 23억원 예산에는 스마트스쿨을 위해 독자 콘텐츠를 개발∙제작하고 로봇을 구입하는 비용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규태 회장이 제공한 '스마트스쿨 환경 구축사업' 계획서에 나온 예산 지출 내역을 재구성했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와 프랑스 로보틱스 로봇 '나오' 등의 구입비가 포함돼 있다. 총 예산은 23억9323만원이다. ⓒ 시사저널 백윤희
이규태 회장이 제공한 '스마트스쿨 환경 구축사업' 계획서에 나온 예산 지출 내역을 재구성했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와 프랑스 로보틱스 로봇 '나오' 등의 구입비가 포함돼 있다. 총 예산은 23억9323만원이다. ⓒ 시사저널 백윤희

- 2018년 6월 작성해 학교 측에 전달했다는 옥중 편지를 보면 ‘학교에서 나오는 6억5000만원 정도를 일단 내가 쓰고, 그 후 돈이 3억원 나오면 학교 건 지급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적혀 있다. 이 부분이 교비 횡령의 근거라는 주장이 있는데.

“2018년 4월 나에게 부과된 벌금 14억원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당시 가석방 심사를 통과하려면 벌금을 완납해야 했다. 그래서 학교가 진행 중이던 (스마트스쿨 사업과 무관한) 교육 사업을 맡은 업체로부터 돈을 빌려서 벌금을 내고, 출소 후에 갚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편지나 음성을 보면 내가 ‘교비’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게다가 실제로는 학교 측에서 돈을 조달하지 않았고, 아내의 부동산 매각 대금과 지인에게 빌린 돈으로 벌금을 마련했다.”

이규태 회장이 “벌금 14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린 지인의 명단”이라며 제시한 메모. “메모는 학교 직원이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 회장은 벌금 납부 영수증과 함께 돈을 빌렸다는 지인의 이름이 적힌 자필 편지 및 필체가 다른 메모를 공개했다. “메모는 학교 직원이 직접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비 횡령 의혹을 제기한 학교 측도 ‘이 회장이 벌금을 교비에서 갖다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란 취지다. 

방송인 클라라 ⓒ뉴스1
방송인 클라라 ⓒ뉴스1

“클라라 협박 사건, 검사마저 합의 종용”

이 회장의 인터뷰 주제는 사학 비리 의혹이었지만, 그가 애초 구설에 오르게 된 사건은 따로 있다. 2014년 일광그룹 계열사 소속 배우 클라라를 협박했다는 의혹이다. 이듬해 언론을 통해 두 사람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가 공개되면서 진실 공방이 일었다. 이들은 서로를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2015년 7월 클라라를 무혐의 처분하고 이 회장만 기소했다. 다만 그해 9월 클라라가 이 회장을 면회한 후 고소를 취하하며 일단락됐다. 당시 내막을 물었다.

- 클라라가 고소를 취하한 이유와 면회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궁금하다.

“경찰은 클라라의 협박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는데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항고한 상태였다. 당시 클라라가 양보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나는 결백했기 때문에 끝까지 진실을 밝힐 생각이었다. 그때 가족과 지인, 변호사들이 ‘그만 끝내고 방산 비리 재판에 집중하자’며 수차례 설득했다. 심지어 검사마저 합의를 종용했다. 그래서 ‘클라라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클라라가 찾아와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 인간적으로 한 잘못에 대해서도 밝혔다. 내가 수감됐던 서울구치소에 영상과 대화 녹음파일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후 나는 항고를 취하했고 클라라도 처벌 불원서를 냈다. 클라라와의 전속 계약도 끝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 10년이 지난 지금 클라라와의 공방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면.

“처음부터 말과 행동을 경계했지만 스캔들로 번져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치렀다. 결국은 내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이다. 클라라도 피해를 많이 봤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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