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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대장으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까지 지낸 민주당 김병주 의원(62·재선·남양주을)은 나이나 경력에 맞다고 보기 어려운 불길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도대체 그의 머릿속에 무슨 정보와 판단이 들어있을까. 이재명 대표 옆에 착 달라붙어 보스의 심기만 챙기는 ‘딸랑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이해할 수 없는 허황한 얘기들이 김 의원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선거용으로 한번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최고위원이 된 뒤에도 같은 말을 계속하는 걸 보면 ‘육군 대장’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내밀하게 움직이는 뭔가를 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7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자 방송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7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자 방송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없는 계엄령도 자꾸 말하면 현실화될 수 있어

윤석열 대통령이 충암고 동문 김용현 경호처장을 느닷없이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점을 들어 김 의원은 “탄핵이 오면 계엄 선포가 우려된다. 친정체제가 구축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탕평 인사를 외면하고 검찰·충암고 출신 등 친숙한 사람들만 요직에 쓰는 대통령의 폭 좁은 사람 쓰기에 대한 비판은 정당했다. 그러나 사실적 근거 없이 추론만으로 ‘윤석열 계엄론’을 주장한 것은 허황되고 불길하다.

허황된 이유는 헌법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의결로 계엄을 즉각 해제시킬 수 있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지금 야당 의원 수는 전체의 2/3에 육박한다. 계엄이 선포되더라도 사흘을 넘길 수 없다. 불길한 이유는 실체 없는 허깨비를 자꾸 끄집어내다 보면 현실이 되기도 하는 인간사의 기묘한 측면 때문이다. 쿠데타와 내란, 암살·봉기 같은 정치 괴물들이 우연이나 실언, 개인 의사와 동떨어진 상황 전개 속에 태어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윤석열과 이재명은 지금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적대와 불안감 속에 빠져 있다. 윤 대통령은 탄핵 스트레스에, 이 대표는 유죄의 그림자에 각각 휩싸여 밤잠을 편히 자기 어려운 지경이다. 두 사람이 작은 성냥불 한 개로 초가삼간을 태울 일촉즉발 위험 상태에 놓였음을 김 의원은 두려운 마음으로 유의했으면 한다. 불이 나면 누가 손해 보나. 애꿎은 국민의 고통과 한숨만 깊어지지 않겠나.

김병주의 발언은 이재명 대표의 야심만만한 정치 일정과 헌법 한계를 넘나드는 권력행사의 예고편일 수 있다. 그동안 민주당 일각에선 ‘11월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야권세력 총결집 광화문 촛불집회→내년 3월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5월 조기 대선’이라는 정치 스케줄이 흘러나왔다. 이재명 2기 체제 출범을 계기로 이 시간표가 본격 가동된 듯하다. 김병주의 ‘윤석열 계엄론’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탄핵 캠페인을 타오르게 할 불쏘시개이자 적의 히든 카드를 먼저 까 무효화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윤 대통령, 신중함 속에 ‘마지막 의사결정자’ 되어야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의 디올백 사건을 국민 눈높이에서 처리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고립무원의 신세가 됐다. 집권세력의 3대 축인 여당·정부·대통령실 즉, 당정대는 과거 노무현이나 박근혜 대통령 말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 상당 부분은 대통령이 자초했다. 요즘 윤 대통령을 아끼는 사람들은 그에게 더 많은 평정심과 더 깊은 신중함을 주문하고 있다. 대통령이 ‘최초의 발제자’가 아니라 ‘마지막 결정자’가 되라고 당부한다.

권력 세계에선 가장 큰 권력자가 첫 번째로 의견을 말하면 뒤따르는 사람들이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윤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 얘기를 다 들은 뒤 숙성 기간을 갖고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본인도 놀랄 정도로 정무적인 성취를 얻게 될 것이다. 김병주 같은 이들의 허황하고 불길한 발언은 대개 윤 대통령이 너무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빌미가 잡혔을 가능성이 있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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